2022. 7. 14. 19:31ㆍk-pop review & essay
선명한 독기가 나를 감싼다...
하고자 하는 말이 거추장스러운 치레 없이 따박따박 귀에 꽂힌다.
하지만 이 감각의 예리함에 미치지 못하는 메시지의 뭉툭함이 아리송하게 남는다.
01 The World Is My Oyster
02 FEARLESS [★]
03 Blue Flame
04 The Great Mermaid [★★]
05 Sour Grapes [★★]
*
*앨범 리뷰의 별점은 [ ], [★], [★★]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글에서는 앨범의 무드에 발맞춰서,
이례 없이 모든 서론을 생략하고 앨범 리뷰부터 마치고 난 뒤에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01 The World Is My Oyster
세상은 나를 평가해, 세상은 나를 바꾸려 하지
그렇다면 나는 꺾이지 않아
The world is my oyster
인스트루멘탈과 내레이션으로만 구성돼 있다. 멤버들이 영어, 일본어, 한국어의 3개 언어로 앨범의 전체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내용은 '세상은 불완전하다. 그런 세상은 나를 평가하고, 지적하고, 바꾸려 하지만, 나는 강해져서 이 세상에 나를 보여주고 세상을 손에 넣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패션쇼 런웨이에서 흐를 것 같은 베이스 기반의 음악이 이 당당한 태도와 어우러지며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들의 포부가 단도직입적으로 전달되지만, 그 외에는 앨범의 무드를 전달하는 배경음악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 간결한 인트로곡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상치 못하게 일본어 내레이션이 튀어나오는 점이 굉장히 위화감이 느껴지고, 한국어는 이 음악에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는 않고, 영어는 너무 위화감이 없어서 아이돌 트랙 같지가 않다는 느낌이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이길 만큼 이 팀과 앨범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이 메시지 전달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02 FEARLESS [★]
제일 높은 곳에 난 닿길 원해 느꼈어 내 answer
내 혈관 속에 날뛰는 new wave 내 거대한 passion
관심 없어 과거에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트러블에 huh
I'm fearless a new b**ch new crazy 올라가 next one
첫번째 트랙이 전달하는 시크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어받는 단단한 베이스 리프와, 그 위에 저음역으로 얇게 쌓이는 단순한 멜로디의 보컬이 인트로를 여는데, 곡이 끝날 때까지 이 심플한 편성은 딱히 화려하게 채워지지 않고 거의 유지가 된다. 가사가 전하고자 하는 특정 태도와 메시지는 분명하다 못해 무언가를 저격하기라도 하듯 날카로울 정도('모두가 알고 있는 그 트러블', '내 흉짐', '욕심을 숨기라는 네 말들은 이상해' 등)인데, 그것이 감정 표현을 최소한으로 절제하는 이 음악과 상응해서 케미스트리를 내고 있는지는 모호하다. 가사는 화자의 'fearless'함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지만 그런 것치고 음악적으로 과감한 부분은 없다. 음악 자체로보다는, 이렇게까지 단순한 음악을 신인 걸그룹을 알리는 타이틀곡으로 낸 점이 가장 용감하다고 하겠다.
최소한의 악기 구성과 모노톤의 비주얼 연출로 인해, 더욱 미니멀하지만 동시에 딥하게도 들리는 이 음악은 '잘 깎아 만든' 듯한 도시적이고 세련된 인상을 남긴다. 대부분의 구간이 베이스와 보컬에 집중돼 있고, 보컬은 일제히 우아한 예민함을 연기한다. 멤버들의 개성은 이 무채색 아래에 눌려 있지만, 한편으론 기존 경력이 있는 일부 멤버들에게는 이렇게까지 정제된 음악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변신을 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렇듯 팀 자체가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브랜딩' 목적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단호한 노래다. 음악만 들을 땐 너무 단조롭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퍼포먼스와 함께 감상하면 적당히 절도 있는 역동성이 부여되며 이 밋밋함이 팀의 건강하고 힙한 매력으로 승화가 되는 듯하다.
