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Lovesick Girls' & 'Kill This Love' 리뷰 - 모순의 양면 끝, 그것이 사랑이니까!

2023. 1. 3. 01:17k-pop review & essay

 

'Kill This Love'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메시지에서 낯설었던 극단성은 'Lovesick Girls'에서 반대편의 극단성으로 덮인다.

K팝에서 그 누구도 사랑에 관한 메시지를 이 두 곡에서처럼 강한 어조로 목소리 높이진 않았는데, 이 둘은 심지어 서로 대립된다. 

둘 중 무엇도 지지 않고 같은 볼륨으로 자기 주장을 고수하는 이 조화는, 하나가 하나를 달래서 상쇄하는 효과 또는 하나가 하나를 도와서 시너지를 내는 효과보다는, '모순'적이라는 마냥 긍정적이진 않은 종류의 감상을 이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어떻게 하나... 

 

 

그것이 "사랑"인 것을,,,,,,

 

 

 

 

 

블랙핑크 'Lovesick Girls' & 'Kill This Love' 리뷰 - 모순의 양면 끝, 그것이 사랑이니까!

 

Kill This Love / Lovesick Girls

 

 

 



Kill This Love

두 곡 모두 이미 발매된 지 시간이 꽤 지난 시점에서 둘을 함께 엮어서 듣다 보면, 재미있는 점이 많다. 먼저 'Kill This Love'는 웅장한 음악과 비장한 가사가 힘을 모아서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설명한다. 군악대 같은 악기 연주까지 동원한 이 곡의 메시지는, 선명하다 못해 선동적(?)이리만치 강하다. 먼저 메인이 되는 브라스 악기는 인트로부터 압도감을 주고, 곡 내내 깔려 있으면서 긴장을 유지한다. 그 소리 자체는 그렇게 굵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렇게 강렬한 콘셉트의 아이돌 노래에서 이 악기가 단독으로 쓰이고 있는 그 자체가, 곡의 스케일을 범상치 않게 인식되게 만든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총을 쏘는 연출과 각 맞춘 마칭밴드의 비주얼이 등장하는데, 이 금관악기가 이들과 어우러져 마치 압력이라도 가하려는 듯한(?)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나 어떡해 나약한 날 견딜 수 없어
애써 두 눈을 가린 채 사랑의 숨통을 끊어야겠어

 

제니 (1996) / 블랙핑크

 

강한 브라스에 묵직하게 추를 떨어뜨리는 것 같은 베이스, 목소리도 악기처럼 사용하여 브라스 소리를 흉내내는 듯한 후렴구의 표현과 신경질적인 보컬 등은 모두 분명한 목표 지점으로 돌진한다. 이러한 명확한 연출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가사를 들어보면, 자신에게 독이 된다는 '사랑'의 행위와 자신 간의 단절한줄 한줄 날이 선 말로 선포하고 있다. 사랑의 순간은 '감정의 노예', '얼어 죽을', '뻔하디 뻔한', '헤벌레 해' 같은 말들로, 사랑을 하는 자기 자신은 '매번 속더라도 Yes', '알아서 매달려 벼랑 끝에', '나약한' 같은 말들로 표현된다. 

 

힘 뺀 구절 하나 없이 전부 강한 어조로 곡이 전개되다, '나 어떡해'로 운을 띄우는 프리코러스에서는, 로제의 감정 예민한 보컬이 갑작스럽게 속내를 말하며 '사랑의 숨통을 끊어야겠어'라고 결단을 내린다. 태도가 급격하게 인간적으로 주저앉는 이 파트는, 바로 뒤 후렴에서 박격포를 터뜨리며 선언하는 프레이즈 'LET'S KILL THIS LOVE'에 감정적인 화력을 모으는 도움닫기와도 같은 역할이 된다. 

 

강하게 힘을 주어 말하는 이 메시지는,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보컬 떼창으로 'We must kill this love, Yeah it's sad but true'를 외치는 이 구간에서, 뮤직비디오에서는 군악대 같은 모자를 쓰고 근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댄서들이 북소리와 함께 등장하며 안무를 함께하고 칼각을 맞춘다. 

