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소녀에 관한 소회 (1/2): 소장 욕구와 여돌 덕질의 상관관계 ['비밀이야' 분석 리뷰]

2023. 4. 15. 22:55k-pop review & essay




<감상, 매료, 그 이상의 "간직"!>

 

 

내가 블로그를 쓰는 건 일종의 소장 욕구 때문이다. 

 

나는 시청각적·감성적 재미를 주는 반짝반짝한 콘텐츠들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이루는 사소한 디테일들을 이해하는 걸 좋아하고,

또 그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은 채 한 곳에 쌓이며 무더기째로 볼 수 있게 되는 걸 좋아한다. 

 

다만 그 반짝반짝거리는 시청각적인 자극들에 대한 내 선호는

물건 같은 것보다는 주로 몇 MB짜리 디지털 쪼가리들에 대한 집착으로 발현되어 왔다. 

실물 물품은 마음에 드는 대로 닥치고 수집하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하고 또 언젠가 낡고 닳을 불안이 있는 것과 달리,

내 기기에 혹은 통신망상 어딘가에 저장된 내 데이터, 즉, 이미지, 음성, 텍스트, 영상 같은 것들은, 

웬만한 상황에서라면 거의 영원하고 무한히 소장이 가능하고

손실 없이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크다.

좋아하는 나의 마음만 유효하다면 어떠한 외부 상황에서도 온전히 내 것일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느끼는 그 유효한 반짝거림은,

그 콘텐츠 자체만이 주체로서 온전히 나에게 전달하는 완전 일방향적인 것, 즉 그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걸 보는 특정 시점의 나의 순간적인 감상 발동도 함께 만들어내는 일시적인 환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마음에 들었던 시청각적 콘텐츠라도,

시간이 지나며 신선했던 인상이 휘발되거나 나의 취향과 감성이 변화하면서

처음 느꼈던 100% 상태의 가치가 나에게 계속 남아 있을 수는 없게 되는 거다. 

 

그래서 이 소장의 욕구는 또한 기록의 행위로 발전했고,

단순히 갤러리에 이미지를 모으고, 음악 플레이리스트나 유튜브 재생목록을 만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순간의 내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그에 얽힌 생각을 함께 남겨두는 것이

그 소장의 완성 단계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좋아하는 콘텐츠를 소장하고 싶고,

그 순간의 감상도 콘텐츠의 일부로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내가 블로그를 활용하는 방법에는 이런 생생한 기록이라는 목적으로 신곡의 리뷰를 쓰는 것도 있지만,

또 때로는 이미 발매 시기가 많이 지나간 노래들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가끔씩 이렇게 과거에 좋아했던 노래들로 리뷰를 쓰는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도 이 노래들을 너무 좋아해서는 아니다.

이유는 그냥 내 공간 어딘가에 기억 하나로 남겨 놓기 위해서다.

그리고 특히 그것이 내 소장 욕구를 너무나 자극했던 콘텐츠라면 더더욱 그러고 싶다.

 

 

 

 


<내가 여자아이돌을 좋아하는 이유, 

그것 또한 "소장 욕구"! 💡>

 

 

아까 내 시청각적인 자극에 대한 소장 욕구는 주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작용해 왔다고 했는데,

이건 시간을 거슬러 내가 K팝에 갓 입문한 초등학생이었을 때까지 올라가서야 그 시작이 설명이 된다.

 

연예계에 관심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나에게 처음 아이돌을 알게 했던 한 남자아이돌 그룹이 있었는데, 

그 팀에는 얼굴이 잘생긴 멤버도 있고 노래도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얼굴만 보거나 노래만 들어서는 그들을 찾는 재미가 완전히 충족되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이 사람 잘생겼어', '이 노래 들어봐'보다는 꼭 '이 뮤직비디오/무대 찾아봐'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반드시 노래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면서 시청각을 동시에 즐겁게 하는 과정에서야 이들을 보는 설렘이 진가로 느껴졌던 거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친구의 영업으로 여자아이돌도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 

당시 어릴 때의 나에게 여자아이돌은, 남자아이돌과는 또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최고조로 자극하는 존재로 다가왔고, 마치 보석 상자 같은 느낌으로 그들을 보게 됐다.

