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이민수×김이나×황수아의 메르헨 유니버스 (2) 가인

2021. 8. 7. 22:50k-pop review & essay

 

<1편> 아이유: 엇갈리는 마음, 기로에 선 소녀

<2편> 가인: 상처는 영원히 내 안에 새기는 것, 사랑은 달콤하지만 유한한 것

<3편> 써니힐: 세상의 굴레 안팎에서, 세상의 법칙 향한 조소

 

 

 

 

[ 가인 Gain ]

상처는 영원히 내 안에 새기는 것, 사랑은 달콤하지만 유한한 것

 

'돌이킬 수 없는' MV

 

 

지극히 감정적이고, 감각적이며, 자아에 집중하면서도 타인과도 떨어질 수 없는 한 인간이다. 가인은 이미지가 독특하고 기억에 강하게 남는 컨셉추얼한 대표곡이 많은 것에 비하면 그 내용에서 판타지 요소가 많은 아티스트는 아니다. 오히려 화자는 삶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 내면 깊숙한 곳의 감정을 노래한다. 사실 이러한 가인의 디스코그래피는 아티스트 자체의 발자취를 쫓으며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과 태도를 반영했다. 감정의 파도를 막지 않고 휩쓸리는 20대 초반 여자,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20대 중반 여자, 복잡하게 엉킨 관계 가운데서 보다 당당해진 20대 후반 여자 등으로 말이다. 가인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음악이 이와 같이 자신의 히스토리를 따라왔으며, 앞으로도 그때의 자기 자신에 맞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가인은, 연출되고 만들어진 이미지인 한편으로는 프로듀서진이 포착한 그녀의 솔직하고 사실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가인은 이렇듯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녀의 음악과 무대에서는 공감대보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순적이게도 그 소재들은 대중성 획득을 목적으로 쉽게 다루기에는 다소 무거운 것들이다. 때문에 이를 아름답게 해석해 보여주는 시도가 더욱 낯설고 환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소재의 특이성이 프로듀서진에 의해 선택되고 가공되며 가인을 특별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삶의 일부이기보다는, 단 한 명만이 주인공으로 빛나는 하나의 퍼포먼스이고 영화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가인의 디스코그래피가 그리는 감정선은 극단적이다. 화자의 이야기는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그러나 그녀의 캐릭터에서 상처란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의 예술 표현으로 승화할 수 있는 부정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엇나가도 놓을 수 없는 사랑을 처절함과 집착으로 드러낸 '돌이킬 수 없는 (2010)', 마음의 서로 다른 형태가 주는 상처를 아슬하게 표현한 'Fxxk U (2014)', 타인들의 어긋난 시선 속에서도 당당한 자아를 발랄하고 위트 있게 노래한 'Bad Temper (2010)', '진실 혹은 대담 (2014)' 등이 그 결과. 또한 사랑의 감각적 달콤함에 매료되는 '피어나 (2012)', 운명의 만남 끝에 맞이한 비극을 아름답고 초연하게 끝맺는 'Carnival (The Last Day) (2016)' 등은 가인이라는 캐릭터의 다면적인 감정에 더욱 서사적으로 몰입하도록 돕는다. 하얀 피부에 스모키 메이크업, 도발적인 이미지 등으로 대표되는 가인만의 섹시 코드에는 이렇게 터부, 죽음, 진심의 이면과 같은 깊이가 숨어 있다. 

