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를 아이돌로 만드는 비주얼 콘텐츠 - 비디오의 시대가 허락하는 것들

2021. 9. 22. 22:02k-pop review & essay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처음 나온 지 40년이 되었고, 나는 당연히 이 노래를 TV에서 보고 접했다. 또 아이러니하게 나는 비디오와 TV 시대로의 변화를 지탄하는 이 곡을 부르는 가수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무대는 무대일 뿐이라지만 어쨌든 때로는 노래의 메시지도 뒤로 할 만큼 시각이란 감각의 힘은 강하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시각 요소 때문에 이끌려서 좋아하게 된 음악이 엄청나게 많다. 

단순히 가수가 음악 콘텐츠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나 화려한 비디오 기법으로 시각적인 즐거움도 자극하는 역할을 하며 셀링에 총체적인 감각을 동원한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가수 안에서 분할되는 개념으로 아이돌이라 부르지 않나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아이돌을 만드는 수많은 영상물들이 나왔고, 그 기획의 싸움도 치열해져 왔다. 

이 글에서는, 나올 수 있는 뮤직비디오와 각종 신들의 다양한  종류와 디테일은 이미 다 나온 이 비디오의 시대 속에서, 아이돌의 기획 영상물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서 앨범 콘셉트, 멤버 구성, 퍼포먼스 등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달성한 이들을 골라서 보려고 한다. 아래 콘텐츠들은 발매되는 음악 그 자체를 서포트하는 정식 뮤직비디오와는 별개의 영상물들이며, 오로지 영상에 의존해서 음악으로는 다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K팝신 내에서의 영향력, 신선함, 퀄리티의 측면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 인상 깊었던 것들로 4가지를 올려본다. 

 

 

 

 

 

 

f(x) & THE BOYZ & TOMORROW X TOGETHER & OHMYGIRL 리뷰

: 가수를 아이돌로 만드는 비주얼 콘텐츠 - 비디오의 시대가 허락하는 것들

 

 

-영상 제목을 클릭하면 영상을 감상 가능한 링크로 이동합니다-

 

 

1. 앨범 소개형

📎 f(x) 에프엑스 "Pink Tape"  The 2nd Album Art Film (2013)

 

K팝 산업을 관심 있게 지켜본 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 영상은, 티저계의 새로운 바람이었다. 언뜻 일반적인 티저 영상 같지만, 사실은 타이틀곡인 '첫 사랑니'의 실제 뮤직비디오 콘셉트와는 전혀 관련이 없이, 새로운 앨범의 시각적 분위기와 메시지를 독특하게 함축해 전하는 목적으로만 제작되었다. 지금은 많은 아이돌의 콘텐츠에서 이런 식으로 시각적 효과와 오브제들을 나열하여 '콘셉트 필름', '콘셉트 티저' 등으로 부르는 이미지 영상물이 등장하는데, 이 핑크테이프 아트 필름이 그 흐름을 일으킨 시초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아트 필름'으로 명명된 것이 무색하지 않게 심미적인 시각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주로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형형색색의 투명한 빛을 표현했으며, 자연광 아래의 멤버들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한다. 후반부에 다채로운 색감을 톤다운된 필름 노이즈로 누른 듯한 화면은, 최근 트렌드였던 레트로 하이틴 영화 분위기도 떠올리게 한다. 반짝거리면서도 퇴폐적인 이 시각적 느낌은, 몽환적이고 사랑스러운 배경 음악인 에프엑스의 '미행 (그림자: Shadow)'과 만나며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초반 크리스탈의 영어 내레이션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며 타이틀곡 '첫 사랑니'의 배경을 '사랑'의 키워드로 확장한다. 영상 속 인물들은 아이처럼 웃고 즐거워하지만 종이를 입에 넣어 씹는 등 해석을 요하는 기이한 행동들을 하는데, 이 때문에 영상은 단순히 예쁜 화보물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앨범이 가진 내재적 의미와 독특성을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숨 막힐 정도로 농도 짙은 키치한 감성은, 현재는 많은 이들이 열광하여 비주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K팝 신에서 '민희진(당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트 디렉터로, 해당 영상물의 디렉터) 감성'이라는 고유 개념으로 정립될 정도로 매우 신선했고 마니아를  형성하기 충분했다. 디렉터 민희진의 의도처럼 웰메이드 앨범을 서포트해서 '로맨틱한 에프엑스'를 그려낼 수 있었던 이 콘텐츠는, 음악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감각적 지점을 비디오를 통해 200% 충족시켰다. 

