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5. 19:55ㆍk-pop review & essay
상상의 바다, 돌아가는 바람개비, 봉숭아 물 같은 것들을 노래하고
별자리와 사슴 뿔을 아이템으로 빌려오는,
그런 싱그러운 목소리의 걸그룹 오마이걸을 얘기하면서,
그들의 청량한 SS 시즌송들 중에서도 가장 초록빛에 가까운 두 앨범인
[NONSTOP] (2020.04 / 살짝 설렜어)과 [Dear OHMYGIRL] (2021.05 / 던던댄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또한,
오마이걸의 동화적 정체성을 표상하는 멤버인
유아를 주인공으로 한 진초록빛 무대 [Bon Voyage]가 있다.
유아(오마이걸) '숲의 아이' & [Bon Voyage] 리뷰
: 초록빛 세상의 끝으로 나를 찾아서
01 숲의 아이 (Bon voyage) [★★]
02 날 찾아서 (Far)
03 Diver [★]
04 자각몽 (Abracadabra)
05 End Of Story [★]
*앨범 리뷰의 별점은 [ ], [★], [★★]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Artist ]
곡과 앨범을 리뷰하기에 앞서, 아티스트를 소개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유아 자체의 특성과 팀 내에서의 역할이 이 곡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유아는 아이돌로서 정말 특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아이돌 누구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안 드는 목소리와 춤 스타일로, 스스로 노래와 퍼포먼스의 맛을 입혀내는 능력이 있다. 또 만화 캐릭터나 비인간류 말고는 닮은 것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개성적인 외모와 요정 같은 신체 비율은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갖는다. 그런 유아의 이미지는 뛰어난 표현력과 만나, 몽롱하고 아련한 콘셉트로 발산되기도 하고, 러블리하게 통통 튀는 표현과도 조화롭다.
몽환적으로 공명하는 음색은 맑은 느낌과 무게감을 동시에 지녀서, 자신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쪽으로 개성을 발산하다. 춤 스타일은 힘이 강하면서도 선이 부드럽고, 정확성이 좋다 못해 자신만의 해석력으로 사소한 디테일을 창조하기까지 한다.
그런 자기 자신을 대하는 유아의 태도도 어딘가 모르게 외적 매력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아끼지 않으면서도 퍼포먼싱에 몰입도가 높아 무대와 완벽한 합일을 만들어낸다. 동화적 콘셉트를 표방하는 오마이걸에서 그런 유아의 존재는 상징적이다.
[ Album ]
아이돌 그룹의 솔로나 유닛 기획은 보통 공격적이다. 그룹의 이미지를 심하게 답습하지 않고 또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방향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아의 솔로 데뷔는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소식이었다. 혼자 무대를 채울 역량이 있어서 솔로 앨범이 궁금했던 한편, 오마이걸의 색깔 안에서 부족함 없이 빛나고 또 오마이걸의 콘셉트를 빛내주는 역할인 멤버이기도 하기에, 기존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게 된다면 굉장히 아쉬울 것 같은 염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가 평소 아티스트의 매력을 잘 돋보이게 한다고 느껴 왔기에, 유아와 어울리는 것을 비슷하게는 표현할 것이라는 기대를 약간은 걸었다. 그런데 앨범이 발매되고 보니, 그 표현이 기대보다도 훨씬 더 명확하고 원초적(?)이었다는 점에서, 아티스트에 대한 회사의 해석이 재미있으면서도 그 심도에 놀랐다. 화려한 겉치레 없이 자연스러움을 보여주기만 해도 성공적이라 생각했는데, 아예 대자연 속에 녹일 것이라고까지는 생각 못 했다. 파워풀한 가창력 자랑도, 유아가 잘하는 힙합 댄스 브레이크도, 반전의 이미지 변신도 없지만 아쉽지가 않은, 유아 그 자체의 표현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듯 [Bon Voyage]의 기획은 기존에 표방하던 사랑스러운 소녀나 신비한 요정 콘셉트를 넘어서, 들으면 피톤치드가 나올 것 같은 정도의 자연친화성과 청쾌함을 내세운다. 또한 앨범 설명에 의해 [Bon Voyage]에 '세계관'이 존재한다고 밝혀진 바, 해당 앨범 활동으로 유아가 구축할 캐릭터를 전 앨범에 걸치는 서사를 통해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리뷰는 이 의도를 어떻게 음악 및 자아에 관한 스토리에 풀어내고 있는지가 주된 관심이며, 이를 퍼포먼스와 비주얼로 선사하는 방법 역시 다루려 힌다. 또 유아의 솔로 앨범이 오마이걸의 기존 색깔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며, 그들 사이의 연속성 또한 이해해보고 싶다. (논문 같네...)
