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즈와 함께 흘러 지나가는 한 시대의 향기

2021. 11. 12. 23:26k-pop review & essay

 

지나가는 것,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소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디테일하고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은 지금까지 쓴 어떤 글보다도 개인적이고 구질구질하다.

 

 

 

 

 

 

 

러블리즈와 함께 흘러 지나가는 한 시대의 향기: 2014 - 2021, 러블리즈 리뷰


 

Chapter 1. 처음에 반가웠던 그 마음으로

- 지금 이대로 (2018)

 

러블리즈가 교복을 입고 데뷔한 2014년

 

나도 학생이었고, 그때 예쁜 교복 의상이나 데뷔곡 'Candy Jelly Love' 등에 대한 소소한 긍정적 감상들을 계기로 러블리즈를 알기 시작해서, 7년이 지나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모든 타이틀곡과 수록곡까지 족적을 따라왔다. 노래가 좋은 것을 넘어 러블리즈만의 특별함을 좋아했고, 또 가창자인 멤버들도 그러한 특별한 노래들과 너무 잘 어울려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음악 세계가 당시는 하나의 판타지처럼 다가왔다. 뭔가 내 안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섬세한 갬성을 고농축으로 수혈해주는 낯선 존재라서 좋았다. 

이 시기쯤을 돌아보면 2011년 에이핑크의 데뷔로부터 다시 불이 지펴진 순수·청순 계열의 콘셉트 붐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때이고, 러블리즈 후에도 여자친구, 오마이걸 등이 연달아 데뷔하면서 꽤 오래 이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넓은 범주로 '청순', '소녀' 등으로 묶일 법한 콘셉트의 아이돌이 많았고, 나는 유구하게 이런 감성적인 계열의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팀들의 노래도 전부 좋아했던 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러블리즈의 노래는 개인적으로 좀 더 독특하게 느껴졌다. 에이핑크와 여자친구는 S.E.S., 핑클과 같은 1세대 아이돌이나 초기 소녀시대가 떠오르는 정통 코리안청순의 후계자이고, 오마이걸은 한국곡스러운 한(?)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국적인 곡조가 특징이라면, 러블리즈는...... 뭐라 해야 하지??? 싶은... 설명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특색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새롭고, 느낀 그대로 말하자면 다소 일반적인 감성으로부터 붕 떠 있는 듯한 특이한 노래를 했다. 처연한 청순미가 있기는 한데, 또 첫사랑 같은 청순 소녀의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자기 세계가 너무 확실해 남들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게 보이는 성격도 있다고 해야 할까...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게 윤상, 강수지 느낌이라는데, 소녀시대와 빅뱅으로 대중음악에 눈을 떴던 내가 그 시대 갬성을 알았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러블리즈가 복고적이기는커녕 묘하고 독특하다고만 느껴졌다. 

 

 

 

'Candy Jelly Love'를 들으면

 

당시엔 처음 들어본 가냘픈 신스사운드 같은 것이 엄청나게 개성적인 오리지널리티로 들렸다. 또 다인조 댄스곡인데도 곡이 꽉 차는 부분 없이 잔잔하고, 다른 그룹들처럼 곡 구성이 명쾌하게 터지지도, 고조되지도 않고 맥없이 끝나버리는 게 너무 이상한데 좋았다. 여긴 대세를 거스르는 게 전략인가...? 싶다가도, 뭔가 밍밍한데 계속 맛봐야 될 것 같은 마성의 매력이 있었고, 그 밍밍한 노래에 각 잡힌 춤을 추는 것도 예뻐 보였다. 다른 비슷한 콘셉트의 그룹들을 색감으로 표현할 때 파스텔톤이라고 한다면, 러블리즈는 그냥 파스텔이 아니라 수채화 색감까지도 느껴지는 투명하고 신비한 밍밍함이 있었다. 

 

그리고 가사는 문장들이 되게 예쁜데 당최 무슨 상황인 건지를 모르겠어서 또 기묘하다. 7년 지난 지금도 모른다. 그래서 화자와 상대가 이별했다는 건가? 장거리 연애인가? 사별한 건 아니지?... 아무튼 자극과 다이나믹함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고 아주 건강한 맛이 나는, 근데 뭔가 수상쩍은 맛의 데뷔곡이었다. 