얼굴이 예쁘고, 입고 있는 옷도 예쁘고, 통통 튀는 노래에, 대열 맞춰 예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장면을 이루는 모든 요소, 그러니까 좋은 노래, 가사의 내용과 문장 표현, 안무 동작과 동선, 구성원들의 매력과 재능, 그들 간의 조화, 무대 미술, 영상미 같은 것들이 합일을 이루고 있는

여자아이돌의 앨범과 무대라는 보석 꾸러미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여자아이돌 또한 좋아하게 됐는데,

남자아이돌의 경우 딱히 눈 시리게 즐거운 영상미가 없더라도 심장이 반응하면 무조건 좋아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와 다른 재미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주는 순간순간들을 모으는 내 수집 욕구 충족 행위는

언젠가부터 나에게 일종의 '덕질'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사실 난 내가 12살일 때 남자아이돌로 K팝에 입문했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생각해 보니 11살 때도 난 아이돌을 좋아했었다.

 

빅뱅과 샤이니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해서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기 이전에 이미

'그댄 내게 소중한 사람, 늘 기쁨이 되었죠'라고 행복한 노래를 부르고 손으로 브이를 그려 춤추며

보송보송한 핑크색과 하얀색의 털 원피스, 투피스를 포지션에 따라서 조화롭게 나눠 입었던

컬러링 베이비 7공주가 내 눈을 미친 듯이 설레게 했던 순간이 있던 거다. 

 

 

 

-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2016년에, 

오르골 같은 음악에, 가성으로 목소리 흩날리며 마음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를 부르고,

블링블링한 디테일로 무장한 의상을 입고, 무용처럼 유려하지만 힘주어 각 잡은 춤을 추는,

무려 13명의 우주소녀들이 공중에 마법진을 그리며 지구로 상륙했었다.

 

 

이걸 내가 좋아하게 되지 않는 게 더 이상했을 거다.

 

 


 

 

 


소장 욕구와 여돌 덕질의 상관관계

: 우주소녀에 관한 소회, '비밀이야' 분석 리뷰

 

내가 우주소녀 노래를 들었던 이유는 소장 욕구와도 연관돼 있다. 시각적인 부분도 한몫하지만 일단 노래만 듣더라도 그렇다. 먼저 노래를 이루는 소리들이 예쁜데, 번쩍거리는 신스사운드나 휘황한 스트링, 자잘한 이펙트 같은 것들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곡조가 서정적으로 마이너하고, 멜로디가 흘리는 것 없이 꽉꽉 차 있고, 가사의 말들은 문학적이다. 그 말로도 담지 못한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얽혀 있는 것처럼 모호하게 아련한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틀어 놓고 즐기기보다는 집중해서 뜯어 보고 싶고, 간직해 저장해 놨다가 꺼내서 들여다보고 싶다. 이지리스닝에는 부적합하고 호불호 갈릴 스타일이라고 평가될 수 있지만, 한번 취향이라고 느끼기만 한다면 플레이리스트나 앨범째로 따로 모아서 들으며 이들만의 시리즈에 빠져 있는 시간으로 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계열 노래의 이런 감상 방식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한창 즐겁게 들을 때는 몰입하는게 너무 재미가 있었다가, 좀 지나면 피로하고 빨리 질린다. 노래가 무겁고 촘촘해서다. 

 

나는 대중적으로 잘 되는 것들은 감각적으로는 날카롭지만 감성적으로는 가벼운 것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주소녀나 이때 잔잔하게 유행했던 중소기획사 걸그룹들의 몽환 콘셉트 기반 노래들은 정확히 그 반대로, 감각적으로는 은은한데 감성이 묵직하다. 아무리 이 계열에서 숨은 명곡이라 꼽히는 노래들이 기대만큼 흥행하지 못해 아쉬운 소리를 듣는다 해도, 이렇게 애초에 그렇게까지 잘 되기가 힘든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럼 이 노래들은 누가 듣는 것일까? 

 

 

 

보나 (1995, 리드댄서, 서브보컬) *포지션 표기는 팀 개편에 따른 각 멤버별 최신 상태에 따름

 

캐치한 쾌감과 산뜻한 자연스러움을 포기하고 채워낸 이들의 무기는 벅차는 몰입감과 애틋한 화려함이다. 이런 노래가 수요가 발생하는 경우는 대체로 DNA에 이 아련함의 불빛을 쫓는 오타쿠라는 정체성이 쓰여 있거나 아니면 아이돌의 얼굴을 보고 일시적으로 설득당해 자연발생한 경우다. 그리고 사실 유의미한 아이돌 팬들은 대체로 후자다. 