보컬에서는 경력직 멤버 김채원의 이미지 변신이 인상적이다. 선율적인 고음역 곡에서 빛을 발해왔던 특유의 음색이 그루비한 리듬 위주의 저음역 곡에 묻는 조화가 경쾌하다. 개인적으로 앨범의 전곡을 통틀어서 김채원과 김가람 외에 음색으로 인상을 남기는 멤버는 없다고 느껴지는데, 한 명이 그렇게 되어서... 아쉽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
03 Blue Flame
Unknown 두려움에 감춰 있던 베일이 이 어둠이 시야를 벗어나 glow
저기 너머에 뭐가 있든지 푸른 호기심일 뿐인걸
역시 깔끔한 악기 구성과 그 와중의 베이스의 존재감이 주는 무드는 전 곡들로부터 유지되지만, 타이틀곡에 비해 멜로디가 많고 유려하게 움직이는 점을 특징으로 갖는 곡이다. 'FEARLESS'가 도회적인 간결함에 집중했다면, 이 곡은 레트로한 분위기가 강한 디스코팝이다.
개별곡으로 들었을 때 가볍게 듣기 좋은 곡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FEARLESS] 앨범에서 가지는 존재감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신비로운 곡 분위기와 주문 같은 가사('Will-O' The-Wisp')가 전하는 동화적인 역할, 어떠한 힘에 이끌려 호기심과 열망이 타오른다는 스토리는 알겠는데, 1, 2번 트랙이 이어온 묵직함에 비해서는 너무 산뜻해서 개인적으로는 순서상 무드를 조금 깨는 배치로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무드 있으면서도 사랑스럽고 청량한 특유의 곡 분위기가 좋아서 마음에 드는 곡이기는 하다.
04 The Great Mermaid [★★]
Wish never cost 그게 뭐라고 해도
하날 위해선 하날 포기하라고
아름다운 목소리 일곱 빛 꼬리까지 전부 전부 나라서 I don’t wanna sacrifice
I’m living my life 원하는 건 다 가질 거야
그래도 날 물거품으로 만들진 못해
이 앨범에서 가장 강렬한 곡조로 테마를 표현하고, 가사는 화자를 인어공주에 빗대며 야심을 강조한다. 멜로디도 충분히 강한데, 묵직한 신스 리프가 비슷한 볼륨으로 목소리를 받치며 넘칠 듯이 일렁거리는 연출이 이 앨범을 통틀어서 가장 강렬한 플레이다. 동화 속 이야기를 비틀어서 인어공주가 그 무엇도 마녀에게 희생하지 않고 모두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가지겠다 이야기하고, 차라리 온 바다를 자기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찬 포부로까지 서사를 구체화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앨범 내에서는 음악과 가사의 테마 모두에서 'fearless'란 키워드를 타이틀곡보다도 직접적이고 와닿게 전달하는 메인급 존재감의 트랙이다. K팝신 전체에서 개성을 따진다면 'FEARLESS'의 기획된 신선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걸크러쉬 콘셉트 곡이라 타이틀 선정은 못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와는 별개로 좋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05 Sour Grapes [★★]
푸릇 쌉싸름해 I don’t wanna taste, 뭐 그리 달콤하진 않을 것 같애
Sour 눈물 나게 시큼한 맛, Sour 그런 게 만약 사랑이면
맛보고 싶지 않아 I just feel afraid
예쁜 피치카토 주법의 스트링 사운드와 멤버들의 멜로우한 음색이 사랑에 빠질 듯한 소녀의 조심스러운 태도라는 곡 주제와 너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러블리한 노래다. '푸릇 쌉싸름', '설익은 감정', '맘 끝이 좀 떨리기도 했어'처럼 문학적으로 표현한 노랫말들 역시 이 아찔하게 떨리는 감정의 곡조에 사랑스럽게 달라붙는다.
