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4. 00:17ㆍk-pop review & essay
조유리의 솔로 데뷔곡이다. 'GLASSY'라는 곡명은 '유리 같은'이라는 뜻의 영단어로, 조유리의 이름에서 따와 시작한 듯한 제목이다. 공식 보도에 따르면 소속사에서는 이 단어를 '유리스럽다'고 재해석해서, 조유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말로 이 앨범의 방향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리라고 하는 이 테마는 여러 측면에서 너무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리뷰 전체에서 이 이야기를 계속 하려고 한다.
막연히 조유리 솔로를 상상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앉아서 기타를 치고 발라드나 어쿠스틱한 노래를 부르는 것밖에 없었는데, 그런 장르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지라 솔로가 처음 나왔다고 했을 때 노래를 듣지 않았었다. 근데 한번은 우연히 이 'GLASSY'를 조유리 노래인지도 모르고 들어버렸고, 너무 좋아서 리뷰까지 써버리고 있다. 그리고 이전까지 나에게 조유리는 크게 관심 가던 멤버는 아니었는데, 이 노래 때문에 얼렁뚱땅 조유리도 조금 좋아하게 돼버린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GLASSY' 얘기 시작한다.
─ 제목부터 'GLASSY'인 이 노래는 조유리의 매력만 투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에 너무 적절하다. 멜로디가 과한 부분도, 약한 부분도 없이 딱 쏙쏙 박히는 부분만 남겨져서 좋은데, 또 그냥 단순하지만 않은 점도 좋다. 가장 포인트인 부분은 쉽고 달콤한 크로매틱 멜로디다. 아이스크림 CM송을 연상케 하는 이 부분은 중독성도 있지만, 프리즘에 빛이 통과하듯 신비한 느낌도 주며 유리라는 테마를 감각적으로 살린다.
도입부터 후렴 전까지의 멜로디는 안정적인 음역 내에서 편안하게 흐르는 동시에, 곳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가는 리듬 포인트가 톡톡 튀기도 한다. 후렴에서도 첫 소절을 고음의 정박으로 집어주는 점을 제외하면 엄청난 폭발력은 없도록 이어지는데, 그게 아쉽지가 않고 듣기 즐겁다. 고저차에서의 다이나믹함은 적은 대신, 리듬꼴을 다양하게 쓰며 산뜻한 스릴이 있는 곡이 되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발랄한 멜로디에 조유리의 특색인 허스키 보컬이 어울리는 점도 포인트다. 곡의 주인이 하이톤 음색이었다면 아쉬웠을 만큼, 이 러블리하고 미니멀한 골자 속에 스모키한 보컬이 들어찰 때 비로소 입체감 있는 맛이 완성되는 곡이다.
보컬 표현은 변주가 딱히 없어서 단조로운 면도 있지만, 사실 이건 조유리에게 곡 전체가 무난한 음역이라 음색에서 표면적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지, 감정 표현을 하는 창법의 강약 차이는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프리코러스인 '여전히 난 어려워 (~)' 파트의 경우 멜로디상 호흡을 짧게 튕기며 샤프하게 부를 수도 있지만, 공기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풀어낸 점이 예상을 벗어나면서도 따뜻하게 감긴다. 또 벌스의 '살짝 살짝', '째깍 째깍' 같은 애교스러운 포인트를 허스키한 목소리가 살리는 점도 포근하고 너무 좋다...
─ 사운드는 보컬에 집중되도록 간결하게 구성되었지만, 간결한 만큼 곡을 잘 표현하는 필수적인 소리들로만 이루어져 멜로디와의 예쁜 조화를 만든다. 귀에 들어오는 것들에는, 사뿐하게 움직이는 피치카토와 건반, 유리알 플럭 소리와 보컬찹 등이 있다. 이들 악기는 촉촉하고 투명한 소리들로 'GLASSY'란 테마에 가장 잘 어울리지만, 또 구름 위를 걷는 듯 긴장감 있는 분위기도 조성하도록 배치됐다. 사운드 면에서 가장 클라이막스는 후렴의 '시작해 My baby' 파트인데, 기타를 중심으로 고조되지만 베이스 무빙은 하강하며 독특한 고점을 찍어주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 안무는 또각또각 잡혀 있는 박자를 꼭꼭 씹어주는 맛이 제대로 표현되어서 아기자기하고 너무 좋다. 조유리 자체도 춤을 쪼(?) 없이 깔끔하고 가볍게 추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런 안무와 잘 어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마음에 들지만, 그 중에서도 아래 후렴 안무가 제일 예뻐서 짤로 만들어 보았다. 전체 안무 영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무대 링크(click)로 연결했다.
─ 가사는 그렇게 수줍지도 않고 뻔뻔하지도 않게, 아티스트에 어울리는 딱 적당한 태도로 꿈과 설렘과 이야기한다. 여기에 스타일링도 인형처럼 꾸민 것이 곡과 아티스트 모두에 너무 잘 어울린다. 턴 동작을 할 때 예쁘게 움직이는 쇼트드레스나 헤어 리본 같은 것들이 노래의 감성을 더 반짝반짝하게 꾸며주고 있다.