 

그렇다...... 우주소녀의 데뷔 때부터 약 3~4년 정도 그들의 팬이라는 소속 집단에 포함돼 있었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 팬들은 대체로 그들의 얼굴과 매력을 좋아하는 것이지, 그들이 세일러문 같은 노래를 한다는 이유로 좋아한 것이 아니다. 또 우주소녀와 유사한 콘셉트의 아이돌 중에는 콘텐츠로부터 세계관 스토리의 힌트를 찾아내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는 팀이 있는가 하면, 우주소녀의 팬들은 유달리 팀 콘셉트가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영상물에 떡밥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런 것들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이들은 그냥 그 멤버로 어떤 컨셉과 노래를 해도 웬만해선 좋아하게 됐을 거다. 우주소녀 노래의 환상적인 서정성에 매료돼서 이 팀의 팬이 되었던 나조차도, 이런 곡 기조와 전혀 상관이 없는 데뷔곡 'MoMoMo (모모모)' 때 이미 어느 한 멤버에게 꽂혀 있어버렸던 바람에, 이런 곡들이 어느 정도로 오타쿠 영업에 실효성이 있는지 명확한 간증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노래의 수요 시장은 베이스가 보장돼 있지 않고 대중의 각광도 받을 수 없는, 오직 특정 수요층이 반응하는 수맥을 찾아서야만 개척할 수 있는 비포장도로다. 그걸 해내게 하는 수단으로는 아티스트의 매력이나 특정한 분위기를 가진 음악·시각적 특징 정도가 있을 거다. 

 

 

 

성소 (1998, 메인댄서, 서브보컬), 은서 (1998, 리드댄서, 서브보컬)

 

우주소녀는 그걸 팀 색깔로 정했다. 그리고 두번째 활동곡인 '비밀이야 (Secret)'를 기점으로, 그 모호한 이름의 수요를 증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예쁘고 갖고 싶은 요소들로 채워냈다. 팬덤 강세형 걸그룹을 만들겠다는 투철한 의지가 구석구석에서 돋보이는 이들 기획은 씹덕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이 당시에 나는 성적충이 아니었어서 이때의 음반 판매량을 봐도 이 성장이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했는지 해석하기 어렵긴 한데(2016년이라 시대상 반영 필요...), 모모모에서 비밀이야로 넘어갈 때 팬덤이 커지고 활성화되던 그 느낌은 확연히 체감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나는 이때를 기점으로 우주소녀의 주요한 노래들을 작업한 작곡진들이 다른 팀들에 유사한 스타일의 곡들을 내주기 시작했다는 데서 그 근거를 찾는다. 2017년경부터 몇 년 간 몽환 계열의 화사한 마이너 댄스곡이 중소기획사 걸그룹들에게서 짧게 유행했었다. 트렌드의 콩고물로 팀을 굴리는 소규모 기획사 아이돌들을 보면 당시에 어떤 걸 하면 기본은 먹혔는지 대략적으로 볼 수가 있는데, 때맞춰 불었던 이때의 몽환의 바람은 우연 같진 않다. 웆의식과잉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난 우주소녀가 '비밀이야'를 시작으로 그 파이를 꺼내 보여주면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밀이야' 발매 시점의 근과거에도 오마이걸이나 러블리즈 같은 팀들이 부른 몽환적인 콘셉트의 곡들이 있었지만, 후술할 우주소녀의 노래들이 가져가는 핀트는 이들과의 차이가 있다. 물론 그들 간에도 아주 다르다. 오마이걸은 일찍이부터 해외 작곡진과 함께하며 중소 기획사 걸그룹 중에서는 유럽풍의 이국적인 음악 스타일을 차용하기로 가장 앞서 간 깔끔한 색깔의 팀이고, 러블리즈는 한국 프로듀서 중에서도 가장 클래식하고 서정적인 특색이 있는 윤상을 필두로 한 멜로디가 동북아시아 감성을 저격하는 정서의 깊이를 자랑한다. 감성적인 방향성은 이들이 우주소녀와 조금씩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구체적인 배경 설정과 스토리텔링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그 포인트에서 우주소녀는 나름의 독특함이 있었다. 



 


비밀이야 (Secret)


Video >>

(우) 엑시 (1995, 리더, 래퍼), 설아 (1994, 리드보컬)

 

데뷔 6개월 만의 컴백 뮤직비디오에서, 시작과 동시에 대뜸 묻는 좌측 이미지의 물음("네 안에 코스모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Have you ever felt cosmo inside of you)?")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세인트 세이야 (セイントセイヤ)> 속 대사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대사뿐 아니라 영상 내내 보이는 배경의 우주적인 그래픽 이미지나 멤버들이 착용하는 독특한 소품, 새로운 멤버 영입을 초월적인 서사로 녹이는 스토리의 내용까지, 일관되게 연출한 SF 판타지·오컬트 요소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자리한 것이 눈에 띈다. 

