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Feel My Rhythm' 리뷰: 진공 속에 눌러 담은 꽃과 물의 정원

2023. 3. 28. 20:39k-pop review &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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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eel MyRhythm 

 

 

파괴적인 부분이 없는데도 내적으로 너무 촘촘하게 짜여서 순간순간 짜릿한 인상을 주는 노래다. 다채로운 소리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그것들이 합쳐져서는 전반적으로 포근한 질감과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느낌이 된다. 

 

클래식 명작인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한 이 곡은, 'G선상의 아리아'를 2가지 방식으로 활용한다. 하나는 인트로에 곡의 원본에 가까운 연주 구간으로 등장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곡 도중에서 다른 악기들과 포개어 조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방법이 인상적인데, 클래식 음악이 '샘플링'이라는 명칭에 충실하게 잠시 존재감을 내보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곡의 다양한 파트에 걸쳐 있으면서 계속해서 반주의 일부로서 기능한다는 점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G선상의 아리아' 원곡의 선율이 가지는 무드가 곡 전체에 우아함을 코팅해내는 영향력이 대단한데, 오케스트레이션의 볼륨을 이렇게까지 부각시켜서 곡을 기품 있게 만드는 편곡은 현재의 트렌드로서는 과거의 명곡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 샘플링을 통해 'Feel My Rhythm'은 최근의 걸그룹 타이틀곡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세션의 풍부함으로 개성을 발휘한다. 

 

'Feel My Rhythm' MV

 

인트로에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이 곡의 테마를 표하듯, 클래식 인용 구간의 앞에서는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로 과거로 돌아가고, 뒤에서는 빨려 들어가듯 하는 신스사운드로 현재로 돌아온다. 그렇게 클래식 연주를 뒤로 하고 시작되는 도입부에서는, 얼얼한 트랩 비트와 베이스로 채워지는 저음부, 정직하게 박자와 음을 짚는 보컬 멜로디와 독특한 반음을 훑고 가는 멜로디 흐름(This is gonna be a crazy night) 등으로 확실한 배경의 이동을 보여준다. 

 

벌스에서는 멜로디는 직선적이고 차분한데, 그 뒤에서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역동적인 베이스, 부피감과 무게감을 불어넣는 브라스 소리, 장난스러운 퍼커션과 벨소리들이 더해지면서, 두근거리도록 시끌벅적한 축제 느낌을 꾸미는 점이 듣는 재미를 준다. 화제의 프리코러스에서는 설레는 멜로디, '꽃가루'와 '폭죽'을 흩날리는 가사와 함께, 봄바람처럼 그윽하게 부는 'G선상의 아리아' 스트링 연주가 분위기를 환기하며 지나간다. 이때 멤버 조이의 황홀한 음색과 보컬 표현이 그 전환을 확연하게 하면서, 이 부분의 음악을 읽어주는 완벽한 화자가 되었다. 

 

킥 드럼으로 심장 박동이 차오르며 등장하는 후렴구는, 이 모든 요소가 총동원되는 축제의 절정과도 같다. 앞서 나왔던 자잘한 비트와 베이스, 브라스 등의 강한 골자에 우아한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이 더해지고, 마지막으로 찬란한 가성의 보컬 하모니까지가, 아주 평화롭지만 치밀하게 배치된다. 이들 조화는 여러 얇은 층들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개체가 모두 두텁고 양감이 있는 소리들의 합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도 굉장히 풍부한 감상을 자아낸다. 여기에 드럼 리듬이 끼얹는 금속성의 소리는, 마냥 고상하기만 한 공기를 차갑게 긁어내며 일부를 상쇄하고 곡을 쿨하게 만든다. 이러한 조화가 상상하게 만드는 공간적 배경은 마치 모네의 그림 같은 초록빛의 정원 같다. 다양한 역할의 악기는 여러 색의 꽃들로 생생하게 피어나고 있고, 유유한 스트링 선율과 보컬 하모니가 수많은 소리들을 관통하며 강렬하게 흐르는 것은 마치 그곳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물길이 흘러 지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 폭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들어 볼 수 있는 낭만적인 그림이 바로 'Feel My Rhythm'의 후렴구다. 

 

'Feel My Rhythm' MV

 

여기에서는 보컬의 존재감과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는 스트링의 존재감이 거의 동등하게 발휘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론 볼륨의 면에서는 보컬이 더 강조되고 있지만, 동시에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스트링의 선율에 자연스럽게 귀가 기울여지면서, 두 개의 멜로디가 동시에 목소리 높이는 것처럼 들린다. 이때 보컬 멜로디는 'G선상의 아리아'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아주 시원하고 극적으로 뻗어나가는 부분 없이, 오케스트라 속 하나의 악기처럼 안정적으로 묻어간다. 상한과 하한이 분명하게 정해진 틀 안에서 정직하게 움직이는 느낌이라, 마치 아름다운 꽃잎의 색깔이지만 압화처럼 눌러 담긴 듯한 절제감이 있다. 

