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K팝 스토리텔러, 곡 구성의 마술사 제이윤의 아이돌팝 송폼 분석 (feat. 인피니트·스윗튠)

2022. 6. 22. 23:43k-pop review & essay

 

 

'내꺼하자'와 '파라다이스'는 들었는데 'Tic Toc'을 안 들었다면 반만 들은 것이다. 
'추격자'는 아는데 'Feel So Bad'을 모른다면 손해 본 것이다. 
그 시절 인피니트를 좋아했지만 이 노래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야만 하기에 이렇게 공익(?) 목적의 글을 쓴다. 

인피니트의 음악 가운데, 겹쳐 먹으면 두 배로 맛있는 스윗튠 & 제이윤 콤보세트는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완벽한 조합인지,

내 뇌피셜로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이나믹 K팝 스토리텔러, 곡 구성의 마술사 제이윤의 아이돌팝 송폼 분석 (feat. 인피니트·스윗튠)

 

김명수/엘 (OGS Returns 콘서트 中 'Tic Toc')

 

 

 

인피니트의 앨범에서 인피니트만의 색깔을 창조하며 주된 존재감을 드러내는 두 작곡진이 있는데, 한 팀은 대부분의 초중기 타이틀곡과 수많은 수록곡을 만든 스윗튠(SWEETUNE)의 한재호-김승수 페어고, 다른 한 쪽은 명곡으로 이름 알린 굵직한 수록곡을 주로 만든 제이윤이다. 

 

[Over The Top] 내꺼하자 (한김) - 3분의 1 (한김) - Tic Toc (제이윤)
[INFINITIZE] INFINITIZE (제이윤) - 추격자 (한김) - Feel So Bad (제이윤)
[Season 2] Last Romeo (한김) - Follow Me (제이윤) - 로시난테 (한김)

 


인피니트의 강한 개성이 인상 깊었던 앨범들을 보면, 다음과 같이 이 두 작곡진의 곡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김의 메인곡들이 빽빽하게 휘몰아치는 신스사운드와 후킹한 멜로디의 배합으로 감정을 댄서블하게 밀어붙인다면, 제이윤 곡의 멜로디와 전개의 뚜렷한 서사성이 그 드라마틱함을 극단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해서, 인피니트의 음악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감성 짙은 강렬함이 보완적으로 완성된다. 

두 작곡진이 그리는 인피니트의 캐릭터는 극적이고 아련한 특성을 매개로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는데, 한-김 타이틀곡은 그 구조 내에서 압도적인 대중성과 캐치함을, 제이윤의 곡은 서정성이 동반하는 내적인 이끌림을 마크한다. 그래서 특히 한-김의 히트곡들이 자랑하는 대중성과 감성의 조화에 이끌려서 인피니트의 전체 앨범을 감상해보게 된 이들이, 제이윤의 곡까지 듣고 나서 인피니트의 음악 색깔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수순이 정석적이다. 

 

 

 

 

 

인피니트 '추격자' MV

 


하지만 두 작곡진을 단순히 이러한 기준으로 나눌 수는 없다. 사실 애초에 스윗튠 작곡 곡의 특징이 감성적인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글에서 묘사한 제이윤의 인피니트 곡 특성은 일반적으로 한-김 곡의 특성으로 알려지기도 한 것이 많다. K팝 팬들에게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스윗튠의 특색이라고 하면, 레트로한 댄스팝에 드라마틱한 감성을 버무리고 가사로 직접적으로 감정 묘사를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인피니트의 앨범에서 단순히 이 특성들을 기준으로 제이윤의 곡을 구분해낼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중독적인 훅이 한-김 타이틀곡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수록곡으로 가면 이들의 곡도 훅 없이 매우 선율적이고 몰입도 높은 전개를 자랑하는 댄스곡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이것도 기준이 아니다. 

 

스윗튠 곡의 밀도 높고 시원한 신스사운드도 특징적이지만, 역시 수록곡까지 들으면 사용된 악기는 단일 기준이 되기 어렵다. 

 

그럼 인피니트의 앨범에서 이토록 유사한 감성을 다루는 두 작곡진이 서로 다른 영역을 마크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김명수/엘 (OGS Returns 콘서트 中 'Tic Toc')

 


제이윤의 노래들에서 느껴지는 세밀한 감정 표현은, 스토리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강조하거나 뒤트는 서사적인 연출에 있다. 그의 인피니트 곡들에는 가장 대중적이고 듣기 쉬운 구성이라고 굳어진 틀을 벗어난 것이 많은데, 자연스러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그 낙폭차나 마찰에서 빚어지는 오묘한 벅참이 이 노래들의 특색이다. 