 

데뷔곡인 'MoMoMo (모모모)'와 그 앨범이 삐용삐용거리는 8비트 느낌의 사운드를 기반으로 귀엽고 발랄한 팀 이미지를 만들며 우주라는 테마를 접목했다면, '비밀이야 (Secret)'에서는 멜로우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포근한 음악에, 위와 같이 낯설고도 향수적인 신비로움을 끼얹어서 영화적인 시청각적 압도감을 형성했다. 뮤직비디오의 경우는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그린 과거의 연출법을 차용해서 '레트로한 퓨처리스틱'을 구현한 게 포인트다. 우주소녀의 많은 뮤직비디오가 판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 곡에서 비주얼적으로 가장 구체적이고도 스케일 있는 콘셉트의 명확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보나 (1995, 리드댄서, 서브보컬) / 연정 (1999, 메인보컬)

 

한편 이 뮤직비디오 플롯은 노래 '비밀이야'의 가사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이 앨범을 기점으로 새로운 멤버 연정이 합류해 함께하게 되는 흐름을 스토리로 담아냄으로써 팀의 서사를 자연스럽게 발전시켰다. 그 연결 지점에는 초월적인 힘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올린 뮤직비디오 인트로 장면에서 말하고 있는 '코스모'란 것, 즉 만화 <세인트 세이야> 속 이 소재는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힘이자 작은 우주로, 이를 발현시킴에 따라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코스모를 품고 있는 이가 무언가를 지키고자 마음 먹을 때 더욱 강하게 증폭될 수 있다는 설명이 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떠한 우주적인 기운을 느끼고,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집중한다. 무엇에 이끌려서 이들이 신비로운 분위기 가운데 행위와 의식을 하고 있는지 감상자는 알 수 없지만, 결말부에서 연정을 만나게 되면서 이들이 보여준 애틋한 비밀스러움의 이유 있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이 자연스러운 스며듦의 과정, 그러니까 팀 콘셉트를 빌딩하는 예쁜 이미지들과 그 속에서의 불가역적인 인물 서사, 오묘한 음악과 아련한 멜로디를 한꺼번에 담아낸 콘텐츠의 덩어리는, 우주소녀가 새롭게 펼치기 시작할 이들만의 우주를 감각적으로 보여주며, 이들의 새로운 팀 구성과 콘셉트를 빠르게 설득시켰다. 

 

 

 

Music>>

 

이 비디오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건드리는 눅눅한 핑크빛의 공기는, '비밀이야' 음악을 통해서 더욱 몽환적으로 채워진다. 이 곡의 신비하지만 마냥 정적이지 않은 특성은, 기존에 걸그룹 노래 콘셉트를 수식하던 말들로 응축하며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우주소녀의 새로운 음악 색깔을 소개하며, 곡의 인트로에서부터 그 전체 분위기를 전달받을 수 있다. 곡 재생과 동시에 태엽과 오르골의 몽롱한 소리들이 인도하여 들어가는 '비밀이야'의 인트로는, 비밀이라는 키워드를 상기시키는 포인트 효과 '쉿!'을 외치며 활짝 열린다. 본격적인 곡 인트로는 그때서야 시작이 되는데, 배음을 밧줄처럼 꼬아 조인 듯 왜곡됐으면서도 쨍하고 직선적인 신스 사운드의 메인 라인과, 물기 잔뜩 먹인 듯한 먹먹한 질감의 스트링 앙상블의 서브 라인이, 드럼 리듬 위에서 서로 상반된 느낌으로 신나게 주고받는다. 

 

여기까지의 인트로 구간은 무대로 볼 때도 다채로운 매력을 자랑한다. 효과음이 주가 되는 심플한 첫 구간에서는, 오르골 소리와 함께하는 성소의 무용과 보나-여름의 인형 춤, '쉿!'에서 클로즈업되는 설아의 윙크 단독 샷 등으로 멤버들 개개인이 조명된다. 리듬 구간에 들어서면 멤버들은 당시 13명이라는 초다인원을 펼쳐내는 계단식 전개의 안무 대형을 선보이면서 스케일을 선보였다가, 또 5명의 유려한 댄스 구간을 보여주는 등, 인원 수를 활용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채워내면서 반복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조심조심 내딛는 듯한 도입부 멜로디와 이를 베일처럼 감싼 얇은 코러스들은, 그야말로 비밀스러운 느낌이다. 이 때문에 고음부가 자욱한 이 노래에서, 중저음부에서는 톡톡 튀는 맛을 주는 베이스 슬랩, 잘개 쪼갠 기타의 리드미컬함과 스트링 연주의 긴장감 있는 주법 등 다양한 악기들이 오밀조밀하고 세련되게 꾸며주고 있다. 벌스에서는 반주 자체의 존재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보컬에 집중하면서 얇은 소리들이 겹겹이 쌓인 듯한 풍성함이 환상적인 곡 분위기를 조성한다. 