 

이 곡에서는 또한 EDM 사운드를 활용하는 방식이 포인트가 되어 눈에 띈다. 후렴이 끝나고 2절로 넘어가는 곳에서의 균열이 이는 전자음 사운드나, 브릿지 이후 황홀한 전조가 일어나기 직전에 시간을 잠시 멈추듯 반전을 꾀하는 삽입구 등에서, 시간의 차원을 이동하는 그 사이 순간을 표현하는 방법들이 나타난다. 특히 브릿지에서 바흐의 깊은 멜로디와 차분한 랩, 풍부한 보컬이 부딪히며 점입가경되는 그 뒤에서 나오는 순간의 반전(Come on 또다시 시작해 You and I)이 인상 깊다. 아주 단단하고 투명한 물방울 같은 건반 신스사운드 음들이 정신없이 여기저기로 맺히고, 물방울의 파형 같은 납작한 소리의 악기가 퍼지는 위로, 맑은 조이의 목소리가 가볍게 올라탄 이 조그만 공간의 느낌은 아주 오묘하다.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세공된 섬세한 사운드들이 곳곳에서 기다리는 예측불허한 맛도, 이 노래가 주는 명작 같은 매력 중의 중요한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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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 Velvet "       

 

 

유독 작년에 클래식이나 불후의 명곡을 샘플링한 걸그룹 히트곡이 많았어서, 이제 와서 돌아보면 왠지 'Feel My Rhythm'이 샘플링으로 주었던 신선한 감상이 퇴색되는 감이 있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마 이 노래가 시기상으로 가장 먼저였기 때문에, 처음의 인상을 되짚어 보면 독특한 시도라고 느꼈던 점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도 K팝 안에 클래식이 가장 획기적인 방식으로 들어차 있고, 서로 조화가 되어서 아름답게 결을 이루었던 곡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편, 이 시도가 단순히 발상이 새롭고 신기해서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나는 특히 '레드벨벳'이 18-19세기 독일의 음악을 샘플링했다는 점이 시사성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는 레드벨벳의 음악이 유구하게 가져 온 전반적인 특색이, 이 샘플링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레드벨벳의 노래는 어느 아이돌보다도 동화적인 환상성을 멋지게 그려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직관적인 지역성과 시대성을 지니고 있다. 흔히 레드벨벳의 음악이 과거의 R&B 팝, 흑인 음악에 기반했다고 말하는데, 이는 이들 노래를 들었을 때 장르의 특색이 과하게 변용되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사실 이 음악들의 세세한 장르를 명확히 설명할 지식은 없다. 하지만 특히나 레드벨벳의 [The Red], [Russian Roulette], [Perfect Velvet] 앨범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어떤 고전적인 느낌과 미국 및 서구권 지역의 향취 같은 것들이, 다른 일반적인 K팝과 구별된다는 감상은 받을 수 있다. '디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국적인 빈티지함 때문일까... 

 

여기에 비주얼 콘셉트나 비디오에서 고딕하고 오싹하거나 아예 서양 동화적인 분위기를 꾸미는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의 기획으로 느껴진다. 언제나 레드벨벳은 색감이 화려하지만, 그 위에 한 꺼풀 덮인 옛날 영화 같은 질감까지가 하나의 장르 특색처럼 작용한다. 이렇게 이 정통적인 색채를 머금은 음악들은 레드벨벳 멤버들의 맑고 정직한 목소리, 댄스팝으로의 편곡, 예쁘고 아이돌스러운 비주얼 디렉팅 등을 통해 색다른 프로듀싱으로 재탄생하지만, 이국적이나 과거지향적인 느낌을 현재 우리의 것으로 완전히 바꾸지는 않는다. 단순히 팝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K팝을 창조하는 다른 아이돌의 노래들과는 다른 향수적인 텍스처가 있고, 이렇게 시공간의 경계를 휘젓는 이들의 방식은 K팝 신에서 특징이 두드러지는 매력으로 자리 잡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Feel My Rhythm'은, 어떤 부분에서는 시대성과 지역성 짙은 레드벨벳의 색깔을 뿌리 깊게 박아 넣는 역할을 한다. 서양적인 레트로와 빈티지를 넘어 더 깊은 과거로 나아가서 고전의 아름다움까지도 차용하고,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 희곡의 한 장면을 그린 영국 화가 밀레이의 <오필리아>, 프랑스 화가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같은 세기의 명화들을 뮤직비디오 속에 녹여 넣고, 무대에서는 유럽의 전통적인 춤인 발레의 의상을 입는다. 시대와 지역의 특정성이 이보다 직관적일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과거의 명작으로부터 빌려와 그 풍경들을 재현해낸 이 노래는, 이렇듯 고전미를 노래하는 그림 속에 들어가는 것이 숨쉬듯 자연스러운 팀인 '레드벨벳'과 만났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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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 My Rhythm'은 아름답고, 또 레드벨벳답다. 

 

황홀하고 고풍스러운 볼륨감이 일렁거리지만, 황홀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몰입감은 절제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름답고 풍요로운 음악적 연출은 전부 밀어넣어서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꽃과 물이 가득한 이 정원의 노래가 멋지다. 

 

그리고 그것이 레드벨벳의 목소리를 통해서 펼쳐지는 세계라서, 

더욱 더 특별하게 동화적이고 클래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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