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4. 00:01ㆍk-pop review & essay
※ 여름은 진작에 끝났지만 기존에 올린 레드벨벳&더보이즈 앨범 리뷰에서 레드벨벳 부분을 수정하고 두 편으로 분할해 재업로드를 하게 되었습니다. 더보이즈 앨범의 리뷰가 있는 전편 링크는 포스트 하단에! 😅
[The Red Summer - Summer Mini Album] & [THE BOYZ 4th MINI ALBUM [DREAMLIKE]] 리뷰
: FEVER vs ICE
한여름의 열기를 하루의 시간에 펼친, 레드벨벳 [The Red Summer - Summer Mini Album] (2017.07)
아이스큐브처럼 청량감을 눌러 담은, 더보이즈 [THE BOYZ 4th MINI ALBUM [DREAMLIKE]] (2019.08)
아이돌 여름 음악은 대체로 비슷한 목적성을 띤다. 여름이고 뭐고 나만의 길을 가고 싶어도 이미 온 국민 정서가 계절에 휘둘려서 어쩔 수가 없다. 일상의 질서를 흩뜨리는 더위에 대한 반동으로 대중은 돌파구를 찾듯 비현실적인 여름의 판타지를 찾아 나선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 판타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실에 없는 청량감을 대리 경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현실을 미화해서 여름이라는 이미지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좋아하든 우리는 좋은 노래가 주는 낭만을 통해 일상을 잠시 벗어나 환상의 여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레드벨벳의 위 앨범은 뜨거운 여름의 특성을 뜨거운 에너지로 승화, 더보이즈의 앨범은 뜨거운 여름을 도피할 수 있는 차가운 쾌감을 선사하는 방법으로 개성적인 여름 판타지를 제시한다. 또한 레드벨벳의 앨범은 트랙 간 유기성을 시간의 연속성 위에, 더보이즈의 앨범은 균일함 속에 담아내며,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는 각각의 재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 앨범이 콘셉트와 개별 수록곡으로 계절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리뷰를 해보려 한다.
[ The Red Summer - Summer Mini Album ]
01 빨간 맛 (Red Flavor) [★★]
02 You Better Know [★★]
03 Zoo [★★]
04 여름빛 (Mojito) [★]
05 바다가 들려 (Hear The Sea)
*앨범 리뷰의 별점은 [ ], [★], [★★]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걸그룹의 여름 컴백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사실 누가 정한다고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모두가 당연스럽게 청량하고 시원한 것에 손을 뻗는다. 이때 음악 산업은 손 가까이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들이 원하는 그 맛을 보여주며 대중성을 획득한다. 가령 바다나 휴양지에 온 듯한 공간 설정과 푸른 색감, 또 아티스트가 신나게 즐기는 모습 등은 감상자에게 시청각적으로 대리 만족을 제공하는 대표적 이미지다(물론 걸그룹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남자 아이돌에게도 유사한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대중의 친근성이 높은 여자 아이돌에게 대중적 음악을 들려줄 것이란 기대가 대체로 더 크게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이 이미지를 지겹게 쓴다 해도 진부해질 새가 없는, 레드오션이면서도 비교적 안전성이 있는 특이한 시장이다. 이 더위의 도피처야말로 소비자가 기대하는 정답이고, 생산자에게는 당연한 정공법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를 바란다는 이들도 끊임없이 있어 왔지만, 야심차게 계절감을 등지는 시도는 또 외면받아 온 역사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그' 포인트를 새로운 해석으로 찔러 주는 것이야말로 걸그룹 여름 곡의 퍼플오션을 누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벨벳은 여름을 말하는 방식을 살짝 바꿔서 색다른 곳을 찔렀고, 익숙한 듯 새로운 감성과 곡의 완벽한 퀄리티로 성공을 했다.
[The Red Summer]는 빨간 색의 이미지를 통해 여름의 뜨거운 특성을 콘셉트로 활용한다. 아이돌의 여름 곡 중 열기 그 자체를 이미지를 차용한 경우는 많지 않다(물론 대표적인 사례가 직속 선배인 f(x)의 곡 중에 있지만... 두 곡을 다른 경우로 본다는 내 관점을 나중에 얘기해 보겠다). 이러한 시도는 마치 이 여름의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계절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미화(?)다.