 

 

 

(좌) 여름 (1999, 리드댄서, 서브보컬)

 

이렇게 후렴 전까지는 자연스럽게 전개되다가, 후렴에서 본격적인 메인 멜로디가 등장한다. 극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창법으로 튕겨내는 포인트가 있는 멜로디와 보컬이 이 구간의 포인트다. 특히 후렴구 전반부에서 멤버 연정-다원(2절에서는 다영-다원)이 잇는 음색의 합이 안정적이다. '비밀이야' 곡 기조와 아주 어울리게 맑은 음색과 강한 힘을 모두 가지고 있는 연정이 앞서 이미 등장해서 곡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던 것과 다르게, 좀 더 스모키한 음색의 다원은 이 지점에서 곡에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이 때문에 이 구간의 감정선이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포스트코러스에서는 연정-수빈이 조합되는데, 이들은 위 다원과의 페어와는 또다른 여리고 청아한 특성이 강조되는 합이 되어 우주소녀의 다채로운 보컬 소화 범위를 보여준다. 

 

그 포스트코러스는 앞 구간에서 다원이 진성으로 끌어올린 하이라이트에서 바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전반부에서 사용된 코드 진행이 절반 길이로, 즉 2배 빠르게 진행되면서 곡의 고점으로 더 조급하게 달려나가는 느낌이 든다. 또한 가장 포인트인 가성 멜로디와, 후렴에서 추가된 동그랗고 금속적인 신스 악기 소리가 드라마틱하게 조화된다. 긴장감 속에서 부유하는 이 곡소리(?) 같은 멜로디는 고음 강세 멤버이자 사랑스러운 음색이 특징인 연정과 수빈의 목소리와 만나며 소녀 느낌으로 소화되는데, 이 매끈한 멜로디와 두텁게 쌓인 반투명한 코러스 소리들이 뒤엉켜서 혼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은근히 뽕끼가 있는 선율이라 착착 감기지만 또 동시에 환상적인 컨셉추얼함도 가능하게 하는 재밌는 연출의 구간이다. 메인보컬들의 활약으로 분위기가 끌어올려진 가운데서 퍼포먼스 멤버 성소와 여름이 릴레이로 짧은 킬링 포인트 파트를 던지고 떠나며 알찬 1절이 마무리된다. 

 

 

 

(우) 엑시 (1995, 리더, 래퍼)

 

그 뒤로도, 이 곡의 악기 소리들과 비슷하게 공기 함량이 높은(?) 톤을 내는 래퍼 엑시의 까랑까랑한 랩, 브릿지에서 자랑하는 설아의 음색과 연정의 초고음 등, 멤버들의 보컬 역량을 갈아 넣는 다양한 방식이 선보여지며 노래가 흥미롭게 구성된다. 애니메이션 노래 같은 감성적인 코드 진행과 악기 구성에서부터 넘실대는 서브컬처의 맛, 애가 타는 K-뽕끼 멜로디, 그 역동적인 조화를 뒤덮어 포장하는 로맨틱한 색깔 등, 여러 가지로 사람 환장시키기는 정말 좋은 노래다. 하지만 수많은 대중가요들 사이에서 신인으로서 확실히 주목 받을 만한 한방이 없어서 곡이 잘 만들어진 만큼의 관심은 끌지 못했던 점은 약간 아쉽다. 

 

또한 주가 되는 멜로디가 소화하기 고난도인 만큼, 음원에서는 메인·리드보컬 멤버들(5명)과 래퍼(1명)를 제외한 서브보컬 멤버들(7명)은 별다른 매력을 보여줄 틈이 별로 없이 모두 짤막하고 비슷비슷한 라인의 가창 파트만 소화하게 된다는 점도 살짝 아쉬웠다. 아주 예쁘고 정갈하게 만들어진 밀도 있는 노래이지만, 여기에 무려 13명의 목소리가 꽉꽉 들어차 있다는 걸 누가 알 수 있을까? 물론 13명이 전부 존재감을 드러낼 만한 서커스 쇼 같은 3분짜리 명곡도 아마 세상엔 없겠지만 말이다. 팀 인원 구성으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문제는 유감이다. 