 

 

블랙핑크 / 지수 (1995)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을 '사랑의 숨통을 끊어야겠다'라고 공격적으로 표현하고, 단순히 자신이 상처를 받아서 "I'll kill -"하겠다는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Let's kill -', 'We must kill -')', '슬프지만 사실이다'라고 정론을 내세우는 이 후렴구는, 강한 것을 넘어서 앞서 표현한 것처럼 '선동적(?)', '전투적'이라는 느낌이다. 물론 여기서의 'we'가 블랙핑크 자신들을 칭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곡의 전체적인 연출에서 여기에 청자를 참여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가사뿐 아니라 사용된 악기나 연주법, 안무, 뮤직비디오 신 등이 이 감상을 주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이는 자칫 가사가 '사랑'이 아닌 다른 사회적인 주제였다면 위험(?)하게 보였을 수도 있는 정도로 강력하다. (?)

 

하지만 또한, 그 주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 전체 그림과 디테일의 엄격함과 예민함이 지금껏 없었던 종류의 것이면서도, 이 모든 게 아주 사사로운 감정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 이 곡이 아주 특이하다고 느껴진 지점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K팝에서 이 정도로까지 극단적이고 저항적으로 사랑에 상처 받고 진절머리 나서 피눈물 흘리는 화자는 없었다. 

 

 

 

 

 



Lovesick Girls

 

 

똑같이 '사랑'이란 소재를 전력으로 이야기하지만 'Lovesick Girls'는 'Kill This Love'에 비해 한층 안정된 감정으로 노래한다. 어쿠스틱 악기와 멜로디 가득한 보컬을 활용한 컨트리한 흥겨움이, 전 곡의 비장함과는 태도부터 다르다. 가사에서 역시 'Kill This Love'에서 love를 kill하자고 했던 선언은, 'We are the lovesick girls'라고 외치는 이 곡의 인트로에서 바로 부정된다. 또 그렇다고 해서 입장이 동전 뒤집듯 번복이 되었다기에는, 이전에 이들이 사랑을 증오하는 이유였던 것들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저 그 속성들이 모순된 채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마 다 잠깐일지도 몰라, 우린 무얼 찾아서 헤매는 걸까
But I don’t care I’ll do it over and over
내 세상 속엔 너만 있으면 돼

 

리사 (1997) / 블랙핑크

 

이 곡의 도입부에서 무거운 킥 소리가 이루는 하우스리듬은 공허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절마다 끝맺는 가사 'Love'를 떼창 코러스로 반복 강조하는 장치는, 주제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나른한 감정을 연출하고, 여기에 베이스 등이 더해지면서 곡이 고조된다. 그러다가 정작 곡 전개를 빠르게 끌고 올라가야 하는 프리코러스에서는 드럼, 베이스 등 저음역대 악기들이 모두 빠지고, 컨트리한 기타 연주만 남아 '우린 무얼 찾아서 헤매는 걸까'란 가사를 동원해 초연한 감정선으로 이끌고 아득했던 공간감을 환기한다. 

 

후렴구는 떼창으로 꽉 채워진 멜로디가 신나지만, 날카로움을 깎아낸 둔탁한 질감의 드럼 리듬과 물방울처럼 동그랗게 퍼지는 듯한 소리의 신스사운드가 흥을 감성적으로 뭉갠다. 이 떼창에는 유독 중심을 잡는 리드 보이스가 들리지 않고 심지가 없는 것처럼 뻥 뚫린 느낌이다. 이렇게 꽉 찼는데도 비워진 듯한 보컬 표현은, 멜로디와 가사가 단전에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를 낸다. 후렴구 내내 떼창이라는 특성은 유지되지만, 이렇게 앞 구간에서는 흥을 뭉쳐 공허한 바깥으로 날려 버린다면, 이를 지나 등장하는 후렴의 후반부에서는 조금 더 개개인의 보컬이 부딪히는 것이 들리면서 고음 멜로디가 강조된다. 이들 멜로디와 반주, 그리고 사랑을 아픔이라 말하면서도 '이 아픔 없인 난 아무 의미가 없어'라고 외치는 가사의 조화에서는, 마치 비가 내리는 장면 속에서 뛰어다니고 춤을 추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브릿지의 로제 가창 파트부터 마지막 후렴구까지, 이 곡은 쉼없이 킬링 파트가 나온다. 특히 마지막 후렴구에서 떼창과 보컬 솔로의 조화가 감성적인 효과를 내는 정점이 나오기 때문에 이 곡은 끝까지 들을 이유가 있다. 'Lovesick girls!'를 외마디로 외치는 떼창에 이어서 '모두 결국 떠나가고 / 내 눈물이 무뎌져도 / 아프고 또 아파도 (-still looking for love)'라고 말하는 로제의 솔로 파트는, 호소적인 보컬에 힘입어서 이 모순적인 인물에 캐릭터를 부여하며 모순을 인간적인 감정인 것으로 설득한다. 