01 숲의 아이
텅 빈 공간에 물방울 파형처럼 퍼지는 플럭 사운드, 자연물이 마찰하는 듯한 드럼 질감, 경쾌한 휘파람을 닮은 피리 소리는 숲이라는 키워드 아래 이질감 없이 하나가 된다.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는 멜로디도 매우 시네마틱한데, 명랑하면서도 긴장된 유아의 표현력과 만나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몰입도가 끌어 올려진다.
곡 구성은 후렴의 후반부를 최고점으로 벅차오르다가 차분해지기를 반복하며, 거세게 몰아치는 부분 없이 평이한 편이다. 마치 디즈니 공주 이야기의 오프닝곡처럼, 캐릭터가 막 자유를 얻은 순간의 순수한 생기가 드러나는 특징이다. 구성에서 다소 특이한 부분은, 1절 후렴에서 포스트코러스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2절 후렴에서는 바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안무의 차이로 더욱 잘 표현되기에 이를 다루는 부분에서 후술한다.
한편 1절에 비해 2절에서 더해지는 드럼과 백보컬은, 숲이 익숙해지는 화자에게 숲속 생명들이 조금씩 모여들고 있는 연출처럼 느껴진다. 특히 1절 프리코러스에서 천천히 땅을 밟아 나가는 유아의 목소리가 홀로 울린다면, 2절에서는 낯선 생명체의 응답이 메아리치는 듯한 코러스가 등장하여 빈 공간을 둘러싸주는 점이 곡의 입체성을 더한다. 그러다가 감정의 하이라이트를 찍어야 할 브릿지 없이 다소 갑작스럽게 마무리됨으로써, 잔잔하게 그 숲에 이끌렸다 빠져나가는 듯한 여운이 남는다.
“
어느 날 난 조금 낯선 곳에 눈을 떴지
온몸엔 부드러운 털이 자라나고 머리엔 반짝이는 뿔이 돋아나는 그런 곳 이상한 곳
들어봐 고운 새들의 저 노랫소리
느껴봐 맨발에 닿는 풀의 싱그러움
지금 난 태어나서 가장 자유로운 춤을 춰 난 춤을 춰
나는 찾아가려 해 신비로운 꿈
멀리 세상 저편에 날 기다리는 숲
”
또한 가사는 이 사운드의 표현 방식을 그대로 언어로 읽어내 이입을 돕는다. 낯섦과 호기심이 뒤얽힌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꺼내보는 첫 소절이 귀에 닿으면, 듣는 이도 함께 신비한 세계 한가운데에 떨어진다. '새 소리, 발의 감촉' 등 오감을 터놓고, 또 '서로 눈을 맞추고, 나무에게 길을 물으며' 숲과 친해지는 화자는 '태어나서 가장 자유로운' 순간을 만끽한다. 이는 '나다운 게 무엇인지' 알고 싶고, '신비로운 꿈'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화자가 바라 온 특별한 경험이다.
곡의 프로듀서 팀은 창작 의도를 설명할 때 'organic'이라는 표현을 썼는데(라이언 전 인터뷰), 이들이 리스너와 함께하고자 한 청쾌한 분위기가 음악 그 자체를 통해 생생히 전달된다. 사실 아무리 청초한 느낌으로 만든 걸그룹 곡이라도, '맨발에 닿는 풀의 싱그러움' 같이 극도로 자연친화적인 노랫말을 그대로 써넣기엔 위화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가사를 여과없이 채워 넣어도 당연하게 달라붙어 리스너를 설득할 수 있는 깨끗한 소리들로 이루어진 노래가 '숲의 아이'다.
