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1. 01:54ㆍk-pop review & essay
뭔가를 좋아하게 되면 마음의 한 켠은 따스함이나 뜨거움으로 채워지는 한편
다른 한 구석에서는 상실을 겁내는 시린 불안이 피어난다.
그 양면의 성질이 모두 깨달아질 때 좋아하는 마음은 비로소 애틋하게 되고 사랑이 된다.
뉴진스 'Ditto' 리뷰 - 좋아하는 한 녹지 않는 눈
당시까지는 여름으로만 기억되고 있던 뉴진스라는 팀의 겨울 느낌을 처음 들어본 것은, 뉴진스의 누데이크 콜라보 케이크 출시 티저 영상에서였다. 영상 속에서는 눈 내린 숲속을 가르는 바람의 시점으로 따라간 시선 끝에, 상자 속에서 하얀 크림으로 덮인 토끼 모양 케이크가 나온다. 영상에 깔린 음악은 단순하게 패드와 퍼커션 소리에 아주 작게 들리는 보컬 변형 효과음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특별할 것은 하나도 없는 전부 평범한 소스들이지만, 시각적인 장면과 조화가 되면서 겨울 공기와 어울리는 무드가 조성된다.
이때는 음악이 너무 단촐해서, 뉴진스의 신곡에 대한 예고인지, 아니면 그냥 흘러 지나가는 배경음인지 추측을 하기도 모호한 정도였는데, 그 와중에 딱 한 가지 인상에 남았던 점이 있다. 패드 소리가 희미하고 넓게 퍼지는 위로, 전혀 둔탁하지 않고 선명한 퍼커션과 클랩 소리들이 올려져서 간격 짧은 리듬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독특한 게 없으면서도 새롭고 신비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그전 뉴진스의 노래들이 트렌디한 비트에 향수적이고 유한 멜로디를 얹어서 산뜻한 인상을 자아냈던 것처럼, 이 음악도 별것 없는 구성 요소가 양면적인 색깔을 내면서 색다른 조화가 느껴진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 음악이 뉴진스의 노래로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NewJeans 'Ditto' - Music
'Ditto'였던 그 음악은, 설원 속 하울링 같은 허밍을 인트로로 얹으며 더욱 찬 겨울 바람처럼 불어온다. 그 고요한 패드 소리는 'Ditto'에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뭉근하게 이어지고, 다닥다닥한 간격으로 두드려지는 퍼커션과 클랩의 소리는 마치 모닥불이 타는 듯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 같다. 여기에 나직한 음역에서 편안한 창법으로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목소리까지 합쳐지며, 이 곡은 서늘하고 긴장된 겨울 새벽의 틈을 타 전해지는 묘한 설렘이 된다.
뉴진스가 'Attention'을 통해서 여름이라는 계절이 어울리는 팀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었다면, 'Ditto'로는 또다른 계절인 겨울의 분위기를 뉴진스만의 소리로 만들고 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허밍은, 마치 찬 공기 속에 울려 퍼지며 하얀 입김이 피는 것 같은 장면이 바로 그려질 만큼,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겨울의 테마를 압축적으로 들려주며 순식간에 그 그림 속으로 빠지게 한다.
이 곡이 주는 양가적인 감성은 음악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설명이 된다. 먼저 이 곡을 구성하는 악기들의 조화가 그렇다. 곡의 전반을 기본적으로 감싸고 있는 콰이어 패드는, 안개를 품은 듯 불투명한 음색과 그 두터운 양감에 포근한 느낌이다. 하지만 베이스 음역대를 안정적으로 잡아주지 않고 중음역부터만을 아슬아슬하게 머물며, 묘하게 얼음 위를 움직이듯 불안하고 차갑다는 인상도 있다.