이 앨범이 여름을 미화하는 방법은 본격적이다. 트랙의 순서는 여름의 하루를 묘사하는 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구사하고, 각 트랙은 개성적인 감성을 통해 하루의 조각들을 설명하며 시간 선상의 스토리를 따라오기를 유도한다. 이 구성은 구체적인 서사성을 연출하면서, 마치 우리가 경험하는 여름이 이처럼 생기 넘치고 아름다웠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는 이러한 환상을 매개로 이 계절을 낭만적인 이미지로 떠올리며 이 노래들을 더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또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있다. 물론 위와 같은 트랙 배치가 이 앨범의 중요한 정체성이기도 하나, 무엇보다 좋은 것은 개별곡들이 모두 멜로디와 사운드가 매우 좋고 세련되었다는 점이다. 트랙 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다채롭게 보고 들을 거리 많은 이 앨범은, 수록곡을 통틀어 걸그룹 여름 앨범 중 최상의 완성도라고 생각한다. 이 조형미 높은 다섯 트랙에 걸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한여름의 아침부터 밤까지 달려가는 낭만 그 자체의 하루를 경험해 볼 수 있다.
01 빨간 맛 (Red Flavor) [★★]
'빨간 맛'은 사랑의 톡톡 튀는 감정을 색과 맛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팀 콘셉트의 정체성인 빨간색을 활용해 대히트를 달성함으로써 기존에 정립된 '여름 그 맛'을 레드벨벳의 색깔로 새롭게 정의했다. 이 곡은 여름의 뜨거움의 이미지를 다루지만, 녹아내리는 느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단단한 에너지로 승화하여 여름의 맛을 특별하고 당당하게 이름붙인다.
독특한 시도를 많이 하는 레드벨벳의 디스코그래피만 들여다본다면 '빨간 맛'이 그 노골적인 대중성에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걸그룹 썸머송 가운데서는 나름의 선진적인 특색이 있는 곡이다. 이 곡의 색감은 채도를 한껏 높인 와중에 명도는 살짝 낮춘 강렬한 비비드 톤으로, 상큼발랄하지만 단도진입적이고, 무겁고, 강하게 때린다는 감상이 주가 된다. 박진감 있는 비트와 묵직한 사운드, 멤버 전원이 동원된 타이트한 훅 보컬 등이 '빨간 맛'의 이러한 색을 만들어 나가고, 가사 역시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당돌하고 확실한 사랑의 마음을 드러낸다. 이 외에도, 단순하고 중독적인 후렴구에 절마다 보컬 애드리브를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는 등의 디테일도 이 당당함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배치되었다. 또 멤버 각각의 캐릭터를 과일의 맛으로 해석한 기획은 이 당찬 힘을 달콤하고 화사한 이미지로 발산시킨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생기와 열기로 붐비면서도 곡의 모든 요소를 아울러 거추장스러운 부분 하나 없이 정리된 깔끔함이 '빨간 맛'의 경쾌한 에너지를 완성한다.
02 You Better Know [★★]
곡을 시작하는 신스 사운드는 마치 고요하게 끓어 오르는 여름 아침의 소리처럼 들리며, 같은 악기가 곡이 마쳐질 때까지 계속되면서 여름 하루의 식지 않는 열기가 표현되는 듯하다. 2번 트랙이자 커플링곡인 이 곡은 '빨간 맛'의 뜨겁고 열정적인 색감과 시원하게 터지는 계절감은 그대로 가져가되, 새콤하고 예리한 타이틀곡과 달리 감성적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정서를 보여준다. 이 곡은 메시지와 멜로디가 함께 상승의 이미지를 그리며 잘 어우러져 서로를 강화해 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위로의 가사과 시원하게 벅차는 음악이 어느 쪽도 뒤지지 않고 서로를 지지하며, 위로와 음악 모두가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또한 멤버들의 보컬이 전하는 따뜻한 힘도 청량하고 강력한데, 이 목소리 배치를 활용한 방식이 메시지를 돕고 있기도 하다. 특히 후렴구에서 포근하면서도 분명한 음색의 슬기와 웬디의 노래, 힘 있고 상큼하게 터지는 챈트식 합창, 투명하고 호소성 있는 조이의 노래가 연달아 이어지는 부분에서, 각 파트의 매력과 소화력으로 인해 뒤의 파트가 더욱 힘을 받게 되는 유기적인 효과가 잘 느껴진다.