[ Performance ]
안무는 화자가 숲과 교감하며 하나가 되어 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안무 동작 자체는 무용 같은 선이 주가 되어, 자연의 곡선미의 표현과 잘 어우러진다. 또 그 안에서도 유려하게 풀어내는 구간과 각 잡힌 힘을 필요로 하는 구간이 모두 있어 유아의 스펙트럼이 잘 드러난다. 특히 이러한 안무는 손발끝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유아의 연기력과 만날 때 곡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데 최적화된다. 또한 댄서를 활용하여 곡의 공간적 배경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최영준 안무가의 해설에 따르면 댄서는 숲의 요정이 되어 유아와 어울리기도 하고, 나무와 바위 같은 자연물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움직임을 통해, 유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숲과 친밀해지는 스토리가 연출된다.
앞서 언급하였듯 이 곡의 후렴구는 1절과 2절이 다르다. 1절의 경우 유아의 목소리가 빠진 합창 코러스가 웅장한 현장감을 자아낸 뒤 후반부에 다시 유아가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2절은 합창 구간 없이 바로 유아의 파트가 등장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구간이 가사 없이 숲의 무드를 전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분위기가 유사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곡만 들을 때는 변화가 귀에 튀게 포착되지 않는다. 대신 그 차이는 무대를 볼 때 명확한 퍼포먼스의 변화로 드러난다. 1절에 합창 코러스와 함께 댄서들이 모두 동원되어 힘이 들어간 군무를 맞춘다면, 2절에서는 유아가 자신의 목소리에 맞추어 현대무용 스타일의 독무를 선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는 반복이 많고 감정선이 평탄한 곡의 구성에 무대를 감상하는 재미를 더한다.
[ Styling ]
다양한 '숲의 아이'를 표현한 의상과 헤어·메이크업 스타일링이다. 주로 누디한 파스텔톤 컬러에 길게 늘어뜨려지는 의상으로 자연 속에 어울려 있는 님프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며, 이 외에도 안데르센 동화에 나올 듯한 공주 스타일, 숲 배경의 디즈니 영화를 연상시키는 야성적 스타일 등 콘셉트에 맞는 여러 캐릭터를 연출했다. 헤어는 핑크오렌지 컬러를 유지하며, 대체로 묶지 않고 풀어 내린 상태에서 자연물을 닮은 악세사리들을 활용한 점이 엘프 같은 분위기를 강조한다.
퍼포먼스 움직임에 따라 자유롭게 나부끼는 의상과 헤어, 그리고 스트랩을 이용하거나 맨발에 가깝게 디자인한 신발은 무대 위에서 '숲'이라는 테마 하에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베스트 스타일링은, 유아가 '호두까기 인형' 발레의 사탕수수 요정(?)이라고 언급한 드레스 의상에 나비 형태의 화려한 헤드기어를 매치한 인기가요 컴백 무대(사진 좌측, 20.09.13)다. 사실 자연스러운 것도 좋지만 콘셉트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어느 정도는 반짝반짝하고 예쁜 게 나의 취향이라 가장 예뻐 보였다. (ㅎ)
[ ▼ 더보기: 수록곡 리뷰 & 스토리라인 해석 ]
02 날 찾아서 (Far)
“
get in the car 도시의 빛을 뒤로해 그럼 이만 안녕히
get in the car 내 맘은 이미 California 빨간 차의 이방인
멀리서 밤새 날 부르던 파도 소리
down in the deep
down in the down in 날 찾아서
”
따스하지만 습하리만치 촉촉한 '숲의 아이'에서 넘어온 2번 트랙은, 비교적 차가운 사운드가 시원하면서도 공허하다. 이와 결을 함께하는 가사는 이곳을 떠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며, 유아의 목소리는 '숲의 아이'에서와 다르게 현실에 무심한 태도를 연기하며 노랫말을 툭툭 던진다. 도시를 떠나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기를 원하는 화자는,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그럼 이만 안녕히'라고 단호한 인사를 하며 차에 올라탄다. '내 안의 별', '푸르른 나의 시간', '비밀과 자유'에 대한 화자의 갈망은 신스 사운드에 녹아 'down in the deep'이라는 노랫말과 함께 폭포 치듯 자유낙하를 한다.