사실 가사의 경우, 배경이나 상황 설명이 없이 거의 모호한 감정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그렇다면 가사 콘셉트가 더 직관적이었으면 이해가 더 잘 되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예를 들어, 'GLASSY'가 아니라 '유리구두'였다면 나머지 가사 내용이 훨씬 와닿음). 하지만 막상 실제 수정 전 제목이 '유리구두(Glass shoes)'였다는 썰을 들은 뒤엔 오히려 지금 제목을 맞게 잘 지은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화사하게 예쁘게 다 꾸며 놓고, 그게 신데렐라를 연상시켰다면 화자의 매력은 조금 떨어졌을 것이다. 일단 곡에 은근한 컨셉추얼함이 있어서, 유리구두 같은 직접적인 키워드까지 끼얹기보다는 'GLASSY' 같은 담백한 제목을 붙인 것이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행보에 더 어울린다. 또한 소재는 비슷하지만, '유리'가 외부 오브제가 아닌 화자 그 자체인 것으로 수정된 것이, 아티스트의 이름과도 만나면서 너무 센스있는 선택이 되었다.
'GLASSY'는 기획 의도에 잘 맞아떨어지게, 그냥 투명하게 드러난 조유리 자체를 보는 게 너무 즐겁도록 하는 노래와 무대다. 유리라는 테마로 어떤 색도 칠할 수 있는 투명함을 노래하겠다는 의도로 시작하여, 곡에서 아티스트의 매력이 오버스러움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면서 완성이 되었다. 말 그대로 조유리가 그냥 너무 귀엽고 잘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3분이 부족하게 만든 깔끔한 노래인 것이다.
솔로로서 이러한 첫 시작이 의미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조유리가 그룹 출신이고 또 그 그룹에서 어떤 포지션이었는지에 대한 것도 있다. 아이즈원의 메인보컬이었지만, 사실 아이즈원에서는 콘셉트 특성상 상큼한 하이톤 보컬 멤버들에게 주된 가창 파트가 우선적으로 주어지고, 고음에 능하고 안정적인 보이스인 조유리는 2순위로 돋보이는 파트 또는 고음셔틀(?) 역할을 주로 맡게 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또 만약 그런 점은 괜찮았다고 하더라도, 여느 다인조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서브보컬을 담당하는 멤버들이 바글바글한 12인조 팀의 메인보컬은, 보여줄 수 있는 음역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수록곡이나 커버 무대로 발라드를 많이 보여주기도 했지만, 사실 발라드보다는 아이돌팝에서 돋보여야 할 인재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으로 아쉬움이 가시지는 않는다.
'GLASSY'에서는 위처럼 '가창력 뛰어난 메인보컬', '감성 발라드' 같은 면모로 인식되던 조유리의 보컬을 완전히 다르게 쓰며, 오로지 발랄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3분을 다 쓴다. 그룹 활동 때도 볼 수 있었듯 조유리는 고음역 소화에도 어려움 없지만, 이 곡에서는 그 스펙트럼을 다 쓰지 않고 아끼고 있다. 화려한 고음과 감정을 호소하는 발라드가 아니어도, 그냥 가볍고 러블리하기만 한 노래로도 충분히 매력을 채워내는 아티스트이자 아이돌 그 자체임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곡조에서 아이즈원의 색깔을 의식한 듯한 신비감이 있는데, 또 동시에 그것에 매몰되지는 않고 자극을 뺀 적절한 감성으로, 팬들의 갈증과 시작의 새로움 모두를 잡고 있다. 사실 지금도 솔로보다 그룹이 더 어울리는 멤버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런 행보라면 솔로라도 계속 찾아 보고 싶다.
이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는 조유리라는 멤버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이 날(click)은 좀 귀엽다고 생각했음), 그냥 내가 알던 이미지대로 발라드로 뻔하게 데뷔했다면 데뷔 소식에 관심 가질 일도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GLASSY'란 곡 속의 모습이 너무 좋아서, 이제부터 관심을 가져 보고 싶다. 시작점이 이보다 괜찮을 수 있을까? 임팩트는 덜하더라도, 올라갈 데만 남은 듯한 설레고 희망적인 노래라서 좋다. 아티스트에 대한 고민을 담아 소중하게 세공한 이 유리알 같은 노래가 너무 듣기 좋다. 그리고 조유리 귀엽다. 리뷰를 쓴 이유는 그게 다다.
#토비레코드: 주로 K팝 얘기하는 블로그 [ rtbs.tistory.com ]
'k-pop review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블리즈와 함께 흘러 지나가는 한 시대의 향기 (0) | 2021.11.12 |
---|---|
열기보다 강한 온기, 세븐틴 'Rock with you' & 미니9집 앨범 [Attacca] 리뷰 (0) | 2021.10.31 |
세이렌의 소리가 부르는 사이버 던전 - 에스파 미니1집 앨범 [Savage] 리뷰 (2) | 2021.10.10 |
FEVER vs ICE: 여름 앨범 추천 리뷰 (2) 무더위의 낭만, 레드벨벳 [The Red Summer] (0) | 2021.10.04 |
세븐틴이 물들인 2016 올해의 색: 데뷔 3연작 '아낀다-만세-예쁘다' 리뷰 (0) | 2021.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