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9. 17:12ㆍk-pop review & essay
열림교회 닫힘 같은 노래다. 노래 풍이나 멤버들의 모습을 보면 날티만 가득하고 다 뒤집어 부술 것 같지만 사실 선도부를 표현한 캐릭터다. 뮤직비디오는 B급 감성을 표방하지만 섬세하게 짜맞춰 놓으니 한 편의 A급 필름이 됐다. 개인적으로 피버 시리즈에 대한 약간의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이번 곡은 뚝심 있는 마무리로 시리즈 전체에 쐐기를 박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이 흥미로운 콘텐츠에 대해 리뷰를 써보기로 한다.
B급 감성 조각들의 A급 패치워크: 에이티즈 '멋 (The Real) (흥:興 Ver.)' 리뷰
멋 (The Real) (흥:興 Ver.)
우선 '멋 (The Real) (흥:興 Ver.)'이라고 하는 이 노래는 2021년 12월에 발매된 앨범 [ZERO: FEVER EPILOGUE]의 타이틀곡이다. 곡명이 혓바닥이 긴 이유는 같은 해 4월부터 방영한 엠넷 프로그램 <킹덤: 레전더리 워>의 에이티즈 경연곡 '멋 (The Real)'의 리뉴얼 버전이기 때문이다.
킹덤에서 나온 버전과 비교해서 바뀐 부분은 국악 편곡 정도를 찾아볼 수 있다. 약간의 국뽕 함량 증가로 제목도 맞게 바뀌고 사투리 가사나 뮤비의 서예부 설정 장면과도 착 달라붙는 재미가 생겼다. 킹덤에서도 사자놀이패 몰고 와서 국악 한 스푼 맛보여주긴 했지만, 신곡에서는 드롭 멜로디 자체에 태평소를 연상시키는 신스가 전면으로 나와서 곡의 메인 감성을 흥으로 장식하고 있다. 물론 드롭 말고도 전체적으로 편곡이 되었고, 특히 프리코러스와 랩 파트에서 국악기 느낌이 잘 들린다. 그리고 무대를 보면, 킹덤에서 종호와 산이 채웠던 후반부 댄스브레이크를 이 새로운 버전에서는 매 무대마다 다른 멤버들이 각자의 다른 춤으로 구성하면서 '흥'이라는 테마를 현장으로 가져오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보이는 점이다.
사투리 가사를 잠깐 언급했는데, 이 가사들은 후렴 드롭 직전에 나오며 집중을 시키는 엣지를 담당한다. 지역성의 정수를 보여주기를 의도하며 국악기 편곡과도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에, 가사 중에서는 곡에서 가장 포인트가 되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가지 사투리가 아니라 여러 지역의 버전으로 변용을 하고, 서로 다른 각 가사를 각 지역 출신인 멤버들이 담당하며 본토의 맛을 살리는 재미도 있다. 참고로 이 파트들은 경상도 출신인 산과 성화, 전라도 출신인 윤호, 서울 토박이인 종호, 아버지가 충청도 분이신(ㅋㅋ) 우영이 다채롭게 꾸몄다.
노래가 전 곡인 불놀이야 뮤비에도 맛보기로 나오고 일회성 곡이라기엔 퀄리티도 괜찮게 느껴지더라니, 사실은 그룹 타이틀로 정해진 곡을 킹덤에 가져다 써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엔 버리고 지나가지 않고 새 앨범으로 발매됐다. 이 노래를 킹덤에서 부른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만, 별개로 타이틀로 쓰지 않고 넘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이유는 이 노래가 피버 시리즈의 중요한 일부이자 피날레이기 때문이다.