03 Diver
“
잘 봐 이게 내 맘의 크기인 걸
수평선 아주 깊은 곳 아찔한 깊이
얼른 들어가서 봐 더 놀랄 테니
또 다른 세계를 찾은 것만 같아 어때
푹 빠졌지 맞아 it’s real oh
여기 끝이 너 역시 궁금하지
작은 불빛 없이 암흑 속에 빠진
it’s getting crazy 아무 말도 말고 you can show me
how deep how deep how deep how deep is your love for me
”
투명한 트로피컬의 금속성은 먹먹하고 둔탁한 레트로로 전환된다. 도시적인 사운드로 들었을 때, 아직은 숲에 닿지 못하고 바람을 맞으며 리드미컬하게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비교적 정제되지 않은 거친 톤으로 노래하는 유아는, 1번, 2번 트랙의 화자와는 또 다르게 입체적인 캐릭터를 드러낸다. 목적지로 향하는 탈출구를 마주한 듯한 이 곡에서의 화자는, 마냥 멀리 떠나고 싶던 불안정한 2번 트랙의 화자보다 터프하고 과감하게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다.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얼마나 깊지? (how deep is your love for me)"라고 끊임없이 물으며 깊숙한 어딘가로 가자고 반복적으로 속삭이는데, 마치 위험 앞에서 망설이는 자신의 또다른 자아를 재촉하는 것 같다. 그 과정은 '아찔하고, 정신 차릴 수 없고, 숨을 쉬기 힘들고, 위험하'지만, '멈출 수 없'기도 하다.
2번 트랙에서 의지를 다진 화자는 3번 트랙에서 내면의 고공에서 뛰어내린다. 아마 앨범 트랙이 스토리의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었다면, 이곳에서 뛰어내린 화자는 1번 트랙의 숲으로 떨어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04 자각몽 (Abracadabra)
“
다들 꿈이라고 해 금방 깨어날 거래
왜 난 혼자 생생해 그냥 즐겨볼까 해
실컷 뛰놀래 여긴 내 맘대로 돼
이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물속인데 숨을 쉬네
let me go let me go back then
여기는 너무 무채색
어제 그 밤과 different ey abracadabra
누군가에게 난 liar 눈으로 봐야만 해
이런 이야긴 동화나 만화가 딱이지
왜 현실은 차갑게 구는 건데 얼음 같은걸
”
3번 트랙에서 펑키하게 들떠 있던 사운드는 4번 트랙에서 딥하우스풍 베이스로 가라앉는다. 3번 트랙에서 명확한 청자를 두고 내리꽂혔던 유아의 목소리는 이번에는 혼잣말로 읊조려지며, 훅과 랩을 포인트로 꿈의 안팎에서 일렁거린다.
가사에서는 내내 꿈에 빠지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꿈 속 세계의 동화적 이미지와 현실 세계의 냉정함을 대비시킨다. 또 몽롱한 감성으로 중얼이는 도입부와 주문을 외는 것 같은 중독적인 후렴구가 교차되면서 현실과 꿈을 넘나든다. 주문과 함께 잠이 들면 '넓은 하늘', '탁 트인 들판' 등 자유가 있는 그 어디로든 갈 수 있지만, 깨어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꿈에서는 숲에서 바다로 가기도 한다며, '숲의 아이'에서의 이야기를 일순간 꿈 속으로 소환한다. 2번 트랙에서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욕망의 무의식은 / 3번 트랙에서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암흑 속으로 떨어지는 꿈으로 반영되고 / 그곳에서 만난 환상적인 꿈을 4번 트랙에서 도달한 상태·놓친 상태를 오가는 스토리로 해석하면, 실마리가 풀린다.
('자각몽'은 음악방송 무대가 남아 있는 커플링곡인데, 개인적으로 이 곡의 무대 스타일링은 유아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많이 보진 않았다... 대신 발매 쇼케이스 당시 타이틀곡 의상 그대로 이 곡을 선보인 무대가 있는데, '숲의 아이'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듯해서 더 마음에 든다.)