 

 

 

 

 

2. 멤버 소개형

📎 THE BOYZ(더보이즈) IDENTITY FILM 'GENERATION Z' (2020)

 

'아이덴티티 필름'으로 이름 붙은 이 영상은, 불과 1년여 전 더보이즈로부터 탄생한 낯선 종류의 콘텐츠다. 때는 2020년, 엠넷 서바이벌 <로드 투 킹덤(Road to Kingdom)>이 방영되던 시기에, 일명 '화랑 퍼포먼스'로 불리는 더보이즈의 무대가 방송이 되고 긍정적 반응을 얻던 중, 예고 없이 이 영상이 공개되었다. Z세대 감성을 자극하겠다는 포부가 돋보이는 제목을 줄여 '제제트'라고 불리는 이 영상은 (비록 대중적 화제성까지 가지는 못했더라도) K팝 팬덤 내에서만큼은 뜨거운 화제 몰이를 하고 많은 팬을 유입시킬 수 있었던 독자적인 팀 소개 방식이었다. 

 

 

11인조 다인원인 데다가, 팀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전원이 비슷하게 소년미 있는 이미지상으로 구성된 더보이즈는, 이 영상에서 한 명씩 명확히 다른 팀내 포지션을 어필한다. 영상은 11명 각자의 이미지에 맞는 양질의 비주얼 연출이 멤버들을 짧게 소개하며, 특히 영상 초반부에는 멤버들의 개성을 극단의 색깔로 대비시키는 순서를 구성해 시선을 잡아끈다. 

 

음성에서는 멤버들의 인터뷰에서 발췌된 내용이 나온다. 자기 자신에 관한 진솔한 인터뷰로부터 뽑아낸 캐치프레이즈는, 각 멤버의 영상 분량이 끝나는 시점에 타이포그래피로 등장하며 멤버가 어필하는 포지션을 간단명료하게 강조한다. 이러한 영상 전개 방식은, 이들이 계속해서 Z세대를 강조하듯 Z세대 소비자의 콘텐츠 수용 방식 특성을 반영해, 최소한의 정보량만을 제공하되 감각을 자극하며 멤버들을 효과적으로 인식시킨다. 

 

더보이즈의 기획사에서는 <로드 투 킹덤> 방송을 통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새로운 팬들을 위해 이 영상을 제작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기존 팬들 역시 환호한 영상이지만, 이들을 11인 1색의 비슷비슷한 소년들로만 인식하고 있던 이들에게는 각 멤버의 11가지 색을 샘플러처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최고의 입문 가이드인 셈이다. 이 영상은 이전에 없었던 독자적인 기획이자, 다인원 팀이란 특성에 가해질 수 있는 디버프를 명쾌하게 극복했고, 비주얼이 강점인 팀으로 팬들이 좋아할 법한 비주얼 판타지를 실현해 준 시원한 공략법이었다. 

 

 

 

 

 

 

3. 퍼포먼스형

(1) 공간과 만난 퍼포먼싱

📎 TXT (투모로우바이투게더) The Dream Chapter: MAGIC Concept Trailer (2019)

 

아이돌이 동영상으로 퍼포먼스를 담아내는 것은 흔하다 못해 당연하지만, 이들이 이 트레일러에서 선보인 무대는 여느 퍼포먼스 영상처럼 단순히 멤버들이 곡의 안무를 추는 모습을 찍고 끝나지 않는다. 앨범 발매 전에 '콘셉트 트레일러' 영상을 제공하는 아티스트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해당 콘텐츠명으로 검색하면 이들의 퍼포먼스 영상이 가장 먼저 나올 만큼, 이들의 트레일러 영상은 임팩트 있었고 작품성 면에서도 눈에 띈다. 새로운 앨범의 콘셉트와 스토리를 예고하는 이 영상에서는 촬영 스튜디오 공간을 백분 활용하여, 라이브 무대에서는 보여주기 힘든 퍼포먼스를 구사하고 있다. 