ZERO: FEVER
이 곡에서는 화자의 캐릭터가 그 자체로 곡의 메시지고, 또 사실상 4개 앨범으로 이어 온 피버 시리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의 이야기도 잠깐 하자면, 이번 앨범을 에필로그로 막 내린 피버 시리즈(2020.07 - 2021.12)는 에이티즈의 세계관을 시작한 트레저 시리즈(2018.10 - 2020.01)의 후속작인 동시에 프리퀄이다. 사실 에이티즈의 세계관이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것으로는 알고 있는데, 두 시리즈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세세한 스토리는 잘 알지 못한다 (...).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각각의 내용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트레저 시리즈의 프리퀄이 피버 시리즈라는 것에 대해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상태다. 그러니까 농구하고 춤추던 그 학생들이 졸업해서 해적이 되었다는 거지?...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메인 테마는 남들이 정한 규칙을 따르는 데 염증을 느끼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과 태도이고, 여기에 꿈에 대한 저마다의 상처와 열병을 앓던 소년들의 이야기로 아련 치트키까지 곁들인 파란만장 청춘 스토리-가 바로 피버 시리즈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그 중에서 아련 계열을 어필하는 서사적 속성의 타이틀곡들에는 Part.1의 'INCEPTION', Part.3의 'Deja Vu'가 있고, 메인 스토리의 번외편 느낌으로 소년들의 감정을 노래한 곡들로는 Part.3의 'Eternal Sunshine', EPILOGUE의 '야간비행 (Turbulence)'이 있다. 그리고 피버 시리즈의 테마를 대변하는, 화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강한 어조의 타이틀곡들은 Part.1의 'THANXX', Part.2의 '불놀이야 (I’m The One)', 그리고 이번 EPILOGUE의 '멋 (The Real) (흥:興 Ver.)'으로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마지막으로 설명한 타이틀곡 노선인 'THANXX', '불놀이야', '멋' 3곡은 공통적인 캐릭터를 공유하고 있다. 'THANXX'는 정해진 기준을 강요하는 세상과 타인들에 대한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자세를, '불놀이야'는 굳어진 잘못된 이상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다운 뜨거움을 표출하겠다는 확신적인 태도를, 그리고 '멋'은 그 자신의 뜨거운 열정이 어떤 올바른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지 말하며 비판 섞은 자기 확신을 보여준다. 곡 설명만 듣고 보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더니 왜 본인들이 이래라 저래라지?' 싶을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길을 제시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는 것이다. '나쁜 건 나쁜 거다'를 반복하는 Part.2 수록곡 '선도부 (The Leaders)'에서 좀 더 이 태도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모두 잘못 보고 있어 oh no 마치 그게 진짜 멋이라고 -불놀이야 (I'm The One)
무슨 말을 해 안타까운 게 하나도 안 멋져 중2병 같아 -선도부 (The Leaders)
이게 바로 멋인 기라~ 🎊🎺🎶📯📣🎉 -멋 (The Real)
피버 시리즈는 위처럼 멋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빌드업되다가, 에필로그 앨범에서 '멋'이란 곡을 발매하며 피날레를 터뜨린다. 확실히 명확한 계획 하에 세계관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곡들은 가사가 너무 필터링이 없이 지나치게 직관적이고 그들의 세계에 강하게 집중하고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듣기에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비슷한 저돌성으로도 자연스럽고 듣기 좋게 썼던 트레저 시리즈와 대비해서 보면, 이들의 세계에서 피버 시리즈는 이런 돌직구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영앤와일드 청춘들인가 보다.
느그들(?) ↔ 나, 우리
: 건들건들, 빈 수레, 나쁜 건 나쁜 거 아입니까, 겉멋이 죄 언행이 죄, 벌점이 답인 애, 취한 바보들, 척하는 애들
↔ Humble & Kindness, 자세는 낮게 눈빛은 Keep it up, 태도는 정중해 자신과 신념을 위해, 황야의 리더, 용기 패기 객기, 가슴만 더 뜨겁게
이런 식으로 피버 시리즈의 세계에는 명확한 이상과 대척점이 있다. 화자가 그리는 자기 자신의 이상향은 나쁜 길로 가는 이들을 바로잡는 (좀 강한 모습의) 선도부이자, 무의미한 허세를 부리는 이들을 보란 듯이 건전한 에너지를 불태우며 나만의 길을 개척하되, 겸손을 잃지 않는 올바른 간지의 이정표다. 양아치나 허세와는 대비되지만 또 모범생은 결코 아니고, 동시에 건강한 파괴력도 있는 에이티즈만의 개성적 멋을 보여준 피버 시리즈였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에필로그 타이틀인 '멋'은 "겸손", "신념" 같이 댄스곡에 묻히기는 좀 딱딱한 단어들을 직접 쓰며 그 표현법의 끝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뮤직비디오나 무대 아이템에서도 아예 "겸양지덕", "사필귀정"이라고 써놓을 정도로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강조한다.
다만 가사는 재밌다면 재밌다고 할 수도 있고 가볍다면 가볍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어느 정도의 시적 표현을 하겠다는 의지도 전혀 없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화자의 캐릭터성이 양아치와는 척지면서도 + 흔히 떠올리는 모범생도 아니면서도 + 동시에 강력한 외적인 힘도 발산해야만 하는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토록 저돌적인 캐릭터를 가사에 '은은하게' 녹여내는 건 좀 애매하다. 이상을 향해 달리는 트레저 시리즈와 가사의 결이 다른 이유도, 세계관 속 트레저 시리즈의 시점보다 더 어리고 치기로 들끓는 시기의 감성인 피버 시리즈만의 에너지 표출 방식이 특별히 설정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호불호 걱정은 개나 주고 썼다는 거다. 이는 피버 시리즈의 진정한 정신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MUSIC VIDEO
그 다음으로 뮤직비디오 얘기를 하고 싶은데, '멋'의 뮤직비디오는 멋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 곡이 보여줘야 하는 것을 다 보여주고 있다.
일단 만화 같은 구도나 아이템을 쓴 컷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분명 오마주, 클리셰 범벅인데, 이걸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는 내 좁은 식견이 통탄스럽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라도 비디오를 대강 보면, 분명 내가 모르더라도 의미 없이 넘어가고 있는 컷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뮤직비디오 감독의 SNS에서도 이 같은 연출 의도를 언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장면들을 '만화적인 뉘앙스'라고 설명한다. 스케치 컷 출처는 디지페디 인스타그램이다.