 

 

 

수록곡을 듣고 이 수상함은 더 깊어져 갔는데... [Girls' Invasion] (2014)

 

응당 청순 걸그룹이라 하면 가슴 벅차거나 살랑거리게 하는 타이틀을 듣고 난 뒤에 수록곡을 들었을 때, 상큼하게 기분전환되는 노래와 감성적인 미디엄템포가 나와주는 게 정석이다. 가령 소녀시대 [소녀시대 (Girls' Generation) → Ooh La-La!, Kissing You, Baby Baby], 에이핑크 [몰라요 → It Girl, Wishlist], 여자친구 [유리구슬 (Glass Bead) → Neverland, White (하얀마음)]... 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근데 'Candy Jelly Love'가 있는 이 앨범은 이런 공식과 전혀 상관이 없이 흘러가는 것이 특이했다. 일단 9개 트랙 가운데 인트로인 1번을 제외하면 8개 곡이 있는데, 그 중 전반과 후반으로 4곡씩 나뉘어서 전반은 신곡, 후반은 러블리즈 프리데뷔 프로젝트의 일환인 솔로·유닛곡들로 채워져 있다. 하나같이 2번 'Candy Jelly Love'에서 느낀 수상함이 증폭됐다는 특이점이 온 노래들이었다. 

 

 

03 어제처럼 굿나잇> 나는 기본적으로 신나는 노래 하다가 갑작스럽게 축축한 발라드로 감정선을 꺾어버리는 아이돌 앨범 전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발라드곡은 내가 아이돌 발라드를 좋아하지 않는 핀트와는 매우 엇나가 있다. 축축은커녕 살얼음판 같다. 일단 멜로디가 신파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대신 펼쳐지는 후렴의 가성 파티가 인상적인데, 8명의 유릿장 같은 목소리에 찬바람 부는 분위기가 싸늘하다. 이별을 부정하는 슬픈 노랜데, 후반부까지 가면 눈물도 안 나오고 싸늘하다 못해 너무 춥다... 그래서 좋다. 

 

04 이별 Chatper 1> 좀 신나지나 했는데 또 이별 노래다. 걸그룹 데뷔 앨범에 이런 식으로 처지는 이야기 위주로만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고 느껴진 지점이다.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면서 감정을 계속 반전시키고, 전체적으로 신나는 신스 사운드를 버무려 놓은 댄스곡이다. 가사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있다는 내용인데,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마요,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어' 같은 섬세한 가사에 후렴 멜로디는 또 밝아서 소녀 감성이 폭발한다. 아무튼 컨셉 정말 확실하다. 

 

05 비밀여행> 이 노래로 넘어갈 때는 독특함을 넘어 수상함까지도 느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 나오는 병원 효과음과 'my lies my lies' 하는 기묘한 멜로디와 창법 하며,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마지막 부분의 테이핑 늘어지는 소리 같은 요소들이 좀 괴상하게 느껴진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듣는다면 그냥 특이하다 싶었다가 지나갈 요소들이기는 한데, 이때 이 노래의 가사에 대한 괴담ㅋㅋㅋ까지 있었어서 여러 모로 등골 서늘하게 했던 노래다. 어쩌다 이런 오컬트한 청순 걸그룹 노래가 나왔지... 전체적으로 멜로디는 단조로운데, 'Candy Jelly Love'처럼 평탄함에 끌리는 나름의 맛이 이색적이다. 

 

 

이렇게까지 듣고 그 뒤 06-09번 트랙인 프리데뷔 곡들('남보다 못한 사이 (Feat. 휘성) (Babysoul Solo)', '그녀는 바람둥이야 (Feat. 동우 Of 인피니트) (Babysoul&Kei)', 'Delight (Yoo Ji-Ae Solo)', '너만 없다 (JIN Solo)')을 보면 이 노래들도 죄다 이별했거나 이별을 앞둔 노래들뿐이다. 이 앨범 대체 뭐지? 