 

 

 

Outfits >>

(우) 보나 (1995, 리드댄서, 서브보컬)

 

하지만 또 이런 서브컬처스러운 노래를 아이돌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보컬 자랑도 하고 얼굴 자랑도 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개념화가 되어 있지 않은 이런 노래의 감성은 시각적인 표현의 자유도가 높다. 직관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모호하지만 그런 만큼 안무, 의상, 스타일링 등으로 채워넣을 수 있는 재미 요소를 다채롭게 고려할 수 있다. '비밀이야'는 이런 예쁜 비주얼을 만들기에 최적화된 장르라는 특성이 십분 활용되어서, 보는 재미가 있는 노래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래서 이 노래의 무대까지 감상한다면, 이 곡이 보컬 특화가 아닌 멤버들에게도 아주 어울리는 종류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설아 / 보나 / 루다 / 성소

 

물론 이때 멤버들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변화 등으로 급격하게 눈에 띄는 개개인이 생기기도 했지만 (성소는 모모모 스타일링이 더 어울리는데 그냥 예뻐서 끼워넣음)

 

 

특히나 이 곡의 무대 활동은 의상 때문에 걸그룹 팬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비밀이야' 하면 위 이미지들과 같은 로맨틱한 발레 드레스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임팩트가 돋보이진 않지만 무용 퍼포먼스나 겹겹이 흩날리는 포근한 곡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기본적인 의상이다. 자세히 보면 멤버별로 디테일 차이가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같은 컬러와 재질의 일체성에 중점을 두어서, 전체 그림을 보면 하늘하늘한 발레리나 무대 같은 느낌이다. 이때 멤버 성소가 리듬체조로 화제가 되었던 타이밍과 맞물려서 시상식 등에서 이러한 종류의 의상을 착용하고 무용을 접목한 단체 퍼포먼스를 꾸미기도 했었다. 

 

설아 / 보나 / 선의 / 루다

 

활동 중에는 이런 의상에 구두를 신기도 하고 운동화를 매치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드레스 의상에는 하얀 스니커즈에 리본 끈으로 꾸몄던 조합이 예뻤다. 

 

 

 

하지만 한때 우주소녀가 '비밀이야' 활동 시기를 기점으로 코디 스타일이 예쁜 걸그룹으로 소소한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은 위 발레 드레스 때문은 아니다. 그 시작이 되었던 도화선은 2016년 9월 4일 SBS 인기가요 무대를 통해 선보인 좌측 이미지 속 의상이다. 네이비와 흰색으로 배색한 이 단체 의상은, 13명 멤버들 각각의 이미지와 체형의 특성을 반영해 제작한 세심하고 기획적인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고 팬들의 반응을 폭발시켰다. 

 

기본적으로는 드레시하지 않고 선이 깔끔한 셰입과 디테일, 대비감 있는 배색을 활용한 일관된 디자인 기법이 단체로서의 통일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안에 멤버별 의상 구성과 디자인의 차이를 두어서 페미닌하거나, 카리스마 있거나, 귀여운 등의 다채로운 13명의 멤버들의 개별적인 매력을 녹여내어, 한 무대 안에서 개인의 개성과 팀으로서의 그림이 모두 생생히 살아있도록 했다. 물론 한명 한명의 옷이 예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사실 1벌만 있을 때는 큰 존재 의미를 갖지는 않고, 13명 단체로서의 조합으로 모여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서로 간의 구별됨과 유사성이 엎치락 뒤치락 하며 시너지가 발생한다. 때문에,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맛이 최대한으로 강조된다는 점에서 센스가 좋은 의상이었다. 

 

벌써 활동한 지 7년이 흘렀고 이미 여러 패션 유행과 걸그룹 의상 공식이 몇 바퀴나 지나간 지금의 시점에서 이 의상을 다시 보았을 때, 사실 엄청나게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지 모르겠다(지금은 다 명품 입히니까,,,). 하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13명으로 이루어진 이 와글와글한, 지난 앨범에서 단체 형광 맨투맨만 고수했던 이 그룹이 갑자기 존재감 빛내며 입고 나타난 이 의상은, 맞춤 제작 의상으로서는 걸그룹 팬들이 떠올릴 수 있는 거의 이상적인 수준의 미적 안정감을 준 임팩트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비슷한 의상의 베이지, 버건디, 체크 패턴 등의 다양한 컬러 변형으로도 변화를 주며 다양한 스타일링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제작 의상의 맛을 제대로 선보여주는 스타일리스트 팀의 활약이 돋보이는 포인트였다. 