다만 의문이 있다면 이 곡이 이 [FEARLESS] 앨범에 왜 수록되어 있는지다. 비단 이 앨범에서뿐만 아니라 근래 나온 모든 걸그룹 곡들을 통틀어서도 이 앨범의 테마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태도를 가진 곡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이 곡이라고 할 만큼, 그 어떤 노래보다도 적극적으로 '두려움'을 노래하는 곡이다. 이 정도까지 극단적인 태세 전환이라면, 이런저런 스타일의 곡들을 시도해보다 우연히 이렇게 배치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의도된 것이다. 그전까지 강조하던 정서를 동전 뒤집듯이 등져버리는 앨범 흐름이 매우 독특하다. 세상 모든 것에 겁이 없고 당당하지만 사랑에서만큼은 두려움이 많고 서툰 소녀의 캐릭터를 설정하려는 목적이라면, 매력적인 화자를 만드는 데는 성공적이었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다치지 않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성격을 보여주는 목적이라면, 그 스토리의 연결이 조금 부족하고 앨범의 흐름을 깬다.
다만, 음반의 유기성과 콘셉트를 떠나서 개별곡으로 본다면, 멤버들의 음색도 매력적으로 부각되고 멜로디, 가사, 편곡의 조화가 이 개별곡의 테마에 완연히 집중하고 있는 맘에 드는 곡이라, 이 앨범에서 가장 오래 듣고 싶은 곡이 될 것 같다.
르세라핌 미니1집 앨범 [FEARLESS] 리뷰: 이상이 아닐지라도, 그게 나라면 상관없으니까
일단 타이틀곡이 너무 미니멀해서 놀랐다. 아무리 이지리스닝이 대세여도 걸그룹 타이틀곡을 이 정도까지 비우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들이 설정한 시크한 콘셉트에는 최고의 선택이다. 단순하지만 비주얼 콘셉트와 조화를 이루며 개성까지 확실히 하는 이 타이틀곡과 앨범은 팀 정체성을 명확하게 형성하고 있다.
가사와 앨범 설명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르세라핌의 키 이미지는 야심과 당당함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데뷔 전부터 이들의 정체성을 선보여 온 프로모션 영상들을 통해서도 비주얼로서 제시되었다. 영상들은 패션쇼 런웨이와 백스테이지, 오디션 현장 등을 배경으로 하여, 멤버들에 모델이라는 직업의 캐릭터를 입힌다. 패션 업계의 이미지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신경 곤두선 세련성도 자연스럽게 팀의 콘셉트에 스며든다. 앨범의 인트로곡과 타이틀곡은 무엇보다 이 콘셉트를 설명하는 목적에 집중돼 있다. 런웨이나 화보 촬영장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것 같은 이 음악들은, 프로모션 영상들이 유지해 온 그 목적을 일관성 있게 이어 받으며 멤버들의 당당한 이미지를 무대 위로 올린다.
음악과 영상이 그랬듯, 무대와 의상, 앨범 아트, 스타일링 포인트 모두에서, 색감은 다운된 채 흑백의 대비만 부각되는 모노톤의 비주얼이 이 당당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타이틀곡의 음악 구간이 바뀔 때마다 안무 구간도 흑백이 전환되듯 휙휙 변화하고, 동작 자체도 이것저것 화려하게 믹스된 느낌이 아닌 단호하고 확실한 선으로 구성돼 있다.
멤버들이 소화하는 창법이나 표정 연기 등에서도 맺고 끊음이 분명한 단호함이 드러난다. 흑백의 단조로움에 각 멤버의 개별 특성은 지워지다시피 하지만, 그룹이 지향하는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만큼은 이보다 확실하게 제시될 수도 없다. 또 멤버 중 절반이 기존에 다채롭고 통통 튀는 모습을 보인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단조로운 색깔이 이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색다름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이렇게도 명확한 메시지가, 일부 콘텐츠들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묘하게 겉돈다.
이렇게도 감각적이고 힙한 이미지의 방향성, 그리고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의 깊이에 방해가 되는
일부 연출이 매우 아쉽다.
그 얘기를 하기에 앞서서, 잠시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가 돌아오기로 한다.
❔ 아이돌은 왜 이렇게 흔하게 사랑 노래를 많이 할까?
아이돌은 다양한 주제로 노래를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당연히 사랑일 것이다. 가수와 아이돌이 흔히 사랑을 주제로 노래하는 이유는 존재한다.
