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차가울수록 더 반짝이는 아이러니, 태연 [INVU - The 3rd Album] 정규3집 앨범 리뷰

2022. 3. 19. 23:38k-pop review & essay

 

태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한 여자아이돌이기에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때는 2008년, 나는 처음으로 B모 남자 그룹을 통해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다른 아이돌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T모 그룹의 초대형 히트곡 '미로틱'이 이즈음에 나왔는데도, 나는 이 노래를 실시간으로 들은 기억이 없을 정도다. 

 

그러던 중, 당시 소녀시대 팬이었던 친구가 소녀시대 멤버들의 프로필 사진을 이메일(ㅋㅋ)로 보내주게 되면서 멤버들을 한 명씩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태연의 사진을 보고 너무 예뻐서 충격을 받았던 거다. 

 

이 사진이었음

 

정확히 말하자면, 예쁜 건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보는 생김새 유형(?)을 보게 된 충격이 더 컸다.

그래서 '아이돌이란 이런 거구나...' 라고 느끼며 태연 팬이 됐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아이돌이란 이런 거라고? 

아니... 

 

태연 같은 아이돌은 또 없다.

 

 

 

 

 

 

 

아프고 차가울수록 더 반짝이는 아이러니, 태연 [INVU - The 3rd Album] 앨범 리뷰

 

[정규] INVU - The 3rd Album (2022.02)

 

01 INVU [★★]
02 그런 밤 (Some Nights) [★★]
03 Can't Control Myself  [★]
04 Set Myself On Fire
05 어른아이 (Toddler) [★]
06 Siren [★★]
07 Cold As Hell [★★]
08 Timeless [★★]
09 품 (Heart)
10 No Love Again [★★]
11 You Better Not [★★]
12 Weekend
13 Ending Credits [★★]

*앨범 리뷰의 별점은 [ ], [★], [★★]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INVU] 앨범의 개별곡들의 느낌은 기존의 태연의 음악 색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앨범이 보여주는 색깔은 이전의 앨범들에서보다 서늘하고 그늘지다. 전체적으로 태연 솔로 특유의 담담하고 절제된 감정선을 기반으로, 차가운 색채의 팔레트를 다양하게 들려주고 있는 앨범이다. 물론 따뜻한 정서의 곡들도 포함돼 있는데, 주로 후반부에 배치됨으로써 이 앨범이 주요하게 내세우는 냉소적인 성격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한다. 스토리라인상으로는 상처와 아픔을 겪는 화자가 극복을 하는 과정으로서의 존재감을 가지기도 한다. 이렇듯 이 앨범의 곡들은 개별곡 단위로도 완성도를 보여주고, 전체 속 구성품으로서의 존재로 서로에게 힘을 받쳐주고 있기도 하다. 이 앨범의 이야기들은 마치 영화 주인공을 화자로 한 플롯처럼, 연결적이고 또 완결적이다. 

 

날 버리고, 날 잃을수록
넌 반짝이는 아이러니 -INVU

 

 

첫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INVU'는 차가운 앰비언스와 하우스 리듬, 플룻 사운드 등으로 몽롱한 분위기를 그리는 댄스곡이다. 긴장된 공간감 속에서 태연의 백보컬은 겹겹이 쌓인 채 오로라처럼 계속 흐르는 듯하며 이러한 분위기 연출을 함께하고 있다. 고요한 편곡과 단순한 코드 진행은 곡의 잠잠한 한 면을 유지하는 한편, 보컬이 표현하는 스토리라인은 입체적이고 감정적이다. 가사에서는 언뜻 서로 어울리지 않는 '해탈'과 '처절함'의 정서가 이 차가운 곡조 속에 함께 얼어붙어서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또한 '히스테릭한 저자세'라는 다소 모순적인 화자의 태도는 이 곡의 성격을 더더욱 오묘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한방으로 이 모든 감정의 뒤섞임을 'INVU (I envy you)'라는 단 4음절에 실어서 가장 꽉 차고 캐치한 한 마디를 시니컬하게 던지는데, 이 임팩트는 어느 구구절절한 호소보다도 뼈가 있게 느껴진다. 앨범명과 동명이기도 한 만큼 이 곡은 [INVU] 앨범이 전달하는 음악 색과 정서를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싸늘한 음악에 끼얹히는 태연의 보컬이, 뜨거우리만치 몰입적인 음색으로 차게 식은 감정선을 담아냈기에, 이 묘한 곡은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더 환히 웃어도 슬퍼, 네 옆에 있어도 멀어
어떻게 해야 너를 잡을 수 있을까
Should I set myself on fire -Set Myself On Fire

 

 