 

 

블랙핑크 / 로제 (1997)

 

'Kill This Love'에서 선명하고 기합 들어간 마칭밴드 북소리였던 리듬 구성은, 이 곡에서 탁하고 부피감 느껴지는 드럼 소리로 바뀌었다. 'Kill This Love'가 후렴구 전까지는 규칙적인 박자를 내리찍으며 후렴의 한 방을 발사하는 데 기를 모았다면, 이 곡은 앞 구간들은 불안하게 움직이다가 후렴에서 4박자에 고르게 묵직함을 담아서 안정적으로 신나는 감정을 찍어준다. 이런 연출 변화는 마치, 'Kill This Love'에서 논하고 'Lovesick Girls'에서도 암시하는 그 '사랑의 아픔'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인식 속에서 흐리게 뭉개버리는 듯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것만 같다. 

 

이 노래가 한편으로 말하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위를 긍정적이고 소중한 것, 필요한 것으로 보는 관점의 노래는 많아서 진부할 지경이다. 하지만 사실 아이돌 노래에서, 그 사랑에 내재되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이 모두 인지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구체적으로 내리는 노래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반복적으로'이 아픔 없인 난 아무 의미가 없어', '이 아픔이 난 행복해', '아프더라도 너만 있으면 돼'라며 아픔을 강조할 정도로는 말이다. 급기야는 곡의 최고 하이라이트에서 갑자기 '나를 불쌍해 하는 네가 내 눈엔 더 불쌍해'(;;;)라는 생전 처음 듣는 극단적인 태도로 목소리 높이는 데서 정말... (실제 인물이라면 다소... 비호감에 가까울 것 같지만) 너무나 확실한 캐릭터를 가져간다. 주제 의식은 진부하지만 그 진부한 것에 집착하고 파고드는 이 모습 때문에, 대중적이지 않았을 수 없는 노래다. 

 

 

 

 

 

 



Kill This Lovesick Girls

지수 (1995)

 

 

이들 화자는 같은 것을 향해 서로 다른 두 가지 시각으로 접근한다. 

사랑이란 존재를 'Kill This Love'에서는 '감정의 노예', '알아서 매달려 벼랑 끝에', '숨통을 끊어야겠어'라고까지 표현했으면서, 

결국 'Lovesick Girls'에서는 돌고 돌아 자신이 다시 감정의 노예가 되고, 벼랑 끝에 매달리고, 그 숨통에 못 이겨서 되찾는다.

 

'Kill This Love' 뮤직비디오에서 울며불며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던 블랙핑크는 'Lovesick Girls' 뮤비에서 또 사랑을 한다.

그것도 말을 번복할 만큼 사랑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사랑의 행복한 모습만 보여줘도 되는 것을,

굳이 'Kill This Love'에서처럼 울고불고 난리나는 그 모습까지도 그대로 재구현을 한다. 

 

 

 

이 극단적인 태도의 두 화자는 누가 봐도 다른 소리를 하고 있지만, 또 누가 보더라도 같은 사람이다.

사랑이란 것에 이 정도까지 집착하고 몰입하는 사람은 이 양극단을 모두 볼 수밖에 없다.

 

이 자가당착은 캐릭터 표현에 있어서 오히려 효과적이다.

심지어는 사실, 'Lovesick Girls' 자체가 'Kill This Love'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기모순을 인지하고 노래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지만,

'Kill This Love'의 존재로 이 캐릭터는 훨씬 더 입체적이고 감정적이 되었다.

 

그 양극단을 모두 감각적으로 표현해낸 블랙핑크의 이 두 곡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또 화자가 애써 외면한 '겁 없는 떨림 (Lovesick Girls)'의 힘이, 거친 언어로 중무장한 자기부정(Kill This Love)까지도 이겨버리는

이 단계적인 디스코그래피와 화자의 캐릭터가,

극적이어서 매력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실이라면 딱히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인간상일 수 있지만(...)

블랙핑크의 힙한 멜로디와 음악을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다는 점에서, 좋은 곡들이었다.

 

 

 

 

돈에 관심 없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니 경계하라고 말했던가?

(feat. 한국지리 이기상)

 

사랑의 숨통을 끊어버리겠다는 이 사람들,,, 사랑에 미쳤다. 

 

(TMI로, 이기상 선생님의 위 어록에 100% 동의하지는 않습니다ㅎ)

 

 

 

 

 

 

 

We were born to be alone. But why we still looking fo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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