 

 

멤버들은 빛의 그림이 공간을 채우는 거대한 미디어 아트 가운데서 퍼포먼스를 한다. 섬세하게 연출된 영상 맵핑 기법과 카메라 무빙이 판타지한 공간 배경을 조성하고 또 다른 공간으로 전환시키며, 멤버들은 하늘 위, 도시 거리, 우주, 물 속, 기하학 패턴 등 시공을 넘나드는 세계관 속에 완전히 일체화되어, 생동감 있는 동작으로 공간 이동을 연기한다.  3-4분의 분량 내에서 끊임없이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독무와 군무와 협동 안무를 오가는 각각 다른 퍼포먼스가 롱테이크로 담기는데, 그 자연스럽고 긴 호흡에 숨을 죽이고 감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멤버들의 춤은 스튜디오의 바닥과 벽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이를 카메라를 회전시키며 촬영하는 등, 3차원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다채로운 공간 활용을 선보이며 놀라운 장면들을 그려낸다. 가령, 푸른 색감과 수중 생물들을 투사시킨 공간에서 멤버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마치 실제로 물 속에서 춤을 추는 듯 가볍고 유려하게 공중 속을 움직여 눈을 의심하게 되지만, 비하인드 촬영본을 보면 카메라 구도를 이용한 눈속임임을 알 수 있다. 

 

마법이라는 앨범의 키워드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영상은 그래픽 투사 외에는 인위적 처리를 가하지 않고 아티스트가 직접 몸으로 뛰어드는 퍼포먼스를 현란하게 담아내며, 마치 실제 같은 마법, 마법 같은 실제를 보여준다. 단순히 환상적이고 꿈 같은 '느낌'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퍼포먼싱이 강점인 아티스트의 역량을 훌륭한 안무와 공간 미술에 담아내어, 너무나도 예술적인 퍼포먼스 영상을 만들었다. 

 

 

 

 

(2) 아이디어와 만난 안무

📎 오마이걸 - 'CLOSER' 안무TOP ver. 영상 (2015)

 

오마이걸의 가장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노래로 알려진 'CLOSER'에는, 우주 속의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곡 콘셉트에서 착안하여, 별을 모티브로 안무가 제작되었다. 이에 연관된 시적인 가사, 안무 동작, 그리고 멤버들 간 통일된 의상의 합이 마치 별의 움직임을 보는 것처럼 은은하게 연출되며 이 모티브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곡의 안무를 감상하면, 묘하게 대칭을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배치된 대형이 자주 보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사실 각 멤버들의 위치가 별자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안무 중 일부 구간은 멤버들의 자리를 선으로 연결했을 때 황도 12궁과 북두칠성 등의 별자리 형태가 나타나도록 의도되어 있다. 하지만 그 형상은 위에서 내려다볼 때 정확히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무대의 정면샷에서는 확인해 보기 힘들다. 또 그 전에 곡의 안무가 이미 별자리 동선의 존재를 모르고 보더라도 예쁘고 부족함 없도록 완성되어 있기에, 일반적인 방송 무대에서는 이 점을 잘 조명하지 않아 왔다. 

 

 

대신, 오마이걸의 기획사는 별도의 부감샷 촬영본을 공개하였다. 영상에서는 독특하게 '정수리샷', '항공샷' 등으로도 불리는 수직 방향 상공에서 안무를 촬영하여 멤버들의 얼굴 표정이나 노래 부르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최소한의 카메라 움직임만으로 고요하게 안무를 담아낸다. 간소화된 별자리 모양을 군더더기 없이 그리며 이동하는 동선은, 처음에는 노래와 이미지 속에 숨어 있다가 이 영상을 통해서 그제야 진가가 드러난다. 이 영상은 오마이걸의 공식 채널이 아니라 네이버뮤직이라는 외부 창구를 통해 공개가 되어, 본래의 정면 안무는 있는 그대로 충분히 감상한 뒤에야 숨겨진 기획 의도를 알아차리는 2차적 재미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별자리라는 아이디어는 이런 촬영 장치가 있기에 출발이 가능했다. 물론 하나의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찍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앞선 세 영상처럼 별도의 영상술이나 편집이 활용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상 구도로만 구현할 수 있는 안무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팬들에게 제공했다는 것은, 비디오 콘텐츠를 다룬 색다른 관점이다. 곡과 콘셉트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주는 방식으로 이들은, 팬들이 생소한 시점에서 아티스트를 바라보고 그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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