 

 

 

 

 

조영철×이민수×김이나×황수아의 메르헨 유니버스 (2) 가인

 

 

 


[ Best Discography ]

돌이킬 수 없는 [Step 2/4] (2010)

 

“ Kill me, or love me 둘 중에 하나

─ 윤상&이민수 작곡 타이틀곡 '돌이킬 수 없는'은 탱고를 접목한 독특한 퓨전 댄스 장르를 선보이며 정열적인 사랑의 색을 구현했다. 타이틀뿐 아니라 앨범 전체에 탱고 스타일의 곡만 채워 넣은 컨셉추얼한 앨범으로, 탱고의 기본 리듬인 4분의 2박자를 나타내는 앨범명 [Step 2/4]과 'Tango'가 직접 들어간 수록곡 제목에서도 그 작정한 의도가 보인다. 수록곡 구성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앨범의 말미를 장식하는 곡인 '진실'의 인스트루멘탈 반주가 타이틀 '돌이킬 수 없는'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두 곡은 같은 음악을 통해, 각각 격정적이고 처연한 서로 다른 높낮이의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앨범의 수미상관을 드라마틱하게 완성한다. 

 

─ 앨범의 장르만 통일된 것이 아니라, 곡들의 가사를 보더라도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사랑에 빠지고, 옭아매이고, 결국 놓쳐 버리지만 이를 부정하다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는 모든 과정은 6곡에 세세히 나뉘어 녹아 있다. 김이나 작사가의 언급에 따르면 '돌이킬 수 없는'은 가사의 내용이 뮤직비디오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여 해석의 여지가 없는 곡으로, 타이틀곡 및 앞서 언급한 '진실'이 삽입된 뮤직비디오 풀버전(러닝타임 약 11분)을 감상한다면, 가사에 얽힌 화자의 스토리를 더욱 몰입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 비디오가 따라가는 주인공의 감정선은 [Step 2/4]이 단순히 섹시하고 퇴폐적인 콘셉트의 앨범이 아닌, 한 캐릭터의 불안하고 처절한 토로이자 비극임을 투영시키는 역할을 한다. 

 

─ 뮤직비디오에서 연기를 통해 보여준 아티스트의 콘셉트 몰입도는 무대로까지 이어져, 영화 캐릭터 같던 뮤직비디오 주인공의 꾸밈 없는 모습 그대로를 무대 위로 올려 뮤지컬 넘버처럼 구현했다. 유독 번진 듯 짙은 아이메이크업, 한 쪽만 뺀 귀걸이, 맨발로 춤을 추는 정열의 무희 같은 스타일링은 상당 부분 가인의 아이디어에서 기인한 것으로, 안무 라이브를 기본으로 이러한 세세한 연출에서도 감정 표현에 욕심냈음을 알 수 있다. 

 

─ Best B-Sides: 가인 (歌人), 진실

 

 


 

 

진실 혹은 대담 [Truth Or Dare] (2014)

 

“ Wanna know the truth?

─ 비비드톤 의상과 파란색 아이섀도우, 흰 피부톤과 대비되는 짙은 흑색 칼단발머리에 하의실종 패션까지, 온갖 원색적이고 눈에 띄는 비주얼 요소를 다 버무려 놓고 가십을 노래한다. 다른 곡들에 비하여 안무와 사운드는 덜어낸 대신 가인의 목소리와 표정 자체로 '스타성'을 증명한다는 점도 이 곡의 테마와 맞아떨어진다. 펑키한 리듬과 가인의 톡톡 튀는 창법은 묘하게 신경질적이지만 위트 있고 당당하다. 섹시 콘셉트의 아이콘이자 이슈메이커인 아티스트 이효리의 작곡 곡을 수록하였다는 사실마저, 이 앨범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재미를 더한다. 

 

─ 무엇보다 가인의 실제 자아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 있고, 그 메시지를 뮤직비디오를 통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정점을 찍는다. 스태프와 프로듀서, 가수 동료들까지 대거 출연하여 7분가량으로 확장된 페이크다큐 형식의 이 비디오는 아티스트에 대한 감독의 정서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전하고 있다. 가인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황수아 감독이 '모든 걸 다 알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현으로 자신을 꿰뚫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주변인과 대중으로부터 루머·소문에 시달려 더 이상은 상처받지도 않는다는,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관심을 받고 싶기도 하다는, 이면적인 게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절대 다 알 수는 없는……, 등등의 다층적인 면모를 모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연출의 기초에는 가인의 끼와 존재감이 있다. 이러한 주제를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냥 완전무고(?)한 존재로 콘셉트를 마치고자 하지 않고, '소문 중 어떤 것은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도록 여우 같이 무대를 연기하였다'고 말하는 가인이기에, '진실 혹은 대담'도 존재 의의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 Best B-Sides: Black & White, 폭로