 

가정일 뿐이지만 만약 그의 곡들이 타이틀곡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면, 현재와 같은 형태와는 조금 다르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전체 구조가 귀에 잘 인식되도록 변주와 반전보다는 기본과 반복을 추구하고, 각 후렴도 변화구 없이 동일하게 유지해서 중독적인 부분을 강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곡들은 그러지 않은 대신, 그 어떤 곡들보다도 중독적인 타이틀곡들의 바로 다음 트랙 위치를 점해서, 대중성을 앞세운 타이틀곡에 엑기스 같이 내포돼 있는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이 글에서는 제이윤의 어떤 곡들이 어떤 방법으로 이런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래서 팬들에게 이토록 회자되는 수록곡으로 탄생했는지, 곡 구성(송폼)에 집중해서 감상해 보는 관점으로 분석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이 글에서 작곡가 제이윤의 창작물에 집중해 전개하려고 한다. 그의 팀 활동이나 가수로서의 개인적인 정보는 많이 알지 못하지만, K팝 음악의 크레딧에서 그의 이름을 종종 접하며 멋진 곡들을 남긴 작곡가로 기억하고 있다. 고인에 대한 언급은 간략히 하고, 그의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집중적으로 다뤄 보도록 하겠다. 

 

 

 

 


 

이성열 (1991)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요 곡 구성은 다음과 같다.

 

Verse 1 - Pre-chorus - Chorus - Verse 2 - Pre-chorus - Chorus - Bridge - Chorus

 

여기에서 각 용어를 다음과 같이 알파벳으로 대체해서 표기를 간소화하도록 하겠다. 

Verse = A
Pre-chorus = B
Chorus = C
Bridge = D

 

A - B - C - A' - B - C - D - C

 


일반적으로 도입(벌스 = A), 빌드업(프리코러스 = B), 후렴(코러스 = C)이 단계별로 전개되고, 이 1절 구조가 한 번 더 반복되며 2절까지 구성되는데, 보통 2절에서 변주가 들어간다면 일반적으로 다른 구간보다는 벌스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랩 구간이 필요한 경우, 이 2절 A에서 자주 등장한다. 또한 곡에 따라 후렴구가 코러스와 포스트코러스로 된 2개 구간으로 나뉘기도 하고, 2절에서는 포스트코러스가 생략되는 구조도 흔히 쓰인다. 2절까지 마무리되면 브릿지가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후렴이 이어지며 3절이 끝난다. 

대부분의 가요가 이 기본 구조를 기반으로 하며, 곡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된다.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는 구성을 가진 곡들은 독특한 인상을 주어서 눈에 띈다. 사실 요즘에는 이미 시도할 수 있는 구성 변형은 거의 다 등장했기 때문에, 웬만한 변주로는 구성으로서 특이하다는 감상을 받기 어렵기는 하다. 물론 에스파의 'Next Level'처럼 아예 다른 음악적 성질을 지닌 두 곡을 잘라 붙여서 ABCD가 아니라 EFG까지 나와줘야 할 것 같은 극단적인 사례는 논외다. 

 

 

 


한재호-김승수

 

이성종 (1993)

 

 

아무튼 인피니트의 곡에서 스윗튠과 제이윤의 작법을 대조하자면, 먼저 스윗튠의 곡 구성은 간결하고 정석적이며, 후렴구가 포인트 구간이기 때문에 귀에 잘 들어오게 하려는 목적성을 중점으로 둔다. 대체로 기본적인 전개를 크게 뒤틀지 않으며, 랩 파트의 위치 정도가 곡 구성의 다양성에 영향을 미친다. 

 

*보통 한재호-김승수의 곡들에서 C 구간은 후렴구(코러스)와 포스트코러스(또는 훅) 등 2개 구간으로 나눠져 있는 곡이 대부분이지만, 또 이들의 곡들에서 이 구간은 대체로 변형 없이 통째로 반복이 되기 때문에 C1-C2 등으로 분리하지 않고 C로 통합하여 표기했다. 