노래 가사를 쓰고 부른다는 건, 3-4분 동안 + 한 가지 주제로 + 감정을 100% 실어 + 온 힘으로 떠들어대는 일이다. 확실히 우리가 밥먹듯, 갑작스럽게, 자주 맞닥뜨린다면, 정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행위다. 하지만 우리는 대중음악을 밥먹듯, 갑작스럽게, 자주 듣는다. 이 비정상성이 음악을 경유해 정상성으로 변모하는 건 이상의 힘이다. 노래와 음악이 이상적인 가치를 향한 메시지를 담을 때야 비로소 이런 과한 감정 전달은 정당화가 된다. 즉,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무언가, 그 누구도 쉽게 가지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 모두가 일반적으로 원하는 것을 뛰어넘은 그 이상의 것을 향한 감정이어야, 스타로서의 아이돌이 주체인 '노래'라는 행위가 아름답게 완성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건 무한한 정도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소재다. 기본적으로 사랑 노래가 공감 전달이 베이스인 것이 많기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중 사랑이라는 말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세계관의 가장 큰 끝을 경험해 본 사람을 가려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랑이란 가사 주제는 그 누구에게도 손에 닿지 않는 이상성을 동반한다. 사랑이 모든 가치에 앞서고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아무렇게나 대충 떠들어대도 어차피 그 끝에 가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부담없이 쓰기 좋은 소재인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끝이 정해지지 않은 이상'의 개념이기에, 노래의 주제로 흔하게 쓰인다.
🤔❔ 그렇다면 야망은 어떨까?
최근에는 유행어처럼 '독기'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사람이 독기를 품은 듯이 어떤 일이나 자신의 삶에 열중하는 걸 두고 멋지다고 평가하고, 이런 태도를 '독기'란 단어에 압축해버려서 쓰는 것이다. 여기에 더 높은 것, 더 좋은 것을 쟁취하기 위한 욕심이 더해지면 '야망'이 된다. [FEARLESS]도 이러한 주제를 차용해 강렬한 이미지를 제고한다. 'FEARLESS'의 첫 소절에서부터 '제일 높은 곳에 난 닿길 원해'라고 선언하듯, 이 앨범은 야심과 열망이 주제다.
높음이란 개념은 끝이 보이지 않기에, 이러한 야망 역시 이상을 노래하며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끓게 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물론 아이돌로서 노래하기 좋은 소재는 보편화된 욕망은 아니어야 한다. 가령, 부와 명예 같은 가치는 많은 사람들의 이상이긴 하지만 너무 일반적이고 뻔하게 끝이 보이는지라, 타인들의 유일한 우상이 되고자 하는 아이돌이 노래하기에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꿈이든, 대의든, 자유든, 자신들만의 확립된 이상세계에서의 결핍, 그리고 그것에 대한 헤아릴 수 없이 간절한 열망이어야, 그걸 부르는 주체가 메신저로서 매력적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앨범과 함께 나왔던 콘텐츠들을 표면적으로 감상했을 때, 이들이 노래하는 야망이 그렇게까지 이상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욕심과 야망을 가시화하는 매개물로 모델이라는 콘셉트를 채택한 것은 처음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와, 자신의 업을 향한 열정, 여기에 날카롭고 당당한 캐릭터성까지, 이들이 보여주고 싶은 모든 성격을 대표해서 한 번에 인식시킬 수 있는 요약적인 모티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들이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감상하고, 프로모션 영상 속 일부 장면들이나 뮤직비디오 속 기이한 춤 동작의 이미지까지 혼합된 뒤에는, 이들이 인식시키고자 하는 이상향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게 된다. 딱히 이상성을 피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딱히 멋지고 예쁘다고 추앙하기도 애매한 해당 장면들에서 이들은 메신저로서 힘을 못 쓴다. 가사는 무언가를 뜨겁게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듯하지만 비주얼적으로는 그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봤자 그렇게까지 멋지고 이상적인 것이 아닐 것이라는 감상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소재들 중에서 굳이 야망을 노래하는 의미가 없다.