03 Zoo [★★]
정글 리듬과 동물 소리, 긴장감 있게 시작되는 보컬은 영화 한 장면 같은 공간적 배경을 순식간에 펼쳐 놓는다. 이 공간의 여과 없는 음악적 표현에 의해, 어딘가 습하고 뙤양볕이 내리는 현장감의 묵직한 트로피컬 하우스다. '빨간 맛'에서처럼 사랑의 감정을 특별한 방식으로 말하는 노래이지만, 신기하고 낯선 마음에 집중하고 있다는 면에서 다르다. 그 차이는 가사에서만이 아니라 음악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곡의 멜로디는 긴장감을 조이고 풀었다 늘어지게 하는 등의 다양한 보컬 사용으로 이 감정을 표현한다. 또 훅을 마치 여흥구처럼 내뱉는 동안 여러 효과음 사운드가 드롭식으로 뒤섞이는 트로피컬한 후렴구 역시 사랑의 순간을 관망적으로 즐기는 태도를 보여준다.
곡 구성에서 반복이 적고 계속해서 새로운 구간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도 이 곡의 매력이다. 우선 1절과 2절의 벌스 멜로디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1절까지 들었을 때는 훅을 강조하기 위해 앞부분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이와는 전혀 다르게 길게 끌고 가는 2절을 통해서는, 청자로 하여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도록 한다. 또 브릿지 랩이 끝난 뒤 마지막 훅으로 넘어가는가 싶다가 그러지 않고 새로운 브릿지가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재미의 일환이다. 현장감과 재미 요소로 가득해 가장 바쁘게 느껴지는 이 곡은, 여름의 하루 가운데 가장 뜨거운 낮의 순간을 그려낸다.
04 여름빛 (Mojito) [★]
심장 박동 소리처럼 두근대는 인트로는 잔잔하게 솟구치는 흥분감이 느껴진다. 도입부를 조용하게 눌러 주는 랩, 그리고 일정한 박자를 타며 다함께 목소리를 맞추는 후렴구 보컬은 차분하고 정돈된 듯하지만, 그 아래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운드는 탄산처럼 짜릿하고 간지럽다. 거기에 '초록빛, 레몬빛, 투명빛, 푸른빛' 같은 온갖 청쾌한 감각으로 범벅이 된 가사는 화하게 퍼지는 시원함을 더한다. 이 즐거운 여유로움을 기반으로 한 몽환적인 속도감은,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낸 뒤 살짝 저문 푸른 빛 시간대의 감성을 칵테일 섞인 오묘한 맛으로 제시한다.
05 바다가 들려 (Hear The Sea)
바쁘고 재미있는 트랙들을 지나 마지막에 발라드곡이 엔딩크레딧처럼 깔리는 것은 여느 아이돌 앨범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순서이지만, 이 곡이 발라드를 통해 계절감을 그려내는 문체는 그 예상을 독특하게 비트는 감성을 선보인다. 해변가를 거닐며 모래를 밟고, 콧노래를 부르고, 바닷바람을 맞는 등의 여름 밤의 로맨틱함은 기대대로 구현되고 있지만, 어딘가 이상하고 공허한 기분이 그 위에 겹쳐진다. 이 묘한 느낌을 스며들게 하는 전조는 이 곡의 가장 특징적인 점이다. 또 투명하게 찰박이는 퍼커션 드럼 사운드도 일반적인 발라드스럽지는 않은 특이한 여름 바다 향을 불러오며, 부드럽게 합쳐지는 멤버들의 보컬과 따뜻한 스트링은 쓸쓸한 공기를 감싼다. 이렇게 파도 소리가 맴도는 선선한 밤을 끝으로, 앞선 4곡을 지나며 설레게 달려 온 여름의 하루는 '바다가 들려'를 통해 추억 속에 적셔진다.
▼ (1) 더보이즈 [DREAMLIKE] ▼
#토비레코드: 주로 K팝 얘기하는 블로그 [ rtbs.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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