은빛 병지 늘어뜨리고 심기불편하게 도덕책을 정독하는 폭풍의 전학생 민기와,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3개의 동아리원들, 그리고 부 명예 미모를 겸비한 이사장 아들램 포스로 그 모습을 관전하는 여상쿤... 구애하고 견제하고 난리가 나다가 결국에는 하나된 마음으로 춤을 추면서 청춘 만화를 찍는 내용이다. 일진의 주먹을 "도덕책"으로 방어하는 전학생이나, "겸양지덕" 부채를 들고 LED 조명판에 먹으로 "겸손"을 휘갈기는 서예부, 부원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자신도 같이 90도로 인사하는 야구부 등 가사와 함께 일관된 메시지를 유머 섞인 장면들에 녹여 연기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능청스러워서 웃기다.
또 이 과정에서, 서예부니까 한복을 입고, 야구부니까 야구복을 입고, 바이크부니까 또 라이더 자켓을 입어줘야 하는~ 그리고 부잣집 도련님 꽃미남도 꼭 한 명 있어줘야 하는~ 온갖 니즈를 가리지 않고 쑤셔넣는 것도 마치 만화 등장인물들을 설정한 것처럼 이 뮤비의 의도와 결이 맞는다. 호흡 빠른 노래에 맞춰서 발빠르게 짜맞춰지는 신들은 어느 것 하나 그냥 버려지지 않고 이 뮤비의 만화적 감성을 구성한다. 약간 뻔한 콘셉트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전에 최대로 때깔 좋은 뻔함을 오마주 모음집처럼 유머러스하고 당연스럽게 때려박아서 정신이 혼미할 만큼 재밌는 뮤비다. 근래 본 K팝 뮤비 중에서 진짜 새로운 계열의 명작품이고, B급 감성의 A급 패치워크 그 자체다.
사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이렇게 뮤직비디오 이야기는 마무리 하면서 기억에 남는 몇 개의 장면을 짤로 함께 올려 본다. 극히 일부일 뿐 모든 장면이 알차니까 뮤직비디오(링크)를 직접 보도록 하자.
"겸양지덕"
"열정최산"
분위기 참 좋은 고등학교 동아리들...
심기불편한 송민기씨
전학생에 폭력으로 기강 잡으러 온 양아치를
한방에 무너뜨릴 수 있었던 전격 비법!
그것은 바로 >>> "도덕" <<<
하지만 그도 현타는 피할 수 없었다고 한다 (비하인드컷)
나오자마자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사실 짤이 아니라 뮤직비디오 중간에서 봐야 하니까 꼭 전체로 보면 좋겠다.
감독님의 최애 컷이라는 식빵여상 (메이플 캐릭터 같다...)
애니메이션 전투씬 같은 화면 기법과 곡의 고점인 하이라이트에서 민기의 공격적인 랩, 제스처
둘을 비벼먹으니 개멋있어짐
한 판 붙기 위해 일제히 모이는 위풍당당 동아리원들
그들이 주먹을 맞댄 곳엔 에네르기파가 솟아오르고
이 모습을 유유히 관전하다 흥미가 생긴 강여상 도련님 그 현장에 직접 행차
치열함 끝에 다같이 손에 쥘 수 있었던 것... 그것은 바로
"멋 개정판"
그렇다... 이러이러한 과정이 있어서 우리는
지금과 같은 "멋 개정판(흥:興 Ver.)"을 들어볼 수 있었던 것이다.
멋 (The Real)
첫 등장부터 이 노래는 의미가 있었다. 일단 킹덤이라는 방송은 이런 메시지로의 환기가 매우 적절한 상황이었다. 킹덤 무대들은 대부분 딥하고 묵직하게 힘을 준 멋들로 가득했지만, 전체적으로 오락적이고 가벼운 재미는 찾아보기 힘든 피로한 방송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와중에 '멋'이라고 하는 이 노래는, 그 치열한 경연의 가장 치열한 마지막 순간에, 흥이란 요소를 제시하고 함께 즐기는 장으로 만드는 나름의 개성적인 존재였다. 물론 에이티즈의 무대라고 '피로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이 노래에서는 '이 팀은 다른 얘기를 하네?'라는 의미에서의 눈길이 가긴 했으니까.
킹덤에서 피날레를 장식했던 이 곡을 리뉴얼하고 기깔나는 뮤비까지 장착해서 다시 나온 '멋 (The Real) (흥:興 Ver.)'은, 또한 에이티즈의 2021년 활동의 마지막과 피버 시리즈의 마지막 역시 흥겨운 축제로 만들며 끝낸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 점에서 더 좋다. 트레저 시리즈에 비해서 피버 시리즈는 늘 조금씩 아쉽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즐거운 에필로그와 함께 행복하게 보내주고 다음을 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피버 시리즈와 멋 이제 안녕~ 트레저 시리즈 다음 이야기로 만나자~ 🔥
#토비레코드: 주로 K팝 얘기하는 블로그 [ rtbs.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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