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이민수×김이나×황수아의 메르헨 유니버스 (3) 써니힐

2021. 8. 12. 23:54k-pop review & essay

 

<1편> 아이유: 엇갈리는 마음, 기로에 선 소녀

<2편> 가인: 상처는 영원히 내 안에 새기는 것, 사랑은 달콤하지만 유한한 것

<3편> 써니힐: 세상의 굴레 안팎에서, 세상의 법칙 향한 조소

 

 

[ 써니힐 SunnyHill ]

세상의 굴레 안팎에서, 세상의 법칙 향한 조소

 

'Midnight Circus' MV

 

 

써니힐은 가창력을 기반으로 댄스와 발라드, 어둡고 밝은 콘셉트 등 다양한 스타일을 오가는 유연한 정체성의 팀이지만, 이러한 소화력을 본격적으로 알렸던 것은 댄스 가수로의 시작인 'Midnight Circus'부터였다. 서커스라는 환상적인 소재에 예인들의 비극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로 독특한 음악풍을 보여준 이 곡에 이어, 현대인들의 특정 양태를 꼬집어 신랄한 댄스곡으로 노래하는 '베짱이 찬가', '백마는 오고 있는가'를 연속적으로 발매하며, 써니힐은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는 이단아의 시선이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쌓는다. 이후 비교적 밝은 댄스곡이나 감성 발라드를 위주로 활동하며 이 시기의 써니힐은 이 시기만의 모습으로 남지만, 지금까지도 이 팀이 가장 강한 임팩트를 가진 활동 역시 이 때의 음악들이다. 

 

흔히 '노래는 좋은데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 아쉬운 그룹'으로 써니힐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써니힐의 음악은 메인스트림에 반기를 드는 언더그라운드의 목소리에 최적화된 콘셉트다. 물론 유니크함이 더욱 화제가 되었다면 최상이었겠지만, 위 같은 이미지로 써니힐이 기억에 남는다는 그 자체로 콘셉트로서는 실패한 건 아닌 셈이다. 

 

이렇듯 이 당시 써니힐은 메시지를 강조한 그룹이었다. 써니힐의 세태 풍자는 반항적인 사회 구성원이나 내부폭로자의 관점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외부에서 바라보며 비웃는 듯하기도 하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의 법칙을 싫어하며, 또 그것을 표현할 때 돌려 말하지 않는다. 깊이 해석해야 보이는 은유를 숨기거나 꾸민 말로 포장하지도 않고 직관적·노골적인 언어를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세련된 표현은 아닐지라도 케이팝 신에서 눈에 띄는 시도가 되기에는 충분한 독특함이었다. 

 

필터링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는 것은 써니힐 음악만의 독특한 운율이 있고 또 이를 소화하는 보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톡톡 튀는 음악 특성으로 인해 맛깔스러운 보컬 표현이 필수적인 이 곡들에서, 각 멤버의 개성이 적합한 위치에 배치되는 재미 또한 써니힐 음악의 특징이다. 

특히 'Midnight Circus' 시기에 영입된 두 멤버인 코타와 미성의 존재가 팀의 이후 방향성 설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날카로운 보컬 활용력과 살짝 넋 나간 듯한(?) 표현력으로 콘셉트를 살리는 코타, 랩인 듯 보컬인 듯 카리스마 있게 뱉는 창법을 구사하는 미성, 예쁜 목소리와 러블리한 이미지의 승아(현 빛나), 감성적으로 감싸는 메인보컬 주비(+ 프로듀서이자 남성 멤버인 장현)의 조화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다해, 곡의 매력 어필을 구간별로 분담하는 시너지를 보여주었다. (현재는 장현은 탈퇴하고 여성 멤버 2명도 교체된 상황이나, 글에서는 이 당시 활동한 멤버 조합만 다루기로 한다.)

 

 

 

 

 

 

 

조영철×이민수×김이나×황수아의 메르헨 유니버스 (3) 써니힐

 

 

 


[ Best Discography ]

Midnight Circus [Midnight Circus] (2011)

 

“ Show must go on, Never dream

─ 해괴하고 기묘한 음악에 필터링된 듯 예리한 보컬이 얹히는 이 곡은, 언뜻 전자음과 이펙트로 범벅이 된 듯한 인상이지만, 자세히 들으면 빈티지한 실제 세션이 이런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스와 건반 등의 재지한 악기들이 절묘하게 섞이며 서커스 쇼라는 공간적 배경을 구현하고, 오토튠 없이 창법으로만 기계적으로 뒤틀린 목소리를 내어 화자의 캐릭터를 설정한다. 메인 멜로디뿐 아니라 겹겹이 쌓은 코러스에까지 이러한 효과를 살려 공간감을 으스스하게 채운다. 이 어쿠스틱한 방법이 'Midnight Circus'가 이토록 동화적인 음산함을 조성하는 키포인트다. 멜로디는 대중적 댄스곡이라는 측면보다는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를 만드는 기능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백마스킹 기법, 꼭두각시 인형처럼 정박에 맞춰 몸을 꺾는 안무 등의 다양한 이미지적 장치와 아이디어를 빽빽하게 밀어넣어 컨셉추얼함을 극대화했다.