공간감은 이렇게 흐릿한 소리로 채워지는 동시에, 리듬을 꾸미는 퍼커션과 클랩은 선명도 높고 버석버석하다. 패드가 정직하게 공간 속에 흐르기만 한다면, 드럼은 독특하게 튀는 리듬을 가지고 귀에 박혀 온다. 퍼커션뿐 아니라 동동동 울리는 뭉툭한 킥 소리도, 정박이 아닌 특징적인 리듬을 찍으며 장르 특색을 내비친다. 이 리듬은 볼티모어 클럽 댄스 장르의 비트라고 하는데, 본래는 트렌디하고 신나는 일렉트로닉 댄스곡의 특색이지만, 이 곡에서는 서정적인 색깔에 녹아들며 특수한 감상을 자아내고 있다. 앞서 말했듯 찬 공기 속 바쁘게 온기를 지피는 모닥불 소리 같기도 하고, 조급한 정서의 청각적 표현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리듬꼴들과 드럼 소스의 음색 때문에, 이 곡은 마냥 복고적이고 수수하지만은 않다. 이 곡의 모든 요소가 과거지향적이지만, 바로 드럼 비트에서 기존의 K팝에서 거의 시도되지 않은 힙한 장르가 접목되며, 이 곡은 어디에도 없던 시대성의 퓨전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곡을 들으며 향수의 자극과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잘 조합된 음악적 시도로부터 놀라움을 찾을 것이다. 이 두 측면의 요소가 어느 하나가 아닌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이 곡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잔잔하지만 싸늘하게 흐르는 이 겨울 반주 위에는, 분절적인 멜로디 조각들이 눈송이처럼 내린다. 멜로디 구간 각각은 부드럽게 흐르며 노스탤직한 감상을 자아내지만, 각각의 구간들이 이어지는 접점들에서는 책장을 넘기듯 멜로디가 막혔다가 이어지면서 곡이 전개된다. 멜로디 중, 발라드처럼 흐르던 중간에 'Ra-ta-ta-ta 울린 심장'과 같이 탁탁 끊는 파트가 주는 효과도 유사하다. 이 세련된 긴장감이 곡의 풍부한 감정선을 너무 극적이지 않게 눌러주지만, 동시에 촉촉한 보컬의 멜로디들이 고조시키는 아련한 정서 자체는 청자에게 전체의 그림으로 소복하게 쌓여 나간다.
NewJeans 'Ditto' - Lyrics
Stay in the middle, Like you a little
Don’t want no riddle, 말해줘 say it back
Oh say it ditto
아침은 너무 멀어, So say it ditto
'마찬가지로'라는 의미의 'Ditto'라는 이국적인 말에 함축된 정서는 꾸밈없이 초조하다. 이 곡이 노래하는 나에 대한 동의, 같은 감정이라는 확신에 대한 바람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은, 곡의 사근사근한 어투가 조금은 슬프게 들리게 한다. 빈티지한 음악적 요소들에 섞이는 이 우울감은, 마치 끝을 알고 즐기는 꿈 같은 순간 같다. 꿈은 즐겁기에 이들의 목소리는 설레지만 한편으론 슬프고, 슬프고 긴장되지만 또한 바로 그 때문에 설레기도 한다.
훌쩍 커버렸어 함께한 기억처럼
널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여름 지나 가을
기다렸지 all this time
화자와 상대방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했음은 가사의 단 두 줄로도 알 수 있다. '훌쩍 커버렸어, 함께한 기억처럼'이라는 노랫말은, 뮤직비디오의 옛날 카메라 색감 속 교복을 입은 멤버들의 목소리를 타고 나오며,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듯 긴 추억과 성장의 서사가 된다. 이 곡에는 전반적으로 아련한 정서가 있지만, 특히 이 부분의 가사를 통해서 더욱 깊고 오랜 색이 바랜다.
Not just anybody, 너를 상상했지
항상 닿아있던 처음 느낌 그대로 난 기다렸지 all this time
I got nothing to lose, 널 좋아한다고
'Ditto'는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그 주인공들은 함께 있다. 가사와 같이 '처음 느낌 그대로 기다리며', 그 긴장감을 애써 놓지 않으려는 듯 조심조심 이어가는 멜로디, 포근하면서도 냉기를 품고 있는 음악이, 이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애틋한 설렘을 즐기는 찰나의 감정을 예쁘게 표현하는 듯하다.
❄️
좋아하는 한 녹지 않는 눈
포근한 공간감 한 켠에서 들리는 불안정한 클럽 댄스 비트는,
장르 퓨전을 통한 향수와 트렌드의 공존과 동시에
사랑의 양면적인 성질이란 정서 표현을 이루어낸다.
추억 재현의 콘셉트를 위해 K팝에서 빈번히 쓰여 왔던 복고와 교복 테마는,
그 함축성과 대표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차용되되
섬세한 감수성의 필터, 특별한 이 곡과의 만남을 통해 독자적인 서정성을 자아낸다.
이 모든 요소가 간접적으로 전하는 시린 듯한 감정은,
화자가 상대를 좋아하는 확실한 마음과 오랜 시간의 서사는 뒤로 한 채
답이 불분명한 애틋한 물음의 가사로 출처를 드러낸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할 때는 언제나 이렇게 한 구석에 불안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느리게는 언젠가 먼 미래에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
빠르게는 금방이라도 녹아 없어져질 것 같은 불안감일지도 모른다.
뉴진스의 'Ditto'는, 이렇게 무언가를 사랑하는 한 조금씩은 쌀쌀할
이 마음들의 찰나를 대변한다.
음악적으로, 서사적으로 그 양면의 마음 모두를 놓치지 않고 그려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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