음악에서 한껏 감각적으로 날을 세운 야심의 메시지가 이 지점에서 둔하게 힘이 빠지는 게 아쉽다. 남들보다 딱히 환상적이지 않은, 그저 그런 존재로 연출된 이들의 'fearless'함이 뭐가 그렇게 매력적인 소재일 것이며, 아이돌 스타를 덕질하고 싶은 보통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캐릭터에 끌릴 수가 있을까... 노래의 메시지도 너무 확실하고, 영상 콘셉트도 너무 확실한데, 이 둘이 서로 매치가 되지 않아서 '그래서 뭐 때문에 fearless를 외쳐대는 거지?'로까지 괴리감이 뻗친다. 단순 불호가 아니라, 음악의 에너지나 전반적인 콘셉트가 색다르게 좋기 때문에 이러한 오점이 아쉽다.
사실 정작 실제 무대에 오른 의상들이나 안무는 전혀 의문이 될 만한 것이 없이 경쾌하기만 해서 좋았다. 종잡을 수 없는 이들 의도와 방향성은 앞으로의 행보를 기다려 보아야 알 것 같다.
위 같은 이유에서, 이 앨범에 대한 내 '감상'은 조금 애매하게 남아 있지만...
사실 그 후에 내 '생각'은 두 번 전복이 됐다.
왜냐면 이것이 실재하는 이야기라면 얘기가 다시 한 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앨범의 콘셉트와 메시지 등이 회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달된 자신들의 실제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춤과 노래에 대한 애정, 도전과 변화에 대한 당당함, 외부 시선이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모습에 대한 포부 같은 것들이 'FEARLESS'라는 말로 한데 뭉쳐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서사가 개입된다고 한다면 'FEARLESS'로부터 느끼는 묘한 위화감이 일부 해소가 된다.
멤버들이 가사에 반영된 인터뷰나 표정 연기 등으로 풀이한 'FEARLESS' 속 태도는, 언뜻 그냥 자존심 강한 사람의 신경전처럼 읽히지만, 사실 들여다 보면 대중과 심적으로 싸워낸 미약한 개인들의 심리였을 수도 있고,
'관심 없어 과거에, 모두가 알고 있는 그 트러블에' 같은 가사는, 비록 한 멤버의 과거 행적에 대한 구설수로 얼룩지긴 했지만, 아마 그 멤버가 아니라 과거 서바이벌 방송에 출연한 멤버의 이야기로부터 영감이 얻어진 것일 것이다. (아이즈원 출신들 얘기도 당연히 아니(라고 믿고 싶)다)
'FEARLESS'가 멤버들 자신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그 이상과 야망이란 것도 그렇게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환상적인 것이 아니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겁이 없어!'라고 끊임없이 외쳐대는 게 당당함을 전달하는 자연스러운 표현은 아닐지라도, '정말로 겁을 먹을 만한' 상황을 이겨낸 서사가 모두에게 공유되어 있다면, 이들에게는 합의된 정서를 담은 의미 깊은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노래로부터 느낄 수 있는 감상이, 소년만화 같은 심장 뛰는 열정은 아니게 되더라도, 이들의 솔직함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공감하고 응원할 수는 있는 것이다(물론 나는 공감과 응원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을 달리할 기회는 됐다).
콘셉트 면에서 이들의 표면적인 메시지는 마모됐을지라도, 이들이 무대 위에 오르는 에너지가 진심이고 건강하다면, 그 나름대로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앞서 발생한 '그래서 뭐 때문에 fearless를 외쳐대는 거지?'의 의문은 대부분 해소가 된다. 아직 그 외의 것들이 남아 있지만, 이미 그 아리송한 영상물들을 다시 돌려볼 이유는 없는 현 시점에서는 노래나 무대를 즐기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인터뷰까지 해가며 멤버들의 이야기와 심정을 앨범에 담아주려는 이 회사가 추구하는 이들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앞으로의 모습이 알고 싶을 뿐이다.
아무튼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이들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여러 모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충분한 인상을 남긴 만큼, 음악적으로는 기대가 되고 서사적으로는 궁금해지게 하는 데뷔 앨범이었다.
#토비레코드: 주로 K팝 얘기하는 블로그 [ rtbs.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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