 

 


내꺼하자

A - B - C - Interlude (두유힐미) - Rap - A - B - C - Interlude (Dance Break) - C' - Rap


중독적인 후렴으로 대히트곡이 된 이 곡의 구성은, 랩이 마지막 후렴 뒤쪽으로 나오며 곡이 마무리되는 점을 제외하면 독특한 점이 없다(브릿지는 댄스브레이크 반주로 대체됨). 3절 후렴(C')에서는 앞선 후렴(C)들에서 키를 올리고 가사 변형을 주어서 하이라이트를 연출하는데, 이후에 나오는 대부분의 한-김 타이틀곡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마지막 후렴을 처리한다. 

 

*'Man In Love (남자가 사랑할 때)', 'Last Romeo'가 이 곡과 비슷한 구성이다. 

 

 


파라다이스 (Paradise)

A - B - C - A - B - C - RapC'


역시 후렴구에 포인트가 있는 이 곡은 '내꺼하자'보다도 더 간결하다. 랩 파트가 브릿지를 채우고 장동우의 파트로 1회만 등장하는 대신, 당시 또다른 랩 멤버였던 호야는 보컬 파트를 소화했다. 

 

 


Nothing's Over

A - C - Interlude - Rap - C - Rap - C'

 

여기서 이렇게까지 더 간소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곡 자체가 다운된 부분이 없이 경쾌한 멜로디로 채워져서 도입에서 후렴까지 빌드업이 필요하지 않다. 노래를 들으면 알겠지만 이렇게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곡에서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성종 (1993)

 

 

한편 인피니트뿐 아니라 카라, 보이프렌드, 나인뮤지스 등 다양한 한-김 곡에서 종종 쓰이는 구성이자, 스윗튠 작곡 외의 2세대 아이돌 곡에서도 자주 나오는 구성으로, 인트로에 후렴처럼 캐치하게 만든 인트로 보컬 멜로디가 따로 있고 그 멜로디가 이후에 다양한 위치에서 다시 변용되는 방식이 있다. 후렴처럼 곡의 인상을 결정하는 부분을 도맡지만, 곡 흐름의 고점에 위치하지는 않기에 후렴과는 분명히 구분이 된다. 또한 도입부와도 구분되는 것이 기본이고, 때때로 도입부를 대체해서 이런 인트로 멜로디가 쓰이기도 했다. 

 

이는 곡에 후렴이 2개 있는 급으로 임팩트의 밀도가 높아지는 방식이기도 하고, 별 변주 없이 반복만으로도 곡의 전개가 드라마틱해져서, 개인적으로 이런 구조의 곡을 좋아한다. 

 

 


BTD (Before The Dawn)

Intro(Because I listen-) - A - B - C - Rap - A - B - C - [Rap & Intro (=Bridge)] - C' - Rap

 

인트로 멜로디의 일부가 랩 파트와 함께 잘라붙여져서 브릿지를 꾸미는 데 다시 쓰였다. 

 

 


추격자

Intro(미안해 마-) - B - C - Rap - B - C - C' - Rap -  Intro(미안해 girl-) (=Bridge) - C' - C' - Intro(미안해 마-)

 

인트로가 아웃트로로도 쓰이며 수미상관을 보여주고, 브릿지에서도 변형되어 등장하며, 인트로 자체가 이 곡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는 멜로디임을 보여준다. 한편 인트로가 후렴구마냥 3번이나 반복되고 후렴구 자체도 반복적임에도 불구하고, 멜로디 자체가 감성적으로 강해서 중독성만을 노린 단순 후크송 느낌과는 거리가 있는 곡이다. 

 

 


3분의 1

Intro(날 사랑한다는 니 말-) - A - C - Intro(왜 그토록-) - A - C - Rap - C' - Intro(날 사랑한다는 니 말-)

 

이 노래는 '내꺼하자'와 'Tic Toc' 사이에 위치해서 집착과 이별의 앨범 테마를 연결하는 다크한 감성 곡으로, [Over The Top]과 [Paradise] 앨범의 색깔을 만드는 주역 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도입과 후렴 사이 빌드업 없이 후렴과 인트로가 교차되면서 임팩트 있는 멜로디 반복으로 곡이 채워지는데, 인트로 멜로디가 포스트코러스처럼 활용되면서 후렴급 존재감을 드러낸다. 