'그런 밤 (Some Nights)'은 곡 구성이 잘 구분되지 않을 만큼 고요하지만, 차분함과 차오름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감정선을 품은 노래다. 고조되는 듯 차분하게 떨어지는 후렴구 멜로디가 너무 좋고, 특히 후반부 가성과 고음을 오갈 때 태연의 보컬이 너무나 호소적으로 강렬하다. 'Can't Control Myself'는 뜨거운 록 사운드가 내적인 폭발력을 표현하는 동시에, 보컬은 사운드가 고조되든 떨어지든 담담한 힘을 유지한다는 매력이 있는 곡이다. '비참하고, 바닥나고, 헛도는' 등의 직접적인 가사들은 이 담담함을 더욱 저리게 한다. 'Set Myself On Fire' 역시 절제된 보컬 표현을 하지만, 자기 희생적인 가사를 동반함으로써 이 앨범의 화자가 가지는 사랑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렇게 기-승에 해당하는 감정이 끌어올려지는 중간에, 베이스에 힘이 들어가고 리듬감을 챙기는 곡인 '어른아이 (Toddler)'는 아직 아이처럼 해피엔딩을 꿈꾼다는 화자의 성격을 그리며 이 앨범의 감정 풍부한 캐릭터를 뒷받침한다. 

 

앨범에서 가장 폭발적인 구간은 6-7번 트랙인 'Siren'과 'Cold As Hell'이 이어지는 부분이다. 'Siren'은 불을 지른 듯 뜨겁게 사랑의 순간을 표현하지만, 가장 극적으로 포인트가 되는 사이렌 소리는 이 사랑에 위태로운 속성도 부여한다. 그 와중에 보컬은 무심해서 집착적이고 조금 무서운(?) 효과도 연출된다. 그리고 불에서 갑자기 'hell'로 떨어지는 'Cold As Hell'로 이어지는데, 판타지한 앰비언스와 차가운 오르간 소리 같은 것들이 만드는 분위기가 타이틀곡 'INVU'의 정서를 좀 더 날카롭게 표현한 곡인 듯하다. 전 트랙에서 약간의 새비지스러웠던(?) 부분이 이 곡에서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는데, 불안정한 느낌의 브레이크와 신경질적인 보컬 표현 등이 그 포인트가 되고 있다. 

 

혹시나 했어, 특별해 보이길래
모른 척 나도 네 손을 잡아 봤고
역시나 같아, 더 많이 아픈 건 나란 걸 -No Love Again

 

 

이러한 정서는 8번 트랙부터 전환되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봄이 온 것처럼 밝게 벅차는 'Timeless'에서는, 그전 트랙들까지의 폭발력이 아름답고 따뜻한 쪽으로 발산된다. 미니멀한 기타 사운드로 차분하게 시작되었다가 희망적으로 고조되는 '품 (Heart)'은 마치 음악 영화의 후반부 곡처럼, 이 모든 혼란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듯하다. 그리고 레트로팝 느낌의 밝은 리듬감이 돋보이는 'No Love Again'은 상큼한 멜로디에 담은 독립적인 정서의 가사가 화자의 태도가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야기의 결론에 해당하는 이 부분은 'You Better Not'으로 이어지면서 밝게 변화한 톤과 멜로디로 초반부 정서를 산뜻하게 떠나 보내고, 그 다음 트랙인 선공개 싱글 'Weekend'가 자칫 앨범과 어우러지지 않았을지 모르는 위험 요소를 제하며 깔끔하게 접합한다. 그리고 엔딩 트랙인 'Ending Credits'가 정말로 앨범을 마무리하면서, 초반부의 차가움과 이를 이겨낸 후반부의 따뜻함을 동시에 품고 막을 내린다. 특히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신스 인스트와 북소리 같은 요소들이 엔딩크레딧이라는 제목과 이 곡의 역할에 매우 잘 어울린다. 'INVU'를 설명할 때 화자의 태도를 '히스테릭한 저자세'로 설명했는데,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완연하게 '안정적인 고자세(?)'로 아픔을 극복했다는 결론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앨범의 드라마틱한 흐름은 이렇게 의도적인 곡조의 배치와 보컬 표현의 변화를 통해 전개되되, 서사적인 연결성과 예민하게 집중된 보컬의 호소력으로 청자를 이끌고 간다. 

 

 

 


 

여기까지 앨범 자체에 대한 설명과 감상이었다면, 개별곡 구성 외적인 면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2가지 있다. 첫째는 시각 연출이고, 둘째는 가수의 역량이다. 

 

먼저, 'INVU'의 뮤직비디오와 비주얼 디렉팅은 이 앨범의 시니컬한 성격을 독특하게 부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 속 여신 아르테미스를 연상케 하고 온갖 빛나는 시각 요소들로 무장한 이번 활동 비주얼은, 역대 태연의 솔로 앨범 활동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것에 대해서는 곡의 정서와 어울리는지 의문이 든다는 감상과, 아티스트 자체와 잘 어울리고 시각적으로 즐겁다는 감상 등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중 나는 두 곳 모두에 걸쳐 있는 생각으로 이를 평가한다. 

 

아픈 것치곤 너무 화려하다. 

하지만 화려하기에 더욱 아프다. 