05 End Of Story
“
한때 사랑했던 건 마음에 새겨져 있어
어두움 속에도 쉬이 길을 찾을 수 있어
언젠가 좋은 날에 꼭 만나기로 해
때마침 모든 것이 완벽한 날에 it’s you it’s you
멀리서도 단번에 너를 알아볼게 it’s you it’s you
내 분주했던 걸음이 멈추는 곳 it’s you
”
꿈의 질감을 연주하던 수많은 전자 사운드들이 떠나고, 맑은 피아노 하나와 유아의 목소리만 남은 채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결국에는 환상으로부터 헤어 나오게 되었지만 그 소중한 경험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는 소망을 편지처럼 써낸 노래다. 앞선 트랙들에서 여러 심경을 방황하며 변화하던 유아의 음색은, 꿈에서 깨어나 '숲의 아이'에서와 가장 가깝게 순수한 톤으로 돌아와 있다. 긴 여정을 마치는 곡인 만큼 트랙은 오랜 여행의 짐을 풀듯 힘을 빼고 감정만이 고스란히 털어놓아진다. 그리운 '너'에 대한 마음과 재회의 희망을 노래하는 소재 자체는 독특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노래는 앨범 전체 서사의 여정을 함께 달려온 청자에게 특별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한편 이 곡은 트랙에는 힘을 풀었지만 목소리에는 풀지 않아, 유아의 음색 자체에서 호소적 매력이 강조된다. 마치 희망을 손에 꽉 쥐고 놓지 않은 듯이 모든 음절에 힘이 실려 있다. 몽환적으로 공명하는 유아 본래의 음색을 여타 곡에서처럼 공중으로 띄워 보내지 않고, 간절한 멜로디에 압축해 단단하게 노래를 부른다.
특히 첫 소절은 디즈니 캐릭터가 대사를 읊는 것처럼 투명하고 담담하지만 어딘가 울컥 넘쳐날 듯한 연기력이 느껴진다. 발라드가 유아의 통통 튀는 끼가 파도치게 범람할 수 있는 장르는 결코 아니지만, 어쩌면 그런 역동적인 유아를 절제된 한 줄 한 줄에 눌러 담아 더욱 사무치게 매력적인 곡이 되었다.
[ Bon Voyage: 초록빛 세상의 끝으로 나를 찾아서 ]
🌿 '숲의 아이'는 유아 그 자체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아티스트가 가진 독보적 개성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읽어내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인다. 이 정도로 생태적(?)인 이미지를 내세운 것은 아티스트의 소화력에 대한 전적인 의존이자 자신감이며, 그 연출 방법에서도 과감함이 돋보인다. 애초에 콘셉트 자체가 모호한 부분 없이 매우 명확한데, 음악·퍼포먼스·스타일링 모두가 아주 친절하게 안내해 주기까지 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타이틀곡은 이렇게 직관적으로 연출한 대신, 수록곡들은 디즈니나 애니메이션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고 쿨하고 담백한 장르들로 중화가 된다. 이 장르 구성은 또한 타이틀곡의 평이함을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숲의 아이' 한 곡은 평화로운 대자연을 표상하기에 격정적인 변화 없이도 그 자체로 충만한 한편, 수록곡을 통해서는 유아의 소화력의 범위와 감정의 굴곡이 아낌없이 드러난다. 이에 타이틀 단일곡을 보나 전곡을 보나, 솔로 데뷔작으로서 아티스트를 어필하는 역할에 충실한 앨범이다.
🌿 [Bon Voyage]의 스토리는 자아를 찾아 나선 유아의 여정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타이틀로 끄집어내 두괄식으로 보여준 다음, 속편이 이어지듯 나머지 부분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각 곡은 고유한 순간의 감정만 전하고 있어 메시지가 명확하고 직관적이면서도, 앨범 전체로 보면 그 직관성이 결코 가벼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가사를 중심으로 보면 한 사람의 입체적인 자아가 다섯 트랙을 유기적으로 묶고 있다. 장르 변화와 아티스트의 표현력은 트랙이 넘어갈 때마다 화자의 태도를 다면적으로 전환한다. 이렇게 기승전결은 풀어가되, 화자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마치 한 사람이 스토리텔링 하듯 일관성이 유지된다.