 

 


Julia

Intro(A I O I-) - A - B - C - Intro(A I O I-) - A - B - C - C' - Intro(A I O I-)

 

역시 인트로 구간을 아웃트로로 활용하며 아련한 포인트 구간을 되뇌는 수미상관 구조로 감상을 완성하는 곡이다. 

 

 

*한재호-김승수의 다음 곡들도 이와 같은 인트로 멜로디 활용 방식의 예시임. 

카라 'Honey' [난 난 난 너 없으면 난-]
카라 'Pandora' [up and up ah ah-]
레인보우 'A' [Just your collection line-]
레인보우 'Mach' [Can't stop Can't stop-]
보이프렌드 '내가 갈게 (I'll Be There)' [차차 깨닫겠죠-]
보이프렌드 '야누스 (Janus)' [지금 웃고 있지만 애써 참고 있어 난-]
나인뮤지스 '휘가로 (Figaro)' [Give up up tonight-]
나인뮤지스 '건 (Gun)' [그렇게 만지작 만지작-]

 

 

 

 


제이윤

 

김명수/엘 (1992)

 

 

이렇듯 한재호-김승수가 반복적이고 간결한 구성으로도 멜로디의 힘으로 인피니트의 벅차는 감수성을 연출했다면, 인피니트의 앨범에서 제이윤의 곡은 이들의 강한 힘을 이어받되 복잡한 구조로 뒤섞으며 서정성과 서사성을 극대화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어떠한 방식으로 그가 곡 전개를 활용했는지는 직접 분석해 보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Tic Toc

*[Over The Top] (타이틀: 내꺼하자), [Paradise] (타이틀: Paradise) 수록곡

A - B1 - C1 - C2 - Rap - B2 -  Rap - C2' - D(Vocal+Rap) - E(Rap) - C3- E(Rap) - C3'

 

'내꺼하자'의 강렬함과 'Paradise'의 아련함을 애절함으로 이어받는 'Tic Toc'은, 1절까지만 들어도 멜로디와 악기 사용, 가사 등의 요소로부터 짙은 드라마틱함을 느낄 수 있는 곡이지만, 2절 중간(★)부터 전개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종잡을 수 없는 곡의 흐름을 타고 더욱 더 극적인 색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독특한 노래다. 

 

먼저, 이 곡의 후렴구라고 판단되는 '다시 한 번 더 말해봐-' / '다시 한 번만 더 해봐-' 멜로디의 파트가 곡에서 몇 차례 반복이 되나, 모든 반복 구간에서 변형이 가미된다. 코러스와 포스트코러스를 C1과 C2로 분리해 표기했기에 C1과 C2가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2절 후렴에서는 C2가 변형된 C2'가, 3절에서는 C1과 C2의 흔적을 언뜻 바로 찾기 힘들 만큼 완전히 변형된 C3가, 마지막에는 그 C3가 다시 한 번 변형된 C3'가 등장하여, 모든 후렴에서 완전 동일한 반복이 없는 역동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또한, 2절이 시작되며 랩이 나왔다가 B2로 이어지고, 여기서 이미 차분한 B1과는 다른 빌드업 방식을 보여주는 B2의 고조된 전개를, 또다른 랩이 이어받는다. 2절 후렴구로 들어가며 터져야 할 전개를 랩이 가로막고 후렴구의 앞 구간을 대체해버리는 이 방식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흐름에 제동을 걸어버린다. 이 흐름은 단순히 반전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비워진 공간이 많은 후렴구 멜로디 대신 확 트이는 화성 진행과 함께 랩 파트로 가사를 밀어넣으면서, 화자의 감정을 쏟아내듯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뒤로 이어지는 C2'의 멜로디에서는 앞선 후렴들에서보다 더 급진적으로 감정 고조를 이끌고 가는데('내 심장을 멈추지 마'), 랩과의 대비를 통해 이 역할을 더욱 부각하는 효과 또한 부여한다. 

 

그런 2절 후렴을 지나고, 보컬과 랩이 혼합된 브릿지까지 지나갔을 때, 충분히 몰아치고 간 안정감이 들어야 할 구간에 달한다. 하지만 이 곡은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갈 뿐, 다시 한 번 치고 올라가야만 곡의 최고점을 만날 수 있다. 곡이 끝나는 이 지점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곡명 'Tic Toc'은 장동우의 랩 톤으로 무게가 실어지며 강조되고(E), 김성규와 남우현이 랠리하는 애절한 보컬 파트(C3, C3')와 두 차례 교차되면서 엔딩을 맞는다. 