 

 


 

 

Carnival (The Last Day) [End Again] (2016)

*황수아 감독은 참여하지 않았음

 

“ 나는 거기 있었고, 충분히 아름다웠다

─ 음악과 비주얼 콘셉트 모두 가인의 역대 솔로 앨범 중 가장 동화적이고 사랑스럽지만, 그래서 더욱 애상적인 '죽은 자의 카니발'이다. 이 곡은 영화 <코코 (2017)>에서도 등장한 멕시코 축제인 죽은 자의 날(Day of the Dead) 카니발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Carnival (The Last Day)'는 이미 세상을 떠난 주인공이 세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날 밤에,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을 잊고 지내라는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곡이다. 스트링과 브라스 등 판타지한 클래식 음악을 위해 필요한 모든 악기가 동원되어 가장 화사한 사운드를 꽃피움과 동시에 '불꽃처럼 사라지겠다'고 던지는 주인공의 한 마디는 역설적으로 부딪히며 서로를 극대화한다. 아름다움은 더욱 아름답게, 슬픔은 더욱 슬프게. 

 

─ 가인의 앨범 중에는 튀는 커플링곡을 짝맞춰 수록함으로써 타이틀곡에 다 담지 못한 서사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도록 의도한 것이 많다. [End Again]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과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Carnival (The Last Day)'의 앞 트랙에서, 'Carrie (The First Day)'라는 경쾌하고 황홀한 곡이 주인공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녀와 연인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예 'Prequel of Carnival'이라고 명명한 'Carrie'의 티저 비디오도 있는데, 가사의 내용과 일치하게 캐리라는 주인공이 연인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오며, 이후 'Carnival'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캐리의 장례이자 축제가 이루어진다. 

 

─ 한편 '돌이킬 수 없는'의 맨발, '피어나'의 테이블과 같이 무대를 위해 선정된 아이템이 'Carnival'에도 있다. 매 무대를 풍성하고 동화스럽게 장식하는 양산은, 위의 뮤직비디오와 티저 비디오에서부터 연속적으로 사용되며 [End Again]의 연인 간 서사를 삶에서 사후까지 이어주는 상징물이다. 디즈니 영화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 1964)>의 패션을 닮은 양산과 모자, 자수와 레이스로 꾸민 메르헨풍 의상 등 'Carnival' 무대가 선보이는 이국적인 스타일 역시 이 앨범이 가지는 특징이다. 인형 같은 무대 의상과 탭댄스를 섞은 경쾌한 안무는 환희에 찬 축제의 실루엣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 이후 김이나 작사가가 밝힌 비하인드에 따르면, 'Carnival'의 화자는 브라운아이드걸스 'Sixth Sense' 속 가인의 캐릭터와 동일한 인물로 기획되었다. 강렬하고 투쟁적인 이 곡 역시 같은 프로듀서진의 작품으로, 억압과 독재에 저항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전투에 희생된 가인은 'Carnival'을 통해 영혼으로 돌아와 연인에게 인사를 남긴다. 죽음 이후의 이야기인 'Carnival'과 레지스탕스 콘셉트인 'Sixth Sense'의 연결은, 다소 어려운 소재에 구체적 서사를 부여해 곡에 대한 몰입을 심화한다. 또한 가인의 기존 노선과는 동떨어졌다는 평이 있었던 'Carnival'이 본 팀과 만나 세계관을 확장함으로써, 아티스트의 행보 자체에 완결도를 더하기도 하였다. 

 

─ Best B-Sides: Carrie (The First Day), 반딧불이의 숲, 비밀 (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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