─ 'Midnight Circus'가 회자되는 데는 가사와 뮤직비디오의 역할을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사는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무대를 장식하는 이들의 비극적 이면의 이야기를 서커스라는 소재를 통해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가사는 구간별로 분리되어 각 멤버의 개성을 날개로 달고 전개된다. 날카롭게 삐걱대는 벌스 멜로디는 코타의 극적인 보컬 연기에 의존하여 단편적 키워드들을 던진다. 속박·어둠·감옥과 광대·재롱·희극의 이미지를 대치시키며 다소 어려운 낱말들을 난사한 뒤에는, 카리스마 있게 아우르는 미성이 'Midnight circus'란 테마를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프리코러스에서는 위태로운 예인들의 상황이 간드러지는 승아와 서커스 단장 역할인 장현의 목소리를 타고 점진적으로 빌드업된다('아래 보면 정말 끝인 거 → 끝을 보는 순간 지는 거 → 지는 순간 넌 Out 되는 거'). 아찔함에 두려워하지만 결국 'Show must go on, never stop'의 신호와 동시에 쇼를 서고, 그 순간의 양면적 감정은 바로 뒤 후렴에서 호소적인 주비를 통해 직접적으로 제시된다('내가 울 때 네가 웃는다 / 난 다시 홀린다 / 사랑받고 싶은 거짓말 난 행복하다'). 쇼맨십의 아이러니를 노래하는 단 3분의 서커스 쇼는 이렇게 압축된 노랫말들로 바쁘게 달려가다 잠시 빛나고 스러지고 만다. 

 

가사의 스토리를 보강하는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주제를 더욱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색색깔로 바랜 색감, 반짝이지만 낡은 무대, 현란한 곡예사들의 춤 등은 시각적으로 동화적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결국 예인들이 잔혹한 쇼에 이용되고 죽음으로써 해방을 맞는 결말은 이 곡의 역설적 무드를 또 한 번 강조한다. 

─ 타이틀만큼이나 앨범 전체 구성이 연극적이고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기타가 주가 되는 음악적 통일성을 기반으로, 곡 배치의 기승전결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온다. 인트로에서 시작해 3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로 가기까지의 흐름은 잘 구성된 쇼처럼 매끄럽다. 다소 노골적이기도 하지만 또박또박 꽂히는 맛에 손이 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인트로곡 'Girl With A Accordion' 에서는 쇼를 여는 인사와 함께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아코디언 연주가 뒤섞이며 마치 서커스 쇼의 개막식에 와  있는 듯한 현장감을 조성한다. 두번째 트랙 '꼭두각시'는 광기 가득한 타이틀 트랙으로 가기 전 그 감성의 전조를 맛보는 곡이다. 자신을 '춤추는 꼭두각시, 꿈을 파는 노리개' 등으로 칭하며 '제발 꺼내줘, 끝없이 빌어'라고 호소하는 가사가 정말로 트랙 순서처럼 서커스 단원이 쇼에 서기 전의 심정을 노래하는 듯하다. 몽롱하고 잔잔한 가운데 멤버들의 보컬 개성이 뻔하지 않게 활용되어, 구간에 따라 절박함과 처연함의 감정이 드라마틱하게 교차된다. 다소 위험한(?) 발음 터치가 있는 포인트 구간은 곡의 흐름을 예상치 못하게 깨뜨려버리지만, 파격적인 재미 요소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쇼를 시작한 후의 애환을 노래한 'Midnight Circus'를 지나면 19금 딱지가 붙은 'Let's Talk About (Feat. 지아)'가 기다리고 있다. 앞선 두 곡에서 그렇게 벗어날 수 없던 금기와 한계로부터 해방된 듯한 재치 있는 트랙 배치다. 2000년대 컬러링 감성의 몽글한 전자 댄스 트랙 위에 '할 말은 해야겠다'는 후렴 테마를 중심으로 온갖 못 할 말(?)이 잘게 쪼개져 흩뿌려져 있는 곡이다. 마지막 즈음 '노래할 수 있다면 출격 준비 OK'라는 가사를 둘러싼 구간까지 가면, 그 현실적인 풍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앨범 테마와 겹쳐지며 물밀듯 쓸려 들어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다. 마지막 트랙에는 후속 싱글 앨범 곡인 '기도'가 프리뷰로 1분가량 수록되어 있다. '누가 나를 꺼내주길'이라는 노랫말을 마지막으로 우울하고 스산한 1분이 스쳐 지나가면, 앞선 곡들의 쇼 역시 마치 한밤의 꿈처럼 아른하게 멀어진다. 