 

이렇게 단 한 구간도 반복이 없이 정성 들여 감정을 쌓아 올린 이 곡의 짜임은, 끊임없이 예측을 깨며 듣는 재미를 주고, 한 곡 안에서도 격변하는 듯한 감정의 표현을 해내기도 한다. 물론 이 곡은 기본적으로 음악적 특성, 가사, 그리고 보컬에서까지 모두 애절하고 감성적인 특성이 가득하게 만들어졌기에, 평범한 곡 구조를 가졌더라도 당연히 그러한 곡이 되었겠지만, 이 독특한 구조 덕분에 더욱 특별하고 서사적인 울림을 얻게 되었다. 

 

 

 


Feel So Bad

*[INFINITIZE] (타이틀: 추격자) 수록곡

A - B1 - C1 - C2 - E(??) - Rap - B2 - C1' - C2'(+Rap) - D(Vocal+Rap) - C1''(Key ↑) - C2''(Key ) - F(??)

 

제이윤의 인트로곡 'INFINITIZE', 한-김의 타이틀곡 '추격자'가 비장하게 달려온 속도감 속에 숨겨진 서정적인 요소를 수면 위로 잡아끌어 올리는 'Feel So Bad'은, 비트감보다는 소재와 서사의 구체성에 강렬함을 두어서 앨범의 테마를 강조한다(노래 내용은 가사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으니 생략). 하지만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존재감을 갖는 이 곡의 요소는, 역시 격변하는 구조다. 

 

먼저 이 곡도 'Tic Toc'과 마찬가지로 후렴구를 적극적으로 변형한다. 2절 후렴은 1절과 비교했을 때 맨 앞과 맨 뒷부분의 멜로디가 과감하게 잘려나가 있고, 가사는 스토리가 더 전개된 이후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1절 C2에서 'can never be mine'이라며 아련한 보컬로 마무리했던 마지막 두 마디가, 2절 C2'에서는 '어떤 선택이 맞는지'라고 보컬을 막아세우는 랩으로 바뀌어, 화자의 태도 변화를 표상한 방법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C2'를 마무리하는 랩에서 브릿지로 넘어가는 연결이 한 구간처럼 너무 자연스럽다. 브릿지까지 길게 질주하고 난 뒤의 후렴은 두 번 키가 상승되며 더 빠르고 높이 곡의 정점까지 치닫는다. 

 

한편, 이 곡의 구성이 가장 독특한 이유는 분류하기 모호한 정체불명의 삽입구가 2가지 등장한다는 것이다. 먼저 1절 후렴까지 무난하게 흘러가다가, 2절이 시작되기 직전 이성종의 보컬 파트로 곡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삽입 구간이 나오는데(E, 꿈 속에서 난-), 이 부분의 촉촉한 멜로디와 가사와 보컬, 그리고 이후에 전혀 반복되거나 변용되지 않는 점이 곡의 정서를 아련하게 흐리고 사라진다. 그리고 곡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부분(F, i need you-)에서 다시 한 번 비슷한 방식으로 이성종의 목소리를 쓰는데, 여린 보컬 활용 방식만 유사할 뿐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멜로디(정확히는 브릿지에서 같은 리듬과 가사가 나오긴 하지만, 멜로디와 키가 모두 달라 반복으로 보기 어렵다)로 애틋한 여운을 남긴다. 각각 곡에서 단 1번씩만 등장하는 구간들이지만, 이 곡의 감성을 가장 드라마틱하고 특징적으로 만드는 포인트다. 

 

 


Follow Me

*[Season 2] (타이틀: Last Romeo) 수록곡

A - B1 - C - E (Key ↑) - Rap - B2 - C' - D(Rap) - C'' - C'

 

묵직한 감성의 앞선 두 곡보다는 희망적으로 벅차는 메시지의 곡으로, 구간의 구성과 순서로 볼 때는 두 곡에 비해서는 일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곡에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이런 밝은 전개를 조옮김으로 풀어낸 점이다. 1절이 끝나면 삽입되는 간주와 멜로디 구간('점점 내 맘이 움직인다-')에서 키가 화사하게 높아지고, 새로운 장이 열린 것처럼 분위기가 반전된 상태에서 2절이 진행된다. 랩과 B파트, 후렴구까지, 1절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 상태를 표현하여 입체적인 한 곡의 스토리를 전개한 것이 인상깊은 곡이다. 