앨범에 반드시 이어지는 스토리나 세계관이 필요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장대한 기획 의도가 노래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없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보는 쪽이다. 대신 더 중요한 것은 앨범 전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하나의 테마다. 음악적으로 이 테마를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Bon Voyage]는 주로 가사를 활용하고 있다. 가사에 의해 다섯 곡은 각자 떠돌지 않고 한 선상에 연결되며, '숲의 아이'의 화자를 영화적 주인공으로 완성한다.
🌿 '나를 찾아서 떠난 숲의 아이'로서의 유아는, [Bon Voyage]에서 음악, 퍼포먼스, 비주얼, 스토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되었다. 종합적으로 이 앨범은, '유아만의 캐릭터'를 대중에게 명확히 제시하는 타이틀곡과 무대 / 유아의 '담백한 보컬 톤'을 담아낸 수록곡 구성 / 그리고 이들 곡에 걸쳐 있는 '자아에 관한 서사' 모두에서, 유아의 "정체성"을 노래한다는 목적성의 합일이 완벽하다.
[ 싱그러운 오마이걸, 그 중 가장 짙게 물이 든 유아의 초록 ]
'숲의 아이'와 이 앨범이 뛰어난 소화력을 지닌 그 어떤 아티스트가 불렀어도 동일한 만족을 주었을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유아의 이 앨범이 오마이걸의 세상이 더욱 깊게 뿌리내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오마이걸과 유아 솔로의 색깔은 어딘가 맞닿아 있다. '너'를 보며 마음이 떨리면 바람이 몰아쳐 나무가 흔들리는 'WINDY DAY', 언젠가 꽃피울 놀라운 꿈을 정원에 심어 보여주는 '비밀정원', 사랑을 느끼면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계절을 보는 '다섯 번째 계절' 등에서 오마이걸은 대자연을 구성하는 요정이나 주인들처럼 보인다. 마냥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이야기와 경험들이 이들에게는 당연하기만 하다. 한편, '숲의 아이'에서 유아는 그 공간에 낯설게 떨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년만화 주인공상 같다. 이들 전부는 본질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나, 오마이걸이 대체로 '너'에게 손을 내밀 때 유아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마이걸은 사랑스러운 매력에 이끌린 청자를 환상적 세계로 데려가는 쌍방적 소통을 한다. 그 후 오마이걸의 색깔을 꼭꼭 뭉쳐 놓은 듯한 요정 같은 개성의 유아를 통해서는, 그들 세계에서 가장 원초적인 부분만 꺼내서 타협 없는 정수를 보여주는 입체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다양한 콘셉트의 영역을 확장하며 외부로 뻗어 나가던 오마이걸의 세상은, 자아를 노래하는 유아를 집중 탐구함으로써 내부로 파고든 것이다.
이렇게 유아의 노래는 대중이 바라보는 오마이걸에 새로운 자아와 시점을 부여한다. 그러니까, 오마이걸을 보고 왔든, 유아를 보고 왔든, 청자가 둘 중 어느 쪽의 개성을 기대하더라도 이 음악을 통해 일관된 미지의 세계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유아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홀로서기를 시도했지만, 한편으론 원래 자리인 오마이걸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겉에서는 볼 수 없던 오마이걸의 울창한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다. (*물론 메시지의 깊이가 더해진 것이지, 음악 면에서는 상당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팀 콘셉트에 매몰된 것도 아니다. 2~4번 트랙을 보면 지금까지 오마이걸이 보여준 음악적 색깔과 범위가 겹치지 않도록 하여, 유아라는 개별 아티스트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히 드러난다.)
유아를 통해 더욱 선명한 정체성을 보여준 오마이걸은 숲에서 끝마치지 않고, 그 다음 단계로 'Dun Dun Dance'를 통해 자유의 감흥을 지구 밖으로 던진다. 이렇게 살아 숨쉬는 연속성을 전략적으로 선보임으로써, 앞으로도 오마이걸은 중심을 더 공고히 하든, 더 넓은 세계로 도전해 나가든, 아무래도 기대할 수밖에 없게 하는 힘을 또 한 번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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