 

어울리지 않는 듯한 모순성이 있지만, 이 모순은 드라마의 일부다. 마치 선공개 싱글 'Can't Control Myself' 뮤직비디오에서 스타 연극배우를 연기하는 태연이 더욱 아프고 비참하게 느껴지는 효과의 연출과도 비슷하다. 

 

신화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인지하는 선에서, 아르테미스는 상처받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아르테미스의 얼굴로 연기하는 [INVU]의 이야기는 더욱 강한 인물을 약하게 무너뜨림으로써 파도치는 서정성이 된다. 뮤직비디오 속 찬바람만 휘돌 것 같은 신전 속에서, 태연이 던지는 "INVU"는 더더욱 차갑게, 마찰도 없이 공간을 맴도는 듯하다. 

 

이 곡과 이 앨범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두 인물의 감정의 온도차로부터 냉각된 결과물이며, 이 온도의 차이는 여신 캐릭터를 차용함으로써 화자의 내부 자체에서도 선명하게 작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My Voice]와 같이 화창한 감성인 태연의 앨범이 선호에 더 가깝지만, 해당 앨범에서 여신 이미지를 썼을 때 똑같이 좋았을 것이라는 확신은 안 든다. 언제든 태연을 여신으로 만드는 건 쉽지만, [INVU]에서 그렇게 연출하기로 택한 것은, 다른 정서의 앨범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효과, 다른 설득력을 의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프고 차가울수록 더 반짝이고, 반짝일수록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 아이러니가 그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예쁘다. (!)

 

 

 


 

그러니까... 잘 만든 곡으로 구성된, 잘 만든 앨범이다. 모든 게 좋은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INVU'와 [INVU]는 특별한가? 

 

다시 이 앨범을 돌아봤을 때, 각 곡의 퀄리티가 매우 뛰어난 것과 별개로, 그렇게 명확한 콘셉트를 가지고 기획됐는지, 개성적인지, 도전적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INVU]를 특별하게 빛내는 것은 태연의 퍼포먼싱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앨범의 곳곳에서는 유별나게 빌딩한 개성이 두드러지기보다는 팝적인 색깔과 세계적으로 트렌디한 요소가 더 잘 들린다. 그럼에도 화자의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나 영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한 목소리로 장장 13개 트랙에 풀어 쓴 여러 단계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앨범을 끌고 간 표현력이 있기 때문이다. 'Can't Control Myself' 뮤직비디오를 감상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더더욱 이 앨범 자체가 1인극 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돌'이란 건, 매력과 재능을 매개로 해서 남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소화해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물론 아이돌이 아니라 가수나 배우, 연예인으로 넓혀 볼 수도 있는 말이지만, 아이돌의 역할을 설명할 때 역시 이 점이 가장 본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소녀시대 'Gee'는 태연이 부르기 싫어서 울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잘해버려서 성공했다. 태연은 솔로곡 '사계 (Four Seasons)'에 공감이 안 되었다고 표했지만 결국 그를 해석해내는 자신의 길을 찾았고 또 대중적으로 만들어냈다. 어떤 아이돌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를 물을 때 나는 이런 소화력의 영역에서 떠올리게 된다. 꼭두각시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작품을 하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자기 매력이 묻어나게 가공할 줄 아는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난 이게 곧 아티스트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태연은 이런 개념으로서의 아이돌로서 완벽하다. 역대 걸그룹 중에서 가장 다양한 콘셉트를 가장 스타성 있게 소화한 소녀시대로서의 활동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이 앨범만 보더라도, 자전적이기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수수한 이야기인 것들에 자기 이야기처럼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100% 이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 하려는 이야기에 따라 목소리를 바꾸기도 하지만, 그렇게 분화된 여러 감정들에는 태연 자체의 묵직하면서도 따스한 색깔도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 번에 또다른 여자 솔로 가수 앨범 리뷰를 쓰면서 그녀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잘 풀어내서 최고라고 말했었는데, 태연은 이와는 다른 방면에서 압도적인 아티스트다. 

 

이 얘기가 결코 태연의 앨범에서 태연의 주체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 앨범에서 태연이 가사를 쓰기도 하고 타이틀곡 선정에도 참여했던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을 표현하는 일도 멋지지만 인간 존재를 공감되게 표현하는 일도 너무나 어렵고, 그걸 잘 이뤄내는 건 좋은 곡이 주어진다고 해서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태연과 비슷한 세대, 비슷한 포지션인 어떤 아이돌을 (또는 아이돌 전체를) 보더라도, 지금의 태연과 같이 해내고 다채로운 디스코그래피를 쌓아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개념을 정의하는 건 사람마다 상이하겠지만, 적어도 내겐 이게 찐아이돌이고 찐아티스트다. 

 

아무튼 그래서 이 앨범의 감상의 결론은, 처음에 태연이란 가수를 떠올리고 들었던 생각과 똑같이 마무리지을 수 있겠다. 

 

이게 바로 아이돌이다. 하지만 태연 같은 아이돌은 또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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