 

 

 

또한 좌측의 추석 기념 한복, 가운데의 007 컨셉 등의 이벤트성 의상이나 우측의 비교적 캐주얼한 스타일링 등, '비밀이야'라는 노래는 활동이 진전될수록 다양한 옷을 입으면서 곡이 전달할 수 있는 감성과 멤버들이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의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다음 편의 글에서도 이어서 이야기할 우주소녀 룩덕질의 역사의 시작은 이 '비밀이야'를 통해서 신호탄이 날려졌었다. 가장 먼저 소개되었던 드레스 의상을 통해서는 음악이 특징적으로 가지는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다른 의상들을 통해서는 '비밀이야'라는 아련하고 모호한 매력의 노래에 예상치 못한 요소로 새로운 색칠을 해서 무대를 감상하는 재미를 주도적으로 배가시킨 정윤경 스타일리스트 필두의 스타일리스트 팀의 공헌도를, 이 앨범 활동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다. 하지만 또한, 이런 스타일링의 자유도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는 이 노래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임도 빠뜨리지 않아야 한다. 이 곡을 시작으로 우주소녀라는 팀의 개성이 형성되고, 이후에도 이 같은 색깔을 유지해 나갔기 때문에, 우주소녀가 의상으로 또한 주목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Performance >>

 

마지막으로 이 곡의 안무가 완성하는 리드미컬함과 디테일의 시각적 충만이 비로소 '비밀이야'라는 콘텐츠의 방점을 찍는다. 먼저, 이 안무는 13명이라는 인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화려한 동선과 대형이 포인트가 된다. 멤버들은 모두 물 흐르듯 하는 동선을 따라 독창적이고 예쁜 대형을 만들며 모였다 흩어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개개인의 퍼포먼스보다는 철저히 대형이 우선이 되는 안무이기 때문에, 어떤 멤버는 3분 40초 중 1분 동안 연속으로 춤을 추지 않고 앉았다, 섰다, 빠졌다 들어오기만 하기도 한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전체 샷을 보았을 때는 이 초다인원의 안무를 깔끔하게 구성해낸 그림이 아주 완성도가 높아서 느껴지는 쾌감이 압도적이다. 

 

구간이 넘어갈 때마다 변화하는 안무 구성이 모두 멋지지만, 그 중 몇 가지 포인트를 꼽아 본다면, 보나 가창 파트(51초)에서 멤버들이 배경이 돼서 런웨이를 만드는 부분부터 선의 파트를 지나 성소 파트(1분)로 오기까지 이어지는 동선의 흐름, 후렴구에서 7명만 안무를 하다가 13명의 안무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합체 파트(1분 22초), 반으로 갈라져서 한 쪽은 세로로, 다른 한 쪽은 가로로 한 줄을 이루는 멤버들 무리(2분 11초), 원형이 없었는데 갑자기 원형으로 흐르는 동선(2분 44초), 메인보컬을 중심으로 양 메인댄서가 무대를 가르는 두 줄을 이룬 V자 대형(3분 12초), 시간차를 두고 마무리 동작을 하는 포메이션(3분 38초) 등이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소인원의 팀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재미의 무대를 자주 보기는 힘든데, 개인적으로 소인원을 좋아하는 맛과 다인원을 좋아하는 맛이 아주 다르고 둘 모두를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트렌드 변화에 따라 한 세대에선 한쪽은 다양하게 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안무 동작 역시 마찬가지로 재미있고 곡의 매력을 잘 반영했다. 위 같은 잘 짜인 대형을 기반으로 몽환적인 매력을 아기자기하게 채우는 이 곡의 동작들은, 움직임의 범위는 크면서도 손과 팔 동작이 아주 예쁘게 섬세하고, 또 동시에 13명이 착착 맞춰낸 군무도 깔끔하다. 

 

앞서 언급한 인트로의 무용이나 인형 춤처럼, '비밀이야' 노래의 특성을 살리는 동작들도 그 예시다. 손가락을 나풀거리며 접었다 폈다 하는 포인트가 여기저기에 활용되는 반복 동작은 우아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이고, 빙그르르 도는 동작이나, 단순히 앉았다 섰다 할 때도 곡선적으로 움직임에 신경쓰는 사소한 디테일은 곡에 어울리는 유려한 분위기를 표현한다. 또한 후렴구 끝의 여름 가창 파트에서 여름이 그리는 손동작인 '비밀'이라는 뜻의 수화, 잠긴 것을 돌려 풀어내는 듯한 손목 동작으로 '비밀'의 의미를 담아낸 설아 가창 파트('걸려 들었어', '이러다 정말')의 포인트 안무 등 역시도 비밀스럽고 사랑스러운 곡의 매력을 더욱 세밀하게 한다. 끝으로, 곡의 가장 마지막 단인 '티가 나잖아, 뻔히 다 보이잖아' 부분에서까지도 손가락으로 팔 위를 짚는 아기자기한 동작이 새롭게 등장하며, 이 곡의 모든 하이라이트가 놓쳐지는 곳 없이 예쁜 안무로 주목된다. 