 


제이윤의 아이돌 곡 중에서 이와 유사한 전개 방식을 쓴 것에는 러블리즈의 'Hug Me'가 있다. 

C1 - A - B - C1'(Key ↑) - C2 - A'(Key ) - B' - C1'' - C2'' - D1 - D2 - C2'' 

 

역시 'Follow Me'처럼 따뜻한 정서를 전하는 곡인 'Hug Me'는 곡 중간에 키가 2번 높아지는 구성이 특징이다. 이 곡은 차분한 후렴으로 곡을 시작해서 총 4번 후렴구가 나오는데, 각 마지막 후렴을 제외하면 각 후렴구마다 키가 달라져 있고 코러스 디테일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곡 흐름의 적극적인 변화에 따라 보컬의 감정 표현도 점점 고조되는 점에서, 제이윤이 만드는 음악의 색깔이 묻어나는 곡이다. 

 

 

 


김성규 (1989)

 

 

분석해 본 제이윤의 아이돌 노래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강조되어야 하는 구간일지라도 디테일 변화를 주어 완전한 반복이 없도록 한 점, 곡의 일반적인 구조를 벗어나는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점, 이미 감정선의 최고점을 지났다고 여겨지는 시점에서도 더 올라갈 곳을 남기는 반전을 주는 점 등이다. 그래서 그의 곡들은 예상을 깨는 지점이 많지만, 그 예상을 빗나가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상이, 최근에 많이 나온 독특한 구성의 K팝 곡들, 일명 급발진 노래들로부터 느껴지는 '특이하다! 실험적이다!'와는 차이가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그가 만든 곡들에는 화성 진행, 멜로디, 가사 등에서 충분한 감성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위 같은 독특한 전개 방식은 이런 음악적 속성과 만나서 곡에 부가적인 서사성을 부여한다. 계속해서 제이윤과 대비를 시키고 있는 한재호-김승수의 곡들의 경우에는, 음악적 특성은 충분히 감성적임에도 불구, 한 곡 내에서 굳이 감정 변화나 반전을 의도하는 곡은 자주 보지 못한 것 같다. 대신 동일한 정도의 에너지로 제동 없이 달려나가서 정석적인 기승전결을 따라 끝마쳐지고 기억에 남는 것이 이들 곡의 어필 방법이다. 

 

하지만 제이윤의 곡들에는 계속해서 변화가 의도되어 있다. 곡의 각 구간을 세밀하게 잘라내고 이어붙인 접합부들은, 음악의 서정성과 스파크를 일으켜서 화자의 감정 변화를 이정표처럼 알린다. 일반적으로 한 곡에서 스토리 변화가 진행된다면 감상자는 그것을 가사를 통해서 이해하게 되지만, 위 곡들처럼 음악적인 연출이 뚜렷한 경우에는, 가사가 명확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 않더라도 음악적인 흐름과 변화로부터 자연스럽게 서사의 흐름까지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히 듣는 즐거움을 넘어서, 곡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느껴지는 감정 변화와 그 과정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런 점들이 그의 노래의 큰 매력이다. 유사한 감수성을 표현하는 작곡가는 더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노래의 틀을 무너뜨려서 곡에 몰입시키는 방식은 K팝에서는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 시기에 가장 사랑한 K팝을 떠올리면 그려지는 색깔도, 전부 스윗튠과 제이윤의 곡들이 합을 이루며 쌓아 온 인피니트의 색깔로 유일하기도 하다. 이렇게 인피니트는 확고한 음악적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고, 그 정체성은 또한 단순히 가요계에서 살아남는 데에 필요한 개성을 넘어서, 팬들의 깊은 몰입까지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들의 행보는 지금까지의 K팝 중소 기획사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한때 유행했던 음악, 당대 인기 있었던 아이돌이라는 추억의 존재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울림이라는 종류의 감정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게 하고, 그 유일했던 색깔을 다시금 찾게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래서 10년 전에 하필 내가 여중딩이었어서, 하필 인피니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회 집단에 속해 있었어서, 이들의 방식으로 취향을 형성할 수 있었어서, 그리고 이들에 대한 기억의 기록을 남길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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