 

─ Best B-Sides: 꼭두각시, Let's Talk About (Feat. 지아)

 

 


 

 

베짱이 찬가 [The Grasshoppers] (2012)

 

“ 죄인이 돼버린 춤 추고 노는 사람들

직관적인 전달성이 있는 동화와 동요를 매치해 단순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선보였다. 먼저, 즐겁게 춤 추며 뛰놀자는 내용의 동요 '둥글게 둥글게'는 써니힐의 색깔과 만나 풍자적 가요로 재탄생했다. 이 곡에 한 번 중독된다면 더 이상 원곡 동요를 그대로 부르기 어렵게 된다. 동요 훅 멜로디를 비슷하게 샘플링하되 같은 곡의 다른 구간 가사로 변용했으면서, 동시에 훅의 원래 가사 자체는 다른 부분에 배치하며 원곡을 뒤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한편 복잡하지 않게, 자유롭게 현재를 즐기자는 곡의 내용은 동요의 표현을 따오기도 했지만,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두 캐릭터 대치를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원작 내용을 뒤집은 이 곡에서는, 경쟁에 쫓겨 사는 개미가 즐거움을 쫓아 사는 베짱이를 우러러본다. 역사성 있는(?) 이 두 테마는 써니힐의 현대성과 결합되어, 청자들이 느낄 익숙함을 함정 삼아 예상에서 벗어난 본질적 메시지를 전하는 소스로 녹아 들어갔다. 

 

─ 쉽고 단순하게 중독되는 효과를 노렸지만, 그렇다고 마냥 평면적인 곡도 아니다. 이를 느낄 수 있는 곡의 특성은 모순적인 표현법에 있다. 가사는 '또 어딜 바삐 가, 쉬었다 같이 갑시다'라고 느림의 미학을 넌지시 제시하지만, 음악은 치열한 속도감을 타고 달린다. 이미 동화를 전복해 베짱이처럼 살고 싶다고 비튼 곡이 다시 한 번 비틀려 개미처럼 달려대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만, 말 그대로 베짱이를 찬미하는 개미 같은 현대인의 목소리라 생각하면 이 역시 또 다른 재미이다. (*가사의 화자가 개미와 베짱이 중 어느 쪽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지만, 이 곡이 개미들의 이야기라는 보도자료의 곡 설명에 따르기로 한다.)

 

또 음악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메시지성은 사운드에서 나온다. 밀도 있게 꿈틀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기타 리프,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파고들어 지나가는 첼로 연주는, 곡에 서정성을 한 방울 첨가해 내용에 무게감을 싣는다. 멤버들의 목소리를 생동감 없이 차갑게 밀어 버린 오토튠 처리는 음색의 파편들을 전자음 속에 모자이크처럼 배열한다. 오토튠이 당시 댄스 음악의 트렌드이기도 했지만, 써니힐의 다른 곡 중에서도 이 곡에서 유독 이 기법이 부각된 데서, 일률적인 개미들의 목소리란 테마를 강조하고자 한 목적성이 느껴진다. 

 

─ 동화적 공간을 조성한 뮤직비디오 역시 '개미&베짱이' 구도를 중심으로 이 둘의 공간을 분리하여 이미지적으로 대비시키는 직관적 연출을 한다. 뮤직비디오는 <개미와 베짱이> 동화의 결말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되며, 정장을 갖춰 입고 기계적인 일을 반복하는 개미 역할의 장현이 볼 거리 많고 자유로운 베짱이들의 세상을 경험하다, 결국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서 끝이 난다.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 쳇바퀴 속을 돌고 있었군 ”

 

다소 반복이 잦은 이 곡의 하이라이트이자 핵심적 구절은 장현의 파트다. 이 곡에서 개미로서의 삶에 열중하고 보람을 느끼던 유일한 개미인 장현이 삶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하면서, 흥겨운 베짱이 찬가는 성공적으로 끝맺어진다. 

 

─ Best B-Sides: 

 

 

 

 

 


 

조영철×이민수×김이나×황수아의 메르헨 유니버스 (1) 아이유

어릴 때부터 늘 좋은 노래를 들으면, 이런 노래는 어떤 사람이 만드는 건지가 궁금해졌다. 특히 고작 3분짜리 노래에 뭔가 오래도록 얽힌 이야기가 느껴지는 것 같을 때 그 노래를 더 좋아했고

rtbs.tistory.com

 

조영철×이민수×김이나×황수아의 메르헨 유니버스 (2) 가인

아이유: 엇갈리는 마음, 기로에 선 소녀 가인: 상처는 영원히 내 안에 새기는 것, 사랑은 달콤하지만 유한한 것 써니힐: 세상의 굴레 안팎에서, 세상의 법칙 향한 조소 [ 가인 Gain ] 상처는 영원히

rtbs.tistory.com


#토비레코드: 주로 K팝 얘기하는 블로그 [ rtbs.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