 

한편 이 노래의 안무는 부드럽기만 한 동작으로 채워진 건 아니다. 이 안무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힘을 주어 그려내는 반동이 강조하는 리드미컬함이다. 예를 들면 후렴구에서 '비밀이/야/아아/아 / 아직 아/니야/(아/니야)'에 맞추어 움직이는 멤버들의 몸 동작에는 웨이브가 있고 작은 손가락 안무도 포함이 돼 있지만, 리듬이 끊어질 때마다 힘을 주었다가 탁 푸는 강약조절과 직선적인 팔 동작 때문에 하늘하늘하지만은 않은 박자감이 느껴진다. 바로 이어지는 '숨겨둔 내 맘이야'에서도 동작은 다르지만 마찬가지의 강조점을 주고 있다. 안무의 이러한 포인트들 때문에 마냥 여리지만은 않은 신나는 긴장감이 살아나는데, 특히 보나, 미기 등 힘이 좋은 멤버들이 소화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볼 때 이 매력이 더욱 와닿는다. 그리고 이 보나-미기 댄서 페어는 마지막 후렴구를 절도 있는 팔 동작으로 열어내는 역할을 할 때 가장 인상적인데, 이 노래가 주는 양면적인 쾌감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안무 구간을 잘 소화했다. 

 

 

 


비밀이야 (Secret)


 

이렇게 우주소녀의 '비밀이야 (Secret)'는, 눈과 귀를 최고치로 즐겁게 하는, 그리고 또 이것저것 뜯어 보는 재미가 있어서 오랫동안 가지고 보관해 놓고 싶은, 내가 여자아이돌을 좋아하는 이유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들이었다. 빽빽하지만 몽글몽글한 음악과 감성적이고도 중독적인 멜로디, 레트로한 SF 애니메이션 같은 몽환적인 그래픽 영상물, 단체와 개개인이 동시에 빛나는 무대 의상과 예쁜 비주얼, 화려한 퍼포먼스 대형과 섬세한 춤 동작 등의 이 곡의 모든 구성품들은 은은한 분홍빛의 필터 아래서 응집돼 있다. 그전에도 내가 여자아이돌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런 이유에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면 그전까지 이런 분위기를 가진 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노래와 활동이 주었던 느낌은 단순히 멤버가 예쁘거나, 컨셉이 훌륭하다거나, 노래가 좋고 안무가 멋지다는 등등의 이유 그 이상의 것이었다. 이 모든 요소가 일관적인 색깔로 반짝이는 우주소녀로 인해 후천적으로 급조된 내 '소장 욕구'라는 덕질 욕구는, 다른 팀을 좋아했던 그 어떤 원인에도 비할 데 없이 독자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우주소녀가 주는 감상은 나에게 유일하다. 

 

이렇듯 '비밀이야'는 처음 들었을 때 나에게 '몽환적'이라는 말의 개념이 새롭게 정립될 만큼 충격적이리만치 좋아했던 노래고, 이 곡을 둘러싼 이 모든 총체적인 기획 요소들이 존재감을 발휘하며 사실상 우주소녀라는 팀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트라우마가 하나 있는데, 내가 어떤 팀을 너무 좋아하게 되기만 하면 해당 팀이 대체로 그 다음 컴백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을 내어 오는 코인 실패의 아픔을 상당히 자주 겪어 온 거다. 그런데 그 예외에 있던 거의 유일한 아이돌이 우주소녀고 또 그걸 깨는 곡이 '비밀이야'였어서, 내 K팝 일생에 있어서 인상적인 지점이 되는 노래기도 하다. 이 곡의 내재적인 모든 특성과 외재적인 나의 추억이 아주 특별하고, 더 나아가서는 한때 너무 즐거운 꿈과 내 취향의 한 갈래를 만들어줬던 곡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다만 이 노래가 수록된 전체 앨범을 들었을 때 실망스러웠던 기억도 선명하다(ㅋㅋ). 나는 앨범을 들을 때 수록곡들이 타이틀곡의 어떠한 특징이라도 연장선상으로 이어나가며, 특정 테마 하에서의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구조적으로 채워진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 미니앨범 [THE SECRET]의 곡들은, '비밀이야'가 지닌 수많은 좋은 특성들 중 오로지 미세하고 조심스러운 소녀틱 감정만을 잡아내서 단순히 애교스럽고 카와이~한 쪽으로만 앨범 기조를 풀어낸 점이 아쉽다. 물론 개별곡으로만 듣는다면 귀엽게 들어줄 수 있는 곡들일 수는 있지만(하지만 여전히 'ROBOT', '이층침대'는 어떠한 부분으로도 안 좋아함) 타이틀곡에서 몽글몽글 부풀어 올라 있던 감성이 순식간에 꺼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아쉬움까지 채워주는 아이돌이 없을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또 그것마저 우주소녀가 해내게 된다. 

 

 

─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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