 

'Candy Jelly Love'도 사실 가사를 보면 배경 상황에 대한 별 단서가 없는데, 나머지 곡들이 이렇게 명확히 부정적인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 걸 보면 교복 입고 서슬퍼렇게 미소짓고 있는 캔젤럽이 더 묘해진다(안 그래도 이미주랑 케이 보고 여고괴담 나올 것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다고...). 아무튼 그냥 내가 예상한 걸그룹 앨범이 아니라 뭔가 미스테리한 한 권 소설책처럼 느껴지면서, 이 독특함과 찜찜함에 매료됐다. 사실 이 앨범 이후로도 러블리즈의 수없는 명곡들이 나왔고, 개별곡으로 따지자면 다른 앨범에 더 좋아하는 노래가 많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데뷔 앨범에서 드러나는 러블리즈 색깔의 농도가, 이후의 다른 앨범들이 주었던 임팩트에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 가장 인상에 남는다. 

 

 

 

 

 

 


 

Chapter 2. 네 떨림과 나의 설렘이 연분홍색 빛 속에 춤을 춰

- 지금, 우리 (2017)

 

러블리즈가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2015년

 

 

이었다. 'Candy Jelly Love'에 대한 관심이 호기심 정도였다면, 이때 나온 '안녕 (Hi~)'은 6년 지난 지금까지도 제일 좋아하고 앞으로도 불변할 러블리즈의 최애 노래다. 앞서 내가 청순 걸그룹의 노래들이 원래 내 취향이라고 말했지만, 지금 곱씹어 보니 그게 아니라 그냥 러블리즈의 '안녕'을 계기로 청순을 좋아하게 됐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다른 곡들은 흘러가는 시대에 떠내려 보낼 수 있는 향수적 감정을 기반으로 좋아한다면, 이 노래는 무덤까지 끌어안고 가고 싶은 내 영혼의 원탑곡이다. 추억 보정 전혀 없이, 그냥 6년 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너무 사랑한다... 💧

 

'안녕'을 그냥 청순 콘셉트 노래라고 설명하면 매우 화가 날 것 같지만, 한편으론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히 부연설명할 게 없다. 그냥 멜로디, 가사, 연출들이 본질적으로 너무 완벽하니까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다. 또 들으면 그냥 감성적인 포인트들이 너무 와닿고 심금을 울리니까, 상큼하고 설레지만 긴장감을 안고 있으니까... 이렇게 싱그러운 고백송인데 뮤비 보면 이미 차인 것처럼 흐리기만 해서 먹먹하니까... (다시 보니까 설명할 게 없다는 말은 틀린 듯)

 

우리 만날래 내가 지금 할 말이 있어 / 우리 만나자 물어볼 게 있으니까
용기 내서 하는 말이야 그러니 솔직하게 대답해줘
우리 만날래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 우리 만나자 그냥 이런 친구 말고
저기 말야 내가 있잖아 널 많이 사랑해

 

 

멜로디는 맑고 부드러운 와중에 섬세하게 그려낸 감성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들에서 마구 꽂힌다. 몇 가지 포인트가 있지만 일단 후렴에서 '우리 만나자 물어볼 게 있으니까' → '우리 만나자 그냥 이런 친구 말고'란 가사에서의 멜로디 변화(정확히는 멜로디 변화에 기가 막히게 맞춘 가사 변화겠지만), 그리고 간주에서 현악 합주 사이에 외쳐지는 'Hey!' 등이 너무 사기적으로 러블리한 순간들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강한 일격은 브릿지에서 정예인이 부르는 '자꾸 그럴래 대체 뭐가 재밌는 거야, 자꾸 그럴래 나는 심각하단 말야' 파트다. 당시에 가창력이 대단한 멤버인 것은 아니었지만, 이 부분을 천진한 음색과 담백한 창법으로 너무너무 와닿게 불러서, 여기를 듣기 위해 늘 끝까지 듣는다(그리고 너무 예쁘고 귀엽고 청순해서 무대로 보면 더 더 하이라이트임). 정예인이 데뷔곡에서는 분명 가수에 그렇게 적합한 목소리는 아닌 것 같아 비주얼 역할로 데뷔를 했겠다 싶었던 멤버인데, 바로 두번째 앨범에서 똑같은 그 목소리로 녹다운시켜버리는 게 사기가 아니면 뭐냐... 

 

아무튼 여러 모로 이 노래는 원앤온리다. 비슷하게 흰 블라우스에 분홍 스커트 맞춰 입은 청순 콘셉트는 많았겠지만, 적어도 노래로서 '안녕'과 비슷했던 건 나한테는 케이팝 전체를 통틀어 한 곡도 없다. 

 

 

 

이미주 (1994, 메인댄서) / 정예인 (1998, 리드댄서) / 류수정 (1997, 리드보컬)

제일 좋아하는 멤버 조합인데(정규2집 수록곡 'The' 유닛), 절묘하게 제일 좋아하는 파트 센터인...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노래가 같은 해 나온

 

'Ah-Choo'다. 역시 상큼한 노래지만 절대 일반적이지 않은 곡 구성이 특별하다. '안녕'의 설렘이 현악으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면, 아츄는 빽빽하고 차가운 전자 신스사운드 때문에 더 댄서블한 느낌이다. 또 '아츄!'를 외치는 프레이즈가 지금까지의 러블리즈 노래 가운데 가장 캐치하다. 하지만 이 곡이 품는 독특한 아련함 때문에 결코 평탄하게 대중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난 또 그런 이유에서 아츄를 좋아하게 돼버렸다. 

 

Ah Choo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 너만 보면 해주고픈 얘기가 참 많아
나의 입술이 너무 간지러워 참기가 힘들어
Ah Choo 내 맘에 꽃가루가 떠다니나봐 / 널 위해서 해주고픈 일들이 참 많아
나의 마음이 내 사랑이 더 이상은 삼키기 힘들어

 

 

일단 가사부터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안녕과 아츄 모두 서지음 작사인데, 두 곡은 멜로디 자체도 너무 강력하지만 멜로디를 완벽하게 따라가는 가사의 에너지가 곡을 완성했다. 이 곡의 가사는 설렘을 재채기에 비유하며, 굉장히 낯설지만 세심한 문학소녀 감수성을 덕지덕지 먹여준다. 

 

곡 구성도 특이하다. 우선 인트로에서 감성적으로 흐르는 피아노 소리를 깨버리고 시작하는 벌스는, 귀엽고 평이한 편이다. 근데 너무 평이하고 선율적이어서 '이 노래는 프리코러스가 없나?' 싶을 정도다. 그러다가 후렴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갑자기 전개가 빨라지는 삽입 구간('너는 내 맘 모르지')이 힘을 모아 반전시키다가, '아츄!'라는 포인트와 함께 상큼함을 터뜨린다. 이런 식의 급한 전개는 브릿지에서 또 힘을 발휘한다. 인트로 때 밀어 놓았던 피아노 소리가 다시 등장했다가 그 뒤로 갑자기 베이스가 엄청나게 강조되고, 가사는 고백을 거절당한 듯 반전돼버린다. 흔한 상큼·청순 걸그룹 곡이라기엔 이 후렴 전후·브릿지의 마이너한 화성과 전개가 곡의 성격을 완전히 비틀어 놓고 있는 별종 같은 곡이다. 

 

그리고 아츄는 안무가 너무 예쁘다. 사실 러블리즈가 퍼포먼스에 강세를 두는 그룹은 아니기 때문에 러블리즈를 보면서 안무가 특별히 너무 맘에 든다는 생각은 잘 못해 왔는데, 아츄의 안무만큼은 정말 좋다고 생각했었다. 팔다리를 시원시원하게 쓰면서 곡이 강조하는 박자에 딱 맞게 + 무용 같은 유려한 동작 + 힘이 필요할 땐 파워풀한 동작으로 곡을 제대로 살리는 안무이고, 턴 동작 같은 것들이 원피스 의상과의 조화도 좋다. 

 

 

↓제일 좋아하는 안무

 

 

 

예뻤어...

 

그리고 이때 정말 예뻤다... 아이돌의 비주얼도 노래와 콘셉트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멤버들과 노래의 조화가 너무 좋아서 러블리즈를 좋아하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다. 곡 제목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대 링크를 걸었으니, 클릭하면 열어 볼 수 있다. 

 

Candy Jelly Love) 사실 프리데뷔 때는 프로모션을 퍼부었어도 그룹 데뷔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정식 데뷔 무대에서 비공개 멤버였던 류수정과 케이가 눈에 너무 띄어서 무대를 계속 보게 됐던 것 같다. 둘 다 동그랗게 생긴 외모가 살짝 닮았는데, 류수정은 갈색 웨이브머리+웃는 게 햇님 같음+큰 키+허스키보이스 ↔ 케이는 흑발 생머리+좀 서늘하게 생김+작은 키+청아한 목소리인 캐릭터 차이가 있는 것이 좀 만화적으로 느껴졌다(만화 안 보지만 대충 그런 감성)... 

 

그리고 역시 프리데뷔 시기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멤버 이미주도 새롭게 눈에 띄었었다. 이때 메이크업도 화장기가 별로 없고 멤버들이 다들 수수했는데, 그 중에서 이미주 혼자 비주얼 선명도(?)가 너무 높은(?) 타입의 이목구비라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일자눈썹에 생머리를 한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는데, 촌스러워 바꾸라는 팬들이 많아 슬펐다. 눈썹과 헤어를 변신하고 나왔을 때 다들 쾌재를 불렀는데, 바꾼 모습이 더 안정적으로 예쁘기는 해도 개인적으로는 그전 스타일이 너무 러블리즈 곡의 특성을 반영한 느낌으로 예쁘게 보였어서 아쉽긴 했다. 이미주뿐만 아니라 다들 이때 느낌은 이때밖에 안 난다고... 

 

안녕 (Hi~)) 이땐 류수정, 정예인을 너무 좋아했다. 류수정 특기인 자연스러운 표정과 제스처가 끼 넘쳐 보였고, 정예인은 쌍꺼풀이 없는데 청순함이 느껴지는 특유의 풋풋한 매력이 예쁘게 보였다. 또 이 두 사람이 가운데에 서는 안무 구간이 많았던 것 같은데, 둘 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어서 그룹 전체의 태(?)가 너무 예쁘게 살았었다. 그리고 케이는 이때 앞머리를 없앤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곡에서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좋아했다. 유튜브 어딘가에 내가 이때쯤 만들어서 올린 케이 팬영상 아직 있을 텐데... 

 

Ah-Choo) 8명 다 똑같은 의상에 똑같은 갈색 긴 생머리... 이런 거 원래 싫어하는데 아츄 스타일링은 왜 이렇게 좋지? 이때 정말 다 예뻤다. 특히 이미주와 케이가 시스루뱅 내렸는데 너무 예뻤다. 

 

 

이렇게 멤버들의 비주얼이 인상적이라고 느낀 다양한 계기와 이유들이 있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가 특히 좋아한 멤버들이 팀 컨셉에 대한 몰입도가 높았다는 점인 것 같다. 러블리즈 팬들이 왜 러블리즈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그게 본인 무드와 잘 맞아서 잘 소화하는 멤버들이 있어서 러블리즈의 음악과 콘셉트가 자연스럽게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예인 제발 아이돌해

 

 

 

 

 

 

 


 

Chapter 3. 내가 속한 시간의 한 켠에 네가 있어 다행야

- Emotion (2017)

 

 

2016년부터의 이야기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고 러블리즈 감성의 시그니처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명곡들을 선별해 소개하면서 채우려고 한다. 아무래도 러블리즈 감성의 원천이 절반은 가사에 있으니까, 곡 리뷰와 함께 가사에도 주목해 주면 좋겠다. 

 

Destiny (나의 지구) -[A New Trilogy] (2016)
기울어진 그대의 마음엔 계절이 불러온 온도차가 심한데
늘 그댈 향한 나의 마음엔 작은 바람 한 점 분 적 없어요

그 꿈이 깨지길 이 밤을 깨우길
잔잔한 그대 그 마음에 파도가 치길

 

러블리즈의 음악 세계에서 특징적인 몇 가지 색채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하나는 짝사랑 계열이다. 그리고 이 곡은 그 계열 안에서도 처연함과 애상성 같은 모든 마이너란 마이너의 서정성 농도가 가장 짙다. 컨셉추얼한 커버 무대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원곡 자체에서 이미 그 드라마성이 완성돼 있는 곡이다. 

 

가사는 화자는 달 / 화자가 사랑하는 상대는 지구 / 상대가 사랑하는 또 한 명의 여성은 태양이란 천체들로 비유하여 그들 간의 관계를 노래한다. 이런 이과적인 섬세함은 작사가 전간디의 작품이다. 그전의 사랑스러운 표정은 잃고 상실감을 연기하는 멤버들의 보컬은, 댄스곡이지만 발라드를 부를 때 정도의 감정으로 충만해 있다. 

 

이 앨범의 인트로곡 'Moonrise'와 앨범 마지막 트랙 '인형'을 함께 듣기를 추천한다. 'Moonrise'는 달빛처럼 영롱한 소리의 감각으로, '인형'의 수동적 인물 설정은 지구를 도는 달과 의미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 두 곡은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Destiny'의 슬픈 서정성을 배가시킨다. 

 

 

마음 (*취급주의) -[A New Trilogy] (2016)
너를 바라봤었어 담벼락 저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까치발을 들고서
받는 사람 자리에 너의 이름을 쓰고 나 이젠 너에게 전할래

 

'Destiny'와 같은 앨범의 아련하면서도 상큼한 곡이다. 사실 이 앨범 곡이 전부 좋지만, 러블리즈가 'Ah-Choo'로 제시한 기존 색깔을 가장 잘 이어받은 곡이라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듯하다. 윤상(원피스) 곡에 특징적으로 들어가는 쨍한 전자 신스사운드가 러블리즈에서는 특유의 소녀스러움을 증폭하는 악기가 된 점이 재밌다. 

 

 

Cameo -[Lovelyz 2nd Album 'R U Ready?'](2017)
언젠가 한번쯤 나를 알아봐줄까요
이대로 엔딩이 날 것만 같아 마음만 졸이죠
이름은 알까요 나는 Cameo
빛나는 널 볼 때 너무 아파요
잘할 수도 있는데 잘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

 

러블리즈는 밝은 멜로디에 슬픈 가사를 매치하는 데서 나오는 아이러니한 감정 묘사를 많이 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거기에 짝사랑 계열 가사를 독특한 시점(카메오(정확히 말하면 의미는 엑스트라))에서 썼다는 점을 더해서 더 인상적이고 아련하다. 

 

 

삼각형 -[Lovelyz 3rd Mini Album (Fall in Lovelyz)] (2017)
비밀인데 내 마음 여기까진 것 같아
소중했던 너와의 추억까지 슬퍼지지 않게 내가 다 잊을게
아프지만 내 마음 난 네가 더 소중해

 

소속사 선배 인피니트는 친구 여친 뺏는 노래를 했는데 러블리즈는 친구 때문에 좋아하는 남자 포기한다. '너'라 부르는 2인칭 대상이 상대 남자가 아니라 친구인 점이 독특하고, 역시 밝은 멜로디와의 조화 때문에 가사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곡이다.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서글프지만, 브릿지 뒤 마지막 후렴에서 케이, 진 파트는 진짜 왜 이렇게 슬프지... 멤버들의 목소리가 여리면 여린 대로, 성숙하면 성숙한 대로의 아픔이 콕콕 찌르는 노래다. 

 

 

지금 이대로 -[tvN 300 x NC 피버뮤직 2018] (2018)
네 두 눈에 비춰서 나는 처음으로 날 볼 수 있었어
그 모습이 좋아서 나는 오랫동안 내것인 널 상상도 했어
난 아마 못할거야 널 아주 지우는 건

하날 지우면 다른 기억이 또 고개를 들어서 내 맘 제일 깊은 곳에다 숨겼어
너란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까
같이 만들었던 테두리 끝에서 우린 서로 다른 시작을 꿈꿔서
여기 아름다운 우연의 끝에서 우린 멈춰야만 하는 거야 지금 이대로

 

그룹의 앨범에 실린 곡은 아닌 프로젝트성 곡이지만, 대놓고 슬픈 댄스곡에 러블리즈 감성 그 자체다. 오랜만의 윤상 김이나 조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가사가 너무 좋고 러블리즈스럽게 서정적이다. 뭔가 보컬 마감이 옛날 발라드처럼 다소 예스러운 것이 호불호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특징이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은 불호에 가깝지만 이 곡의 다른 요소들이 그걸 상쇄할 만큼 좋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는 곡이다. 

 

 

절대, 비밀 -[러블리즈 7th Mini Album [Unforgettable]] (2020)
고백이란 지도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어
혹시 그런 날이 온다면 해서
네가 내게 온다면 길을 알려주려고
이젠 필요 없겠어

 

러블리즈 마지막 앨범의 발라드곡이자, 마지막 짝사랑 곡이다. 러블리즈의 첫 발라드곡인 '어제처럼 굿나잇'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적인 가성 멜로디, 슬픈 듯 차가운 분위기, 끝까지 짝사랑의 여운을 새드엔딩으로 남기는 가사가 좋다. 

 

 

이 외에도

 

늘 앨범의 인트로곡에서부터 섬세하게 공을 들이는 점이나, 초기 앨범 특징 중 하나인 기묘·키치 계열(비밀여행-놀이공원-예쁜 여자가 되는 법-WoW!)이나, 허망어반스테레오(예쁜 여자가 되는 법), 심규선(졸린 꿈)과 같은 인디풍 아티스트와의 협업 등이 러블리즈의 세계를 빛나게 채워 왔다. 활동 기간 동안 울림엔터테인먼트가 아쉽게 한 점도 있지만, 음악에서만큼은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신경을 써 왔다고 생각해서 이들의 모든 곡이 다 좋고 소중하다. 

 

러블리즈의 이야기들은 판타지와 현실의 감정에 발을 걸친 채로 마지막까지 다소 슬프게 끝맺어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다. 보면 웃음만 나오는 해사한 에너지의 그룹이 있는가 하면 러블리즈는 보면 먹먹해진다는 감성의 면에서 너무 독보적이다. 이 마이너함 때문에 모로 가도 러블리즈는 청순 걸그룹의 대명사가 될 수는 없었던 운명이었겠지만... 바로 그거 때문에 러블리즈가 좋은 걸 어떡하라고ㅠ

 

 

 

 

 


 

Chapter 4. 울지 마, 난 아주 오래도록 소중히 할 테니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우리 (Beautiful Days) (2019)

 

아무튼 2021년으로 돌아와서...

 

7년의 활동 기간이 지났고, 더 이상 울림엔터테인먼트에서 계약을 연장하여 그룹을 이어나가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K팝 아이돌에게 7년의 만기는 현실을 마주하는 기점이고, 그런 점에서 많은 것들을 고려해 그렇게 결정되었겠지만, 아쉽지 않을 수는 없다. 일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들이 러블리즈란 그룹에 너무 잘 어울리고, 또 그룹에 대한 애정도 많아 보였기 때문에(애정 없는 멤버는 없는 거 알지만... 네) 더욱 그렇다. 또 정규앨범으로 나올 곡들을 다 녹음해 놓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분명 마지막 앨범 느낌으로 너무 예쁘게 모았을 그 노래들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서 슬프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 특히 러블리즈의 Mnet <퀸덤> 출연 시기 근방으로 한 후반부 플랜이 너무 루즈하게 느껴졌던 점도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뭐 어떻게 하나... 사실 재계약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그 앨범만 발매해 줬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었을까 싶다. '지금 이대로' 가사처럼, 같이 만들었던 테두리 끝에서 우린 서로 다른 시작을 꿈꿨네... 

 

 

 

러블리즈가 지나갈 때 K팝에서 지나가는 것들

 

짝사랑과 이별의 비애, 흩날리는 꽃잎 같은 섬세한 이야기들은 이제 K팝 신에서 흘러 지나가고 있다. 꼭 러블리즈가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방향성에서 '전력으로 노래하는' 거의 마지막 팀은 러블리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컨셉의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아마 이건 돌지 않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해외 시장에서 비선호하는 컨셉이란 것은, 이미 내수 시장과 대중성의 고려가 낮아진 K팝에서 약점이 된다. 세계 시장으로의 변화가 개입했단 건, 과거 걸그룹들에 청순 컨셉과 섹시 컨셉이 번갈아 가며 유행했던 시기의 성공 원리와는 전혀 다른 국면이 제시되었음을 말한다. 청순 붐은 아마 오지 않을 거다. 만약 온다고 한다면, 그건 청순의 성공이라기보다는 레트로의 성공에 가까운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돌이켜 보면, 단지 이런 컨셉이 나온다고 다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냥 러블리즈의 회사가 한 번 잘 만든 작품이 좋았던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러블리즈가 더 좋고 이 순간이 더 아쉽다. 

 

 

 

 

 


 

 

아무튼 이러한 모든 나의 추억과 이유들로 인해

나에게 러블리즈가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 좋았고, 

엄청난 반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했던 한 시기의 감성을 대표했었고, 

시간이 지나도 빛이 날 만한 가볍지 않은 정교함이 있었으며, 

어쨌든간에 나와 수많은 누군가들에게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수고했다,,,

안녕 이제는 뒤